목새마을 의뢰:: 매캐매캐 연구소
날이 밝기 무섭게 에셸은 팔름에게 미리 선언한 것처럼 약속을 지키기 위해 연구소를 찾았다. 연구소에도 물론 흥미가 있었고 팔름과의 대담도 그랬다. 특히 어제 들었던, 그가 트레이너에게서 중요하게 여기는 요소에 대해 묻고 싶은 게 많았다.
「어느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침착함을 유지하는 평정심일까요. 하하. 어느 정도 실력과 경험을 갖추지 못한 트레이너 분들은 땅이 조금만 흔들려도 당황하시거든요. 그러면 포켓몬은 더욱 무너지기 마련이지요.」
벤더는 포켓몬을 믿고 북돋아주는 트레이너를 좋아한다. 헤이즐은 포켓몬과 함께 격앙되는 성향을 선호한다. 로렐에 대한 이야기는 듣지 못했지만 로렐 본인에게 듣기론 포켓몬과 함께 즐거운 배틀을 하고 싶다고 했지. 팔름과 대화를 나눈 그 날 밤, 에셸은 숙소로 돌아와 자신의 도전들을 복기해보았다.
첫 번째 체육관, 벤더와의 배틀. 첫 체육관, 첫 도전. 여러 가지로 떨림이 가득했지만 그렇지. 이 때의 에셸은 자신의 포켓몬들을 의심치 않았다.
「할 수 있어요, 저글링. 끝까지 가보기로 해요.」
한 번 포켓몬을 교체해가면서 아직은 둘 뿐이던 포켓몬들을 든든히 믿고 그들의 힘을 밀어붙였지. ‘침착하면서도 저돌적인’, 벤더가 준 평가는 그 날 이후 꾸준히 마음에 새겨두고 있었다.
두 번째 체육관, 헤이즐과의 배틀. 불안요소가 많았던 배틀이었다. 특히 저글링의 구르기로 쭉 나아가려던 계획이 두 번째 포켓몬으로 차오꿀이 나와 허둥댔지. 처음 세웠던 전략과 어그러지는 바람에 동요가 얼굴에 드러날 정도였다. 게다가 구르기는 자꾸만 빗나가고 초조함에 손이 저려오기도 했다. 이대로 지는 걸까? 불안한 가정이 자꾸만 머릿속에 떠오르면서도 당장은 눈앞의 시합에 집중하려 했지.
사실을 말하자면 위키링을 이렇게 주요하게 내보낼 생각은 없었다. 원래 계획은 냐미링과 저글링으로 해보는 것으로, 불타입의 체육관에서 위키링이 보일 수 있는 건 많지 않으리라. 이 무르고 연약한 촛불이 더 거대한 불꽃에 먹힐까봐 걱정만 했다.
그랬는데 글쎄, 냐오히트와 위키링이 1대1로 남게 될 줄이야. 이 때 주고받은 겨우 두 턴. 에셸은 최고로 격앙되었다. 다른 수단으로는 어떻게 해도 냐오히트를 이길 수 없었다. 수많은 가정 가운데 유일한 승기는 병상첨병이 효과를 발휘해주는 것뿐. 그런데 위키링은 에셸의 무모한 도박을 최고가로 달성해주었다. 그 순간, 북새체육관의 열기보다도 그의 마음이 더 뜨거웠으리라 단언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로렐과의 배틀. 이 때도 역시 자신은 없었다. 얼마나 자신이 없었냐면 갓 태어난 바나링과 아직 서먹한 후와링을 포함해 다섯 마리 꽉꽉 채워 도전할 정도였으니. 지금도 에셸은 당당하게 이겼냐고 하면 글쎄요. 하고 오묘한 답을 내놓을 수밖에 없다. 현재의 로렐에게 도전하라고 하면 승산을 1할도 찾지 못하겠지.
대신에 그 순간 즐거웠냐고 묻는다면, 무척이나 즐겼다. 그 즈음 에셸은 이미 체육관 배틀을 즐기고 있었다.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로렐의 쇼맨십에 맞춰 옷을 갈아입고 다양한 포켓몬을 선보여 모두와 호흡을 맞췄다. 이 때도 처음 계획대로 움직이지 않아 엉망진창이었지만 변함없이 기연에 기대어 이겨버렸지.
배지를 세 개 따는 동안 늘 얼떨떨하기만 했다. 허둥대고 동요하고 그저 포켓몬을 간절히 믿거나 초조해하거나. 그럼에도 3개의 배지는 달라지지 않는다고 곁에서 북돋아주는 이도 있었지만 체육관 배틀을 즐기는 것과 별개로 어엿한 트레이너라고 여전히 말하긴 어려웠다.
어느덧 4번째 체육관이었다. 팔름의 엔트리가 뜨고 나서 앞서 해온 것처럼 세 마리 포켓몬을 연구하고 자신의 포켓몬을 돌아보았지만 이번에야말로 정말이지 바늘구멍만한 승기도 보이지 않았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도전해보려고요!’ 이제껏 그렇게 도전해왔지만 이번만큼은 숙고해야 했다. 누림 체육관에 도전하던 세트의 말도 영향을 미쳤으리라.
「승산이 보여 도전하러 왔다. 그 전까지 움직이지 않는다.」
에셸은 도전을 좋아하였지만 스스로 즐길 수 있는 도전과 그저 아득히 절망적인 도전은 달랐다. 도전자를 기대하고 있을 팔름에게 이런 미진한 모습으로 나서는 건 도리어 실례이지 않을까.
“──이런 결론을 내려서요.”
입은 쉼 없이 재잘거리면서 손 또한 바지런히 움직인다. 창문을 활짝 열고 후와링의 바람 일으키기로 먼지들을 그러모아 바깥으로 내보내고 이어서 다 같이 잘 짠 걸레를 들고 가구나 책장 등을 닦았다. 촛불을 달랑달랑 달고 있는 위키링은 혹시라도 책을 태울지 몰랐기에 물이 식지 않도록 데우는 담당이었다. 한참 걸레질을 하다가 허리를 쭉 펴기도 하고 팔름이 내준 캐모마일 티를 마셔가면서 에셸은 이번에 체육관에 도전하지 못하게 된 경위를 설명했다.
“실력과 경험을 갖춘 트레이너라고 하기엔 스스로가 너무 부족했어요. 이런 준비되지 않은 채 도전하는 건 팔름 씨 체육관에 예의가 아니라고 느꼈어요.”
제 포켓몬들이 손 하나 까딱하지 못하고 차례차례 추풍낙엽이 되는 모습을 보는 건 트레이너로서 괴로운 일이기도 했다.
“그래서 다음에, 스스로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이 들면 도전하고 싶어요. 그 때도 지금처럼 반겨주시겠나요?”
지금은 챌린저 대신…… 이를 테면 지나가던 여행자가 되어볼게요. 학자로서의 당신에게도 흥미가 무척 많으니까요. 연구소의 청소가 끝나고 나면 이곳의 소개를 들어보고 싶다고 희망사항을 슬쩍 흘리며 에셸은 청소를 마지막까지 꼼꼼히 청소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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