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거든. 무턱대고 다정함을 베풀다가는 언젠가 그 무게에 짓눌려서 힘들지도 모른다… 라고.」
과거에 베풀었던 다정을 후회하고 있어, 루? 내가 당신을 힘들게 하고 있을까. 눈가에 열이 오른다. 부끄러움, 가벼운 후회, 혹은 속상함, 그것도 아니면 두려움, 여러 감정이 뒤섞여 고개를 떨구었다. 손등으로 가볍게 누르자 손의 체온이 더 높은지 눈의 체온이 높은지 잘 구별할 수가 없다. 당신에게서 한 발짝 물러나고 만다. 새로운 발자국이 눈 위에 새겨진다. 마음에도 이렇게 발자국이 남거나 할까.
“미안해.”
아무것도 모르면서 멋대로 말해버렸지. 하얗게 번지는 입김과 함께 억누른 목소리를 뱉어낸다. 그리고는 숨을 삼켰다. 거부당하는 것은 두렵다. 그리고 괴롭다. 하지만……
천천히 손등을 내린다. 괜찮아, 아프지 않아. 짓눌렸던 눈을 몇 번 깜빡이자 뿌옇게 변했던 시야가 돌아온다. 고개를 들어 웃는다. 괜찮아. 스스로에게 읊조린다.
“아직 당신에게서 어떠한 이야기도 듣지 못했어. 이런 내가 곁에 있겠다고 말해도 믿음이 가지 않겠지.”
어쩌면 곁에 있겠다는 내 말이 당신을 괴롭혀버리는지도 몰라. 그렇지만,
“이만큼이면 될까?”
당신과 나 사이의 거리가.
눈 덮인 정원은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5년 전과 달라지지 않은 풍경 속에서, 5년 전과는 완전히 달라져버린 표정을 안은 채 손바닥이 당신을 향하도록 팔을 쭉 뻗었다. 이상하지. 서로 키는 더 자랐을 터인데 오히려 닿지 않아. 그게 이상하고 어색해서, 여전히 변화를 채 다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어. 그러니까 당신이 괜찮아지고 내가 괜찮아질 때까지, 여기에. 당신이 손을 뻗으면 잡힐 거리에.
미안해. 한 번 더 사과가 나온다. 루의 바람을 들어주지 못하겠어.
“루는 이대로 충분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충분하지 못해.”
이미 한 번 기다려봤는걸, 2년. 그렇게 말하며 입 꼬리를 당긴다. 뻗은 손끝이 조금 떨리는 것만 같아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다시 폈다. 잠시 눈을 감았다 뜨면, 응. 언제나 그랬듯 나다운 표정이 그려져 있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