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손에 들린 붉은 리본도, 모르는 사람을 보는 척하는 눈도, 어울리지 않는 말투도, 툭 덮인 이마의 머리카락이나 우스꽝스럽게 스스로를 낮추려 하는 몸짓까지.
불쾌해.
고양이가 부러웠으면 말을 하지 그랬어요. 찡그린 그녀의 표정을 무시하며 다가오는 손을 짜증스럽게 쳐냈다. 그런 게 아냐. 누가 고양이 따위 부러워할 줄 알고. 고양이 따위 부러워할까보냐. 멋쩍은 기색으로 그는 리본을 자신의 손목에 감았다 풀었다를 반복했다. 마치 어색하고 민망한 이 기류를 어떻게든 외면하고자, 그러다 툭 흘러나온 말은 의미를 알 수 없는 것이었다.
“퀴즈 맞춰 볼래요?”
무슨 퀴즈? 하고 되묻는 동안에도 그의 시선은 여전히 제 팔목에 꽂혀 있었다. 사람을 앞에 두고 대화하는 태도가 아니야. 이상하기도 하지. 참 이상해졌어. 그를 물끄러미 살펴보는 귓바퀴로 어딘가 먼 곳에서부터 느릿하게 풍경 소리가 흘러들었다. 풍경 소리를 따라 척박한 엘버의 산맥을 넘어 남쪽으로, 다시 동쪽으로, 그리운 풍경이 그려진다.
* *
흙으로 빚었을 것에서 질척하거나 퍽퍽하지 않고 청량한 소리가 들리는 건 언제나 신기했다. 창문을 열어두면 느긋하게 불어오는 바람을 따라 금붕어의 꼬리 같이 늘어진 끝자락이 살랑살랑, 그 궤적을 눈으로 좇으며 멍하니 보내는 시간이 좋았다.
풍경 소리를 들으며 답장이 오지 않는 편지를 썼다. 그의 집에 방문하고 얼마 되지 않아 돌연, 그에게서 오던 편지가 끊겼다. 성의 없는 답장이라도 그가 답장을 거른 적은 없었다. 무슨 일이지? 주소가 달라지기라도 한 걸까. 그렇다면 찾아가야 할까. 생각은 했지만 실행은 하지 못했다. 그 이후로 저 역시 여러 가지 일이 있던 탓이기도 했지만, 그렇지. 만일 그 때 찾아갔더라면 뭔가 달라졌을까.
글쎄, 정말 달라졌을까.
제국군에 들어가서 1년을 꼬박 아델하이에 박혀 준기사로서 수행했다. 성격을 조금만 더 죽였으면 그보다 일렀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1년 만에 정기사가 되었으니 나쁘진 않은 결과일까. 그러고 나서 처음으로 받은 외부 임무였다. 첫 임무로 향하게 된 곳이 레기르의 실베니아 기사단이라니. 향수 비슷한 걸 느꼈지. 과거로 돌아가는 듯한 기분이 들어 들뜬 발걸음으로 성에 들어갔다.
그리고 그곳에 있는 당신을 보았다.
처음부터 보고 있었다. 새까만 옷 일색이었지만 멀리서도 화려하게 보이는 그 머리색이나 커다란 키는 숨길 수 없었다. 여기 있던 거야, 얀? 당장에 말을 걸려고 했지만 연락도 없이 사라졌던 게 분해 일부러 모른 척을 했다.
얼른 내게 먼저 말을 걸어봐. 그러면 불평불만을 잔뜩 늘어놓은 뒤 곧 아무렇지 않은 듯 전처럼 돌아갈 수 있을 줄로만 알았다.
그랬는데 그는,
「우리 만난 적 있던가요? 난 처음 보는데.」
농담이 하나도 재미없어. 참신하지도 않아. 하지만 그는 한사코 제가 내가 아는 그 ‘아바얀 루’가 아니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주장하고 싶은 모양이다.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 것 같아요?”
내가 알고 싶은 거야.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어, 얀?
“힌트는… 그래, 뭐든지 물어봐도 좋아요.”
그가 웃는다. 딱 세 번. 거기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풍경 소리가 끝나지 않는 여름처럼 귓가를 맴돈다.
“내가 아는 당신은 늘 제 자존심을 중요시하는 사람이었어. 학생 상대로 열을 올리고 진심으로 분하거나 화를 내거나, 꽤 유치한 모습도 보였지만 그만큼 자존심이든 자존감이든 자기애든 높았던 거겠지.”
참 스스로를 사랑하는 사람이라 느꼈다. 그 기저에 무엇이 깔려 있는지, 어떻게 해서 도출된 행동인지는 알지 못했지만 나 역시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가시를 세우는 건 익숙했으니까. 당신도 그와 비슷한 걸까 막연히 생각했다.
“당신은 늘 내가 궁금한 것에 대답해주지 않았어. 그렇게 해서 스스로를 포장하고 싶다면 그러라고 했지.”
호기심 반으로 캐물으려 하다가도 대답하기 싫어하면 구태여 더 묻지 않았다. 당신의 이야기를 책임질 자신? 그런 게 아니었다. 당신이 지키고 싶어 하는 부분의 존중, 뭐 굳이 이유를 붙이라면 이쪽에 더 가까울까. 필요하다면 말해줄 것이라 생각했고 몰라도 괜찮으면 그 뿐인 일이었다.
그래, 그랬던 당신이 지금은 내게 자신에 대해 물어보라고 하고 있다.
“이제 와서 내게 말해주려는 이유가 뭐야?”
내가 무엇을 알아주길 바라?
이걸 첫 번째 질문으로 쳐도 좋아. 말을 마치고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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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사실 먼저 로그 던지려고 앞부분 쓰고 있었는데 난데없이 저쪽에서 뭔가 시작되고 그 때부터 죽음의 듀얼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