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머링 진화(핑복->럭키)
나른한 오후, 서머링은 에셸과 함께 챔피언로드 너머. 라이지방의 바깥 바다를 구경하고 있었다. 곁에는 위키링이나 저글링, 다른 포켓몬들도 함께였다. 지방의 바깥으로 나 있는 풍경은 망망대해였다. 배틀카페 출신이지만 기차 바깥을 볼 일이라곤 없던 서머링은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다와 하늘, 그 사이에 다른 부산물은 없는 드넓은 풍경에 넋을 놓았다.
“바람이 차진 않아요?”
다정한 물음에 고개를 젓는다. 이 트레이너는 언제나 세심하고 주의 깊다. 아껴주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런 사소한 것부터 얼마나 많은 것을 그에게 배웠던가.
처음 트레이너에게 오던 날을 기억한다. 저와 비슷한 분홍색을 가진 여자는 친구와 교환한 볼에서 그를 꺼내서는 곧장 주머니에 동글동글돌을 넣어주었다. 이건 당신 거예요. 그리고는 이런 말을 했다.
“행복에 정해진 형태 같은 건 없는 법인데 그 때의 저는 꽤 궁지에 몰려 있었나 봐요. 형태로 쥔다고 행복이 생겨나는 것도 아닌데. 그러다…… 행복이란 이렇게 찾는 게 아니었지, 깨닫고 반성한 순간에 당신이 찾아왔어요. 서머링.”
신기하죠. 이게 아니라고 깨달은 순간, 그만두려고 할 때에 행복의 알이 나타나다니. 그래서, 당신이 있어서 행복해지는 게 아니라 당신과 함께 행복을 찾아보려고요. 우리가 함께 행복해지는 길을요. 제가 선물해주는 이것을 행복의 가능성이라고 부르려고요. 그러니까 나중에 당신이 좀 더 자라서 스스로 알을 보살필 만큼의 확신이 생기면 그 때 이걸 사용해주세요.
그 뒤로 핑복-서머링이라고 이름 붙여진 이 포켓몬-은 한참 주머니에 돌을 품고 다녔다. 아장아장 걷다가 넘어지면 돌이 툭 떨어지고, 데굴데굴 굴러가는 돌을 쫓아가 잡아서 다시 주머니에 넣고. 이게 진짜 알이었으면 큰일 났겠지. 노력하는 성격의 아이는 그래서 트레이너가 준 가능성을 안고 무수히 노력했다. 돌을 떨어트리지 않도록. 깨지 않도록. 그리고는 고민했다. 제 다정한 트레이너가 찾던 행복은 무엇일까요? 그걸 저는 어떻게 줄 수 있을까요?
곁에서 지켜본 서머링의 트레이너는 늘상 웃고 있었고, 언제나 즐거워 보였다. 즐거움과 웃음이 행복과 일맥상통하진 않으나 적어도 불행해 보이지는 않았다. 때때로, 아주 행복한 얼굴을 하는 모습도 보았다. 저 얼굴이 에셸이 행복할 때의 얼굴이구나. 저 얼굴을 지키면 되는 걸까? 트레이너가 행복하면 저도 행복하다. 야생에서 살아온 포켓몬은 행복한 트레이너의 품에서 서두를 것 없이 느긋하게 성장해나갔다.
그러나 늘상 행복한 일이 있는 것만은 아니었다. 서머링은 트레이너가 슬퍼하는 것도, 고통스러워하는 것도, 분노하는 것도, 고민하는 것도 다 지켜보았다. 아프도록 힘껏 그를 품에 안은 채 슬픔과 화를 삭이던 날이 있었다. 늪에 빠진 듯 고민에 잠겨 꼼짝 못하던 날도 있었다. 그러나 서머링이 고민하는 사이, 트레이너는 금세 괜찮아진 모양이었다.
저의 트레이너도 저와 같이 자연회복 특성인 걸까? 하지만 언제까지나 든든한 트레이너에게 의지하고 있고만 싶지는 않았다. 저도 의지가 되고 싶었다. 제가 도와줄 일은 없을까요? 서성거리자 다정한 트레이너는 서머링에게 소곤소곤,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서두를 것 없어요. 조급해하지 않아도 돼요. 그래도 나중에, 저 서머링과 하고 싶은 게 있거든요.
그 때가 되면 같이 해줄래요? 《 》을.
그 말은 서머링의 목표가 되었다. 하지만 이런 식이어서는 저, 트레이너를 따라잡을 수 없어요. ‘우리’가 행복해지려면, 제가 늦지 않게 트레이너와의 약속을 지키려면. 동글동글돌을 번쩍 든 서머링은 그래서, 돌을 힘껏 깨트렸다. 자연히 찾아올 그 때를 기다리고만 있을 수는 없으니까 저, 노력할게요.
'포켓몬스터 : 디 이노센트 제로' 카테고리의 다른 글
95) 03.27. 의미 (0) | 2022.05.02 |
---|---|
94) 03.26. 함께 행복해지는 길 (0) | 2022.05.02 |
92) 03.25. 침묵 (0) | 2022.05.01 |
91) 03.25. 최고의 티 마스터를 위하여 (0) | 2022.05.01 |
90) 03.24. 당신께 배운 것 (0) | 2022.05.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