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즐링 친밀도 로그
허브티 카페에 다녀온 뒤 다즐링은 굉장히 만족스러워 보였다. 세상에 차는 홍차만 있지 않아. 그곳의 허브들은 좋은 품질의 것을 모아둔 건 물론이고 습도를 비롯해 찻잎 관리도 완벽하고 차를 우리기 위한 다구까지 매일매일 수준급의 관리를 하고 있던걸. 다즐링의 이상향과도 같았다. 돌아온 뒤에도 흥분해서 벤더에게 받아온 찻잎을 당장 시험해보고 싶다고 하는 통에 에셸과 다른 포켓몬들은 오밤중에 티타임을 또 가져야 했다.
“다즐링은 배틀카페에서 태어났나요?”
허브티라서 다행이지. 이 야심한 시간에 홍차였다면 에셸은 꼬박 밤을 새야 했을 것이다. 늘 마시던 캐모마일에서 메뉴를 바꿔 오늘은 레몬그라스. 상큼한 맛으로 잠을 깨우며 에셸은 느긋하게 과거의 이야기로 돌아갔다. 이 아이는 어디에서부터 생겨나서 이렇게 차에 한해 깐깐하고 엄격하게 된 걸까. 서머링과 다즐링. 교환으로 얻은 두 친구들은 직접 첫 인사를 하지 않은 만큼 만나기 이전의 이야기를 잘 몰랐다. 중요한 건 만난 이후라는 생각도 물론 하였으나, 이왕이면 더 들려주었으면 했다.
차를 다 우려낸 티포트를 뽀득뽀득 닦던 다즐링은 의외의 답을 주었다. 아니, 난 바다를 건너 왔어!
본래 있던 곳은 어느 지방인지 모르겠지만, 둔치로 들어오던 배의 티세트 안에서 잠자고 있었어. 그러다가 배에서 내려 기차로 옮겨, 누군가를 위해 배달되던 중에 실수로 잔이 깨지고 만 거야. 상자의 뚜껑이 잘 안 닫혔던 걸 보면 적재하던 녀석의 실수였겠지. 어쨌든 그 잔은 쩌적, 금이 가서 가치를 잃게 되었고 차 한 잔 담아보지 못한 가엾은 찻잔에서 난 눈을 떴어. 그 때부터 배틀카페가 우리집이 되었지.
다즐링의 이야기를 듣던 에셸은 잠시 턱을 문질렀다.
찻잔의 원산지는 다른 지방이지만, 태어난 걸로 따지자면 라이지방이 맞지 않나? 다즐링의 본체는 티포트 안에 담긴 고스트이지 그 본신을 담은 몸이 아닐 텐데. 말하자면 단단지나 돌살이처럼 말이다. 그러나 어쨌든 본인은 처음 자신을 몸 담게 했던 잔의 기원을 따르고 싶은 모양이었다. 에셸은 포켓몬의 의사를 존중해주었다.
-그러고 보니 지금의 이 티포트도 비슷한 곳에서 온 것 같던데.
포트데스로 진화한 다즐링이 지금의 옮긴 몸이 마음에 드는지 빙그르르 돌며 말한다. 어머, 그래요? 어디 제품이었더라. 지난번에 포트데스가 진품인지 가품인지 이야기를 하다가 바닥에 달링의 상표를 붙여 버린 덕에 다시 확인할 수도 없었다. 다만 다즐링의 까다로운 성미와 차에 한해서는 무서우리만큼 프로 정신을 갖고 있는 걸 생각하면 어딘가의 명가일 것 같단 생각만 하고 있을 뿐이다. 다즐링은 궁금한 모양이었다. 제 첫 찻잔의 고향이. 그와 눈을 마주친 에셸은 그 마음을 헤아리듯 빙그레 웃었다.
“저, 이 캠프가 끝나고도 다른 지방을 계속 돌아다닐 예정이에요.”
물론 상회에 휴가도 내야 하고, 지금처럼 3개월이나 되는 긴 시간이 가능할지도 모르겠고 여러 가지로 쉽진 않겠지만. 우리에게 시간이 허락된다면.
“그 때 같이 전 지방을 돌아다니면서 당신이 두고 온 찻잔의 고향도 찾아볼까요?”
지금도 더 맛있는 차를 우리기 위해 연구를 아끼지 않는 다즐링을 위해. 제 멋진 포켓몬을 위해. 에셸의 제안에 다즐링은 뚜껑이 폴짝 떠오를 만큼 김을 내며 반겼다. 갈래, 갈래. 세계 최고의 티 마스터를 위하여~!
'포켓몬스터 : 디 이노센트 제로' 카테고리의 다른 글
93) 03.26. 행복을 찾는 과정 (0) | 2022.05.01 |
---|---|
92) 03.25. 침묵 (0) | 2022.05.01 |
90) 03.24. 당신께 배운 것 (0) | 2022.05.01 |
89) 03.24. 감사 (0) | 2022.05.01 |
88) 03.23. 수면 아래의 빛 (0) | 2022.05.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