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주노
오늘은 에이프릴 풀(April Fool's Day)이라고 해요. 악의 없는 가벼운 거짓말로 속이고 장난을 치고, 오늘만큼은 누구든 어떤 악동이 되어도 살짝 눈감아준다고 하죠. 이 날을 기회 삼아서 평소에 말하지 못했던 속내를 살짝 드러내기도 한다는데. 언제나의 저였다면 다른 사람의 장난만을 신경 쓰고 말았을 거예요. 그런데 오늘은 어쩐지, 지나가듯 나온 화제 때문일까요. 한쪽 뺨을 손바닥으로 감싼 채 꾸욱, 생각에 잠길 일이 있었어요.
예전부터 곧잘, 자주, 자연스럽게? 또 원래 그랬던 것처럼 그는 제게 무구한 호의를 보내주었어요. 그저 좋은 사람이어서라고 하기에는 정말 그렇게만 받아들여도 되는 걸까? 스스로에게 되물어버리고 말 정도로. 누구에게나 이러던 걸까요. 아니면 저에게만? ──언제까지든 곁에 있어준다든지 그런 말 가볍게 해버리면 고민에 빠지고 말잖아요. ‘집사님, 서비스 멘트가 좋으세요~’ 그렇게 무마하려고 해도, 돌아오는 표정이 꼭 그것만은 아니라는 듯 말해오는 것 같아서.
거기서 ‘왜요?’ 물어보면 어떤 답이 돌아왔을까요.
「그냥, 요. ……생각나서요.」
그러고 나서는 안 돼요? 되물어왔을까요. 안 된다든지 싫다든지, 그럴 일 없다고 하는데도. 그래도 이렇게 확인해오는 그에게 ‘그렇지 않아요,’ 답을 하고 반대로 안 됐어요? 물어보기도 하고─어라. 왜 저는 과거형이죠.─이제는 하나의 루틴이 된 그 주고받음을 좋아해요. 그렇지만 우리 그간 참 많은 이유를 묻지 않고 넘겨 왔죠.
아차, 또 그를 생각하고 있네요. 아주 조금만 방심하면 매번 이렇게 돼요. 그러니까, 원래 하던 생각은…….
──적어도 에셸 씨한테 이야기 할 일은 없을 것 같은데…….
이제는 굳이 피하지 않아도 될 ‘왜’라는 고민이에요. 왜 그의 과거 연애 이야기를 듣고 싶은 걸까.
굳이 피하려고 하지 않아도 자신의 마음을 헤아리는 건 생각처럼 쉽지 않은 일이에요. 겪어본 적 없이 낯선 기분은 어렵기도 하고, 그 내면을 스스로 분석하고 있으면 왠지 제가 옹졸하거나 유치한 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해서… 몰라도 되지 않을까? 그렇게 넘겨버리고 싶기도 한데. 그냥. 오늘이 에이프릴 풀이어서요.
한 걸음만 더 솔직해질 핑계를 찾았어요. 제게 이런 마음도 있다는 걸 알아주었으면 해요.
・
・
“저한테…는, 이제 정말, 중요한 일이 아닌데….”
이제 와서는 아무런 의미도 없고……. 물어보는 게 싫진 않아요. 싫진 않은데, 질문 앞에서 만감이 교차하는 그의 얼굴을 보다가 곧 시선을 아래로 내렸어요. 그는 제가 볼 때는 움찔하고 눈을 피하다가도 반대로 시선이 떨어지면 집요하게 쳐다보곤 해요. 지금도 눈을 피하자마자 전해져오는 시선 앞에서 뺨이 익어가잖아요.
막상 말하려고 하니까 쉽지 않은 기분이에요. 그래서 괜시리 그의 손을 움켜잡은 채 조물조물. 손바닥에 새겨진 굳은살을 헤아리듯 엄지 두 개가 문질러 누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어요.
“구…, 궁금한 이유는요.”
당신이 많이 좋아했던 마음이 알고 싶었어요. 그 때도 지금처럼… 저에게 해주던 것처럼 했을지. 그렇다면 상대는 참 좋았겠구나, 라는 생각도 들고. 저는 이런 마음을 겪어본 게 처음이어서 모든 것이 새롭고 신기하기만 한데 주노 씨가 느끼는 감정은, 처음이 아니라면 어땠을지. 얼마나 좋아했을지.
“그런데……”
목소리든 말이든, 떨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천천히 이야기를 이어나갔어요. 표정도요. 조금이라도 긴장을 풀었다가는 입술이 댓 발 나와 버릴 것 같아서, 설마 지금도 그런 건 아니죠? 이럴 땐 왜 거울이 없을까요. 심장이 떨려서, 이대로라면 무슨 얼굴을 할지 몰라 결국 쥐고 있던 그의 손을 제 방향으로 당겼어요. 포옥, 기도라도 하듯 공손히 손을 모은 채 당겨진 손바닥에 표정을 가리고는 끝맺지 못한 나머지 말을 이어요.
“정말, 다른 이유 없이 궁금하기만 했던 건데. 당신을 알고 싶어서요. 그런데 점점…… 상상할수록 신경이 쓰여서.”
──듣고는 싶은데 별로 안 듣고 싶은…….
이제야 그 말을 알 것 같아요. 뜨겁게 열이 오른 낯을 감춘 채 이야기를 마치기 위해 힘을 내야 했어요.
“주노 씨가 해준 이야기로, 이제 궁금한 건 다… 풀렸어요. 고마워요. ……조금 속상한 기분이었는데.”
상대가 당신에게 좋은 사람이 아니었단 것 말이에요. 저에겐 이렇게나 소중하고 잘해주고 싶은 사람인데 어째서. 보는 눈이 없던 사람이었죠. 하지만, 그러니까. 그래서. 조금 마음을 진정시키고 난 뒤에야 멋대로 당겨온 손을 조금 내렸어요. 그가 어떤 얼굴인지도 모르는 채, 눈 감은 뺨을 그 열 남은 자리에 부볐어요.
“제가 더 잘해주고 싶어요.”
누군지도 모를 상대에게 경쟁심을 불태우려는 건지 우스운 말이지 않나요. 유치한 것도 같고, 부끄럽고 민망하고. 에이프릴 풀과는 정말 어울리지 않는 정직한 말이, 그렇지만 온전히 그를 위해 흘러나왔어요. 오늘이라는 날이 준 선물이에요.
그야 아무리 그래도 전애인의 이야기를 듣고 좋아할 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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