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 주노
어느 날 TV에서, ‘그 인터뷰’가 나왔다.
『지금 애인과 처음 이상형의 차이점이 있다면?』
지나가는 커플을 불러 세워서는 질문을 던져보자 각양각색의 대답이 나왔다. 누구는 지금 애인과 이상형이 하나도 맞지 않는다고 답해서 바로 카메라 앞에서 애인과 투닥거리기도 하고─그렇게 말한 것치고 두 사람은 굉장히 사이가 좋아 보였다─, 누구는 수줍게 이상형 그대로라고 답하기도 하고, 누구는 이상형은 중요하지 않고 지금 옆에 있는 사람을 좋아한다고 답하고……, 민감할 수 있는 질문이었는데 운이 좋았던 것인지 아니면 세간의 모든 커플들이란 결국 이상형은 중요하지 않고 좋아하게 된 사람이 중요하다는 걸 몸소 증명하는 것인지 굉장히 좋은 분위기에서 인터뷰가 마무리되었다.
여기 한 연인이 소파에 나란히 앉아 TV를 시청하고 있었다. 즐거운 주말 오후였다. 전날에는 에셸의 본가에 들러 피아노 레슨을 했는데 어머니의 시선에 주노의 뒤통수는 여전히 따가울지도 몰랐으나 피아노를 핑계로 독립한 딸이 집에 들르는 걸 가족들은 모두 반기는 것 같았다. 하루는 모두와 보냈으니 하루는 둘이서만 보낼 법도 하다.
바깥은 조금 흐리고 비가 올 것 같았지만 두 사람은 맛있는 식사를 마치고 자뭉열매에이드를 만들어 느긋한 오후를 보내고 있었다. TV를 보며 소소한 잡담이나 나누던 중이었다. 그런데 저런 질문이 나왔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수순으로 화제가 넘어왔다.
“주노 씨는 이상형, 어땠어요?”
질문을 던지는 에셸의 모습에서 잠시 첫사랑과 첫연애를 물어보던 약 100일 전이 오버랩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제 이상형이요……. 우물거리며 떠올려보면 분명 20대 초반까지는 자신을 리드해 줄 만한 당찬 사람이 좋았던 것 같은데 지금은 구체적인 이상형보다는 그저 내가 좋아하는 나를 좋아해주면 충분하지 않을까, 자연히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다. 서로의 수준이 맞는 사람끼리 어울려야 행복할 것이라는 지극히 소시민적이고 당연한 바람을 안은 적도 있었지만── 수준이라는 건 결국, 서로 맞춰나가는 것 아니겠는가. 부족하게 느껴진다면 내가 더 어울릴만한 사람이 되자. 그런 결심까지 하게 되었지.
그 모든 것을 자기 입으로 설명하기는 부끄러워서 민망함을 안은 채 더듬거리고 설명하였던 것 같다. 충분히 전달되었을지는 눈앞의 연인의 표정이 대신했겠지.
“에, 에셸 씨는요…?”
“저는──”
그럼 다음으로 넘어가보자. 로맨스 소설과 영화를 좋아하던 이 사람은 한때 이상형이라고 했을 때 사회통념을 따라 신데렐라 로맨스의 남자 주인공 같은 이미지를 떠올렸다. 고층빌딩의 라운지에서 샴페인을 나눈다든지 오픈카를 끌고 나타나 멋지게 에스코트한다든지, 차가운 도시 남자라는 것도 있던가? 사회통념이 그랬다. 하지만, 막상 에셸에게 접근해오던 수많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에셸은 한번도 이상형이란 단어를 떠올려본 적이 없었다. 로맨스 소설의 주인공과 에셸 달링은 동일인이 아니었기에.
음~…, 하고 곰곰이 생각하던 에셸은 가장 먼저 떠오르는 한 가지를 말했다.
“다정한 사람이 좋아요.”
저를 향한 애정을 분명히 보여주는 사람, 다정하고 따뜻하고. 어떻게 보면 사랑하기에 있어 가장 필수되는 조건이었지만 정말 그 이상의 바람은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왠지 앞서 TV에서 말하던 이상형의 요건을 채우기에는 부족해 보여 조금 더 살을 붙였다. 이상형, 제가 이상적이라 생각하는 연애 상대의 요소. 음~.
“다정하고, 또 성실하고 노력하는 분이요. 자신에게 지나치게 엄격한 것까진 바라지 않지만 노력하고 자기계발을 하는 분이라면 함께 더 나아지지 않을까요.”
그건 무척 이상적인 연애의 형태인 것 같아요. 서로에게 도움이 되기도 하고요.
여기까지도 말하면서 자각이 없었다. 아직 부족하지.
“얼굴은 그렇게 따져본 적 없는데……, 날카로운 인상? 그렇지만 잘 웃어주고 웃을 때 눈이 예쁘면 좋아요. 수줍음 많은 분이어도 괜찮고요. 손을 잡을 때면 단단히 잡아주고, ──키스하기 전에는, 먼저 물어봐 주고.”
여기까지 말할 때도 자각이 없었다. 그러나 무의식중에 말해오는 이상의 상대란 점점 더 누가 봐도 특정인을 가리키고 있어서……
“……금방 빨개지거나 생각이 얼굴에 다 드러나는 것도, 솔직함을 보여주면 좋은걸요. 깜짝 놀랄 이벤트는 해주지 않아도 괜찮아요. 그보다 제 의사를 물어봐 줄 때 존중해주는 느낌이 들어서, 나이 차이는 크게 신경 쓰지 않지만 동안이어서 또래처럼 보이는 부분도 좋아하는 부분이에요. 대화할 때 눈을 마주쳐주는 게 좋은데, 가끔 제 시선을 피하다가도 어떨 땐 정말 빤히 쳐다봐 와서, 시선이 굉장히…… 어, 어라?”
“─────────, 그렇구나…………….”
한 마디만 더 했으면 ‘그냥 주노 씨여서 좋아요.’까지 말해버릴 뻔했다. 그보다 처음에는 ‘이런 사람이 좋아요.’로 시작했을 텐데 언제 ‘이런 사람이어서 좋아요.’가 되었을까. 여기까지 오고 나면 더는 변명의 여지도 없는 고백에 지나지 않아서, 깨달았을 때는 옆 사람에 뒤지지 않을 만큼 얼굴이 확 달아오르고 말았다.
부, 부끄러워요─!
에어컨은 이상 없이 작동하고 있을 텐데 삽시간에 체온이 올랐다. 실내온도가 상승하자 에어컨의 냉기도 덩달아 강해졌다. 기계에도 의지가 있다면 저 에어컨은 참 억울하리라. 나는 똑같이 일했는데 갑자기 실내가 혼자 더워진 게 아닌가.
누가 뭐랄 것 없이 푸시시식, 김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크지 않은 TV소리만이 정적을 대신했다. 서로 아무 말도 못 하고 쳐다도 못 보고 그렇게 앞만 보는데…… 슬금슬금 다부진 손이 손등을 덮어왔다. 손을 잘 잡아준다던 그 말을 의식이라도 한 것일까. 아니면 그는 똑같이 잡아줄 뿐인데 내뱉은 사람이 괜한 의식인 걸까. 반지 위를 살짝 문지르다가 이내 감싸 쥐는 손길에 손가락 끝이 움찔거리며 구부러졌다. 조심스럽게 마주 쥐고 그의 무릎에 손을 올린 채 에셸은 그 맞잡은 손에 시선을 못 박았다.
“그으…….”
“네, 넷. ……말씀하세요.”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연애 상대, 라고 했잖아요. ……역시 연애 상대의 요건, 이라면 제가 좋아하는 저를 좋아해주는 사람으로 충분하다고 저도 생각했어요. 그러고 나니, 당신과 하는 연애가, 또 사랑이…… 제겐 다른 어떤 것보다 가장 이상적인 형태여서.”
그래서 이상형으로 주노 씨 생각만 나버리고 말았나 봐요.
자각하지 못했던 취향을 깨우치기라도 한 것처럼 속닥속닥 고백하고 그의 손바닥 안을 손끝이 살살 문질러 긁어낸다. 그가 간지러워할 걸 알았지만 말하는 스스로도 간지러워서, 같이 간질간질해져버리고 말자는 장난이었다. 이내 못 견디듯 그의 잡은 손에 힘이 더 들어가면, 어느새 심장을 크게 뛰도록 하는 시선이 뜨겁게 따라붙어 오는 게 선연해 이 이상 어쩌지 못하고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결국 또 남친 사랑한다고 말해버리기
'with.주노' 카테고리의 다른 글
14) JUChelle Magazine 가을 특집호 (0) | 2022.09.11 |
---|---|
13) 입맞춤을 참지 마세요 (0) | 2022.08.13 |
11) 7월을 시작하는 어느 멋진 날에 (0) | 2022.07.18 |
10) Strawberry Moon (0) | 2022.06.14 |
09) 낭만이란? (0) | 2022.06.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