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켓몬스터 : 피치럼블

001) 09.17. 안녕, 머나먼 지루

천가유 2023. 12. 26. 23:14

ㅡ라한 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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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년 20, 능란의 하루는 규칙적이면서도 변칙적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아침이면 전날 가족 여섯이 정한 방식대로 오픈 당번을 뽑았고, 대개 8할이 란의 차지가 되어 그러면 별 수 없이 늘봄까지 달렸다. 쌀을 씻고 전날 준비한 죽통을 늘어놓고 물을 채우고 식탁을 닦고…… 순식간에 8시 알람이 울리면 미리 죽통밥 2개에 불을 올린다. 하루도 빠짐없이 810분에 방문하여 영양죽통밥 2개를 포장해가는 손님을 위해서다.

그를 보내고 나면 하루가 시작된 실감을 느꼈다. 이 뒤에는 거진 배달 때문에 가게에 붙어 있지 않는 정신없는 시간이다. 하루에 12번도 더 가는 가온시티와 는개마을부터 전화가 걸려 오면 죽통밥을 20개쯤 짊어지고 달려야 하는 하랑마을까지, 드물게 나린마을이라도 걸리면 농땡이 피울 생각을 하면서 말 그대로 신발 바닥이 닳도록 죽통밥을 배달하는 나날이었다.

그래도 어디까지나 본적은 늘봄이다. 점심시간이면 미리 차롱숲의 연무장을 방문하여 죽통밥 주문 받으러 왔소~” 큰 소리 뻥뻥 치고서는 “1번 연무장에 죽통밥 5, 연잎죽통밥 5. 2번 연무장에 영양죽통밥 3, 3번 연무장에 버섯 하나 영양 하나 연잎 세 개 수정과……수련하는 사람들의 주문을 받아서, 가게로 돌아가 무사히 받은 주문을 완수하기까지가 주요 일과라고 할 수 있다.

무슨 소리냐 하면 이렇게까지 오가는데 푸실과 늘봄에서 능란이 모르는 얼굴이란 도저히 있을 수 없단 이야기다. , 물론 늘봄의 저 숲 깊은 곳에서 현관을 닫고 지내는 오래된 기사 가문이라든지 자기네 도장에 커다란 솥단지를 3개씩 쓰는 단풍나무 집은 마주칠 일이 적었을지도 모르지만.

이에 따라 내놓은 결론은 명료하다. 당신이 낯설었다. 당신이 낯설어 마을이 낯설어졌다. 익숙하던 것을 낯설게 만드는 마법에라도 걸린 것처럼. 어제까지의 마을이 오늘은 다르게 보였다.

당신 같은 사람이 우리 마을에 있는 줄 몰랐어. 왜 몰랐을까? 가게를 방문한 적도 있다고 하지만 정작 마주치지는 못한 채 엇갈리던 나날이라니 꼭 오늘을 위해 이제껏 아껴둔 인연만 같잖아. 물론 이런 감상은 능청스런 미소로 살짝 감춘다. 이런 이야기 좀 부끄럽잖아.

대련도 어울려줄 거야? 라한 씨는 강한 사람 같아서 내가 승부가 되려나 모르겠지만. 그래도 포켓몬 배틀보다는 차라리 인간 배틀이 조금 더 자신 있으니까.”

돌아가면 약속이야. 개구지게 웃으며 새끼손가락을 내민다. 내가 기억하는 사람이 어제까지 100명이었고 오늘로 101명이 되었다면 과연 당신은 어떨까. 당신의 빈 공간에 처음 들어가는 얼굴이 나라면 대단한 영광일 텐데.

입으로는 재잘거리며 기억은 다시 는개마을에서 가온시티로, 모래톱길을 지나 하랑마을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그가 말하는 지루하지 않은 하루와 자신의 하루를 교차했다. 매일을 똑같이 보내면서도 지루한 적 없다는 눈앞의 인물이 도리어 신기할 따름이다. 단 한 번도? 묻고 싶었다.

나는 말이지…….”

곡선을 그리던 입술이 떨어졌다.

매일 가는 곳이 다르고 만나는 사람이 달라도, 매번 받는 주문이 다르고 어깨에 짊어지는 죽통의 개수가 달라지는데도, 어떤 날은 가게 일을 쉬고 대나무밭을 벗어나 어디든 멋대로 두 발 닿는 곳까지, 정말이지 계획에 없는 일에 푹 빠져서 충동 그대로 보내기도 해봤는데.”

당신이 보내온 시간과는 전혀 다른 시간을 보내기도 해봤는데.

그런데도 때때로, 지루하고 지루해서…… 이 지루함에서 어떻게 하면 벗어날 수 있을까, 우울해질 지경이었어. 신기하지. 무엇이 날 이렇게 지루하게 만든 걸까. 지루함이라는 것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그저 같은 일을 반복할 때 생겨나는 게 아니라면, 이 지루함은 어떻게 해야 사라지는 걸까. 미소가 끊긴 순간은 찰나였다. 여자가 다시 웃는다.

이런 생각 캠프를 시작하자마자 싹~ 나아 버렸지만. 으핫. 맞아, 맞지. 라한 씨보다 많은 걸 보았을진 몰라. 많은 걸 접했을 수도 있고. 그래도 당신이 모르는 걸 내가 아는 만큼 내가 모르는 걸 당신이 알고 있을 거야. , 이런 걸 절차탁마라고 하던가? 우리 서로 배워나가면 그거 참 좋겠다.”

당신에게 듣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 일단은 그거, ‘바라는 기사가 무엇인지부터. 이야기를 시작하려면 역시 차가 있어야지. 의아한 표정에 껄껄 웃으며 수정과를 든 잔을 부딪쳤다. 경쾌한 소리가 시작을 알리는 것만 같았다. 푸실마을을 떠나기까지 아직 남은 하룻밤, 이야기를 끝맺기엔 이른 시간이다.

 


캐릭터가 어떤 인물인지 막 잡아가게 된 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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