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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진 몰라도 멋진 말이 곁들어진 수리 박사의 오리엔테이션이 지나고 삼삼오오 화담을 나누는 친목의 장이 열렸을 때, 수다쟁이 능란도 어디에나 빠지지 않고 대화에 끼어들었다. 이거 꼭 학교에 다녔던 시절이 떠오르는걸. 거의 한 반 규모의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오랜만에 자기소개 같은 것도 하고 있자니 다들 차림새만큼이나 다양한 출신지를 선보였다.
가라르의 엔진시티, 신오의 장막시티, 팔데아 베이크마을에 관동지방 갈색시티까지. 다들 참 멀리서도 와주었다. 그만큼 각자의 기대가 걸려 있단 뜻이렷다. 그야말로 동네 마실 나오듯 손가방 하나 달랑 들고 걸어온 능란과는 출발점부터 달랐다. 실제로도 정말 다르다. 비행기를 타고 배를 타고, 장거리 이동의 끝에는 는개마을부터 차도 탔겠지. 이 몸은 집합 5분 전에 집에서 나왔는데 5분과 50시간, 기대의 차이가 느껴지는가?
덕분에 조금, 부담스러워지고 말았다는 이야기다. 캠프의 첫 활동, 대부분이 필드 리서치부터 온건하게 시작한 데 반해 다짜고짜 지나가던 트레이너를 붙잡고 시비를 건 것은 이런 연유다. 능란의 나쁜 버릇이었다. 긴장하면 과장해버리는 것은.
“아-아, 절대 질 거라고 생각했어.”
트레이너의 무책임한 말을 무시한 채 아직도 긴장이 풀리지 않은 분홍털의 빠모는 파직, 파지직, 정전기를 일으키며 포켓몬스낵을 갉아먹고 있었다. 지금 잘못 건드렸다간 절대 찌릿찌릿되고 말 것이다. 불 앞에서 일하는 능란은 화상이라면 두렵지 않았지만 감전은 무서웠다. 역시 가온시티에 가거든 전열 장갑이라도 하나 장만해야지.
빠모를 쓰다듬는 대신 데구르르, 풀밭에 누운 여자는 실없이 웃었다. 아니, 정말로. 볼품없이 질 줄 알았다니까. 그야 밤이고, 어둡고, 우리 모모는 완전 아가고, 저쪽은 길 가다 마주친 트레이너에게 배틀 신청하는 일이 거리낌 없는……
「가라, 치치. 로킥!」
「판!」
사실은 생각했다. ‘내가 고작 이 정도로 질 리가 있겠어?’ 자만이 아니다. 오히려 잘 알고 있는 축에 속한다. 이 몸이 가진 그릇의 크기는 대략 손가락 여기서부터 저기까지. 이 그릇이면 푸실마을 정도야 가볍게 평정하지, 그럼, 그럼. ──푸실마을을 넘으면? 아, 저기 당랑거철의 그림자가 짙다. 수레바퀴가 구르기 시작하면 막을 수 없다. 악몽이 닥쳐온다. ‘고작 이 정도’라는 한계다.
무기력함이 어깨 위를 짓눌렀다. 힘겹게 숨을 내쉰다. 우리 장거리 달리기를 할 거잖아. 지금부터 힘을 빼면 안 되지. 등줄기를 애써 폈다. 만무의 능은 여기 없다.
『능란 씨는 어떠세요? 트레이너 캠프에 참가하시고 삼게 된 목표라던가. 있으신가요?』
내 목표는──
“아마추어 배지 하나쯤은 있으면 좋겠다 싶어.”
고작 이 정도를 벗어나는 것. 요오, 그 이상은 아직 비밀이라구. 여자의 마음을 함부로 읽으려 들면 못써. 나머지는 다음 이 시간에 또 들어줘. 잊지 않는다면 말야.
기세 좋게 갠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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