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늘봄마을 아르바이트
트레이너 캠프에 참여하기로 한 이상 모두가 공평한 출발선에서! 이런 모토를 따라 능란은 자신의 비상금 주머니를 집에 잘 두고 와야 했다. 몇 년을 소중히 모은 돈은 만의 하나 가족에게 들키지 않도록 집 뒤로 이어지는 또박산 돌무덤 어딘가에 숨겨놓았으니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할 것이다.
대신 캠프에서는 캠프만의 재화를 통해 필요한 물건을 구매하고 이 재화는 다시 각 마을을 돌아다니며 마을의 일손을 돕는 형식으로 보충할 수 있다고 하였는데 이게 꼭 농번기의 품앗이 같아서 능란은 이 제도가 마음에 든 중이다. 과연 수리 박사, 화랑 토박이다운 수단이다.
그러나 첫 마을─엄밀히 말해 푸실은 튜토리얼이지!─부터 떨어진 의뢰가 능란으로선 손 댈 수 없는 것일 줄 몰랐다.
“최근에 차롱숲의 판짱 무리가 죽순을 너무 많이 먹어 치우지 뭐니. 판짱들을 쫓아내지 않으면 대나무 씨가 마르겠어.”
“아하, 하하하. 그, 그렇구만. 그거 참 큰일이라고.”
차롱숲이라는 이름만 들려도 흠칫 놀라고 마는데 거기에 판짱이라니, 거기까지 들으면 뒤로 들려오는 목소리가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능란은 그저 자리를 피하는 데 급급할 수밖에 없었다. 그곳에 무슨 의뢰가 오든지 간에 갈 수 있을 리 없다. 차롱숲은!
차롱숲은── 능란을 환영하지 않는다.
엄밀히 말해 그 넓은 숲 전체를 접근하지 못하는 건 아니었다. 근처의 연무장은 배달을 위해 매일같이 들르던 곳이고 죽순을 캐기 위해 허가된 구역까지는 잘도 슥슥 다녔다. 그가 접근하지 못하는 건 차롱숲 안쪽의 판짱과 부란다가 모여 지내는 군락뿐으로, 능란에게는 금지구역이나 다름없었다.
「차롱숲으로 데려가 줘 로토?」
「에에잉, 아니야아.」
화랑의 방방곡곡을 다니는 여자가 딱 한 곳, 못 가는 곳이 있는 정도는 괜찮지 않겠어? 누구를 위한 양보일까. 비상금이 묻힌 자리 옆에는 지금도 빈 몬스터볼이 버림받은 것처럼 쓸쓸히 놓여 있었다.
“──난 별로 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단다.”
그랬건만 각오가 무색하게 툭 튀어나온 말 한 마디에 숨이 덜컥, 멎었다.
“과거에 대한 정이 있다면 찾아가 주었으면 싶은데. 근래엔 서식지에서 쫓겨나기 직전인 것 같은걸.”
안색이 굳는 여자를 두고 나비란은 특별히 더 자극하려는 것도 아닌 덤덤한 조언을 건네주었다. 그러나 이 또한 상냥하게 등을 밀어주려는 일이었음을 안다. 안절부절하지 못하던 능란은 결국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 잠깐만 다녀올게. ……말해줘서 고마워, 나비 씨.”
절대 가지 않으리라 다짐한 곳을 제 발로 가려니 이상한 기분이었다. 이게 얼마만이더라. 가는 동안 마을 사람들에게 자세한 사정도 들었다. 판짱 무리가 죽순 서리를 하는 일 자체야 크게 드물 일도 아니었으나 문제는 그 숫자였다.
“눈감아주는 것도 한두 번이지. 이대로라면 죽순이 남아나질 않겠어.”
“단도리 해주는 부란다는 어디 가고 판짱 무리의 숫자가 저렇게 는 건지, 저대로라면 차롱숲의 포켓몬들간의 세력 균형도 걱정이라니까. 어디 전문가를 불러와야 하나.”
눈으로 확이나니 주민들의 말이 틀린 게 하나도 없었다. 보통은 마을 경계까지 내려올 리 없는 판짱 무리가 벌써 입구를 득실거리고 아직 한 뼘도 자라지 않은 죽순에 손을 뻗었다. 짧은 사이, 그 무리 중 눈에 익은 녀석이 없다는 걸 파악한 능란은 포켓몬들 사이로 길게 대나무봉을 꽂았다.
“이봐, 이봐. 너희들. 대장은 어디 가고 너희끼리 모여 있냐니까.”
난데없이 나타난 방해꾼의 등장에 판짱들은 하나같이 귀엽게 생긴 얼굴을 구겼다. 그래봐야 효과가 있을 리 없는 얼굴이었으나 적의만은 확실히 전해졌다. 그러나 수 마리의 판짱을 앞에 두고도 능란은 겁내지 않았다. 왜냐면,
“킁.”
가게의 부란다를 데리고 왔기 때문이다. 엣, 이거 치트키 아냐? 어머니의 부란다, 다다가 땅을 한 번 딛는 순간 죽순들이 5cm는 위로 솟을 듯 묵직한 소리가 들렸다. 판짱들이 단번에 온순해진다. 능란은 가져온 주먹밥을 판짱들에게 하나하나 나눠주었다. 보아하니 차롱숲 태생이 아닌 녀석들도 섞여 있는 것 같았다.
역시 이상한 노릇인걸. 또박산에서 정크 트레이너가 난리를 친 것처럼, 누가 이 녀석들을 여기로 몰아내기라도 한 건 아니겠지. 생각만 해선 소용이 없었다. 능란은 판짱 무리 중 제일 배를 내밀고 있는 녀석을 톡톡 건드렸다.
“너희 대장에게 데려다 달라는 거야~ 이야기가 잘 통할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비설을 자꾸만 찌르는 판짱들의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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