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모모 진화
“모모는 나랑 있는 게 좋아?”
작고 어린 빠모가 근 몇 달 간 가장 많이 들어본 질문이라면 단연코 이것이다. 페라페처럼 인간의 말을 따라해 울 수 있다면 “좋아?”, “좋아.” 제일 먼저 이 말부터 소리 낼 수 있었겠지. 왜 이런 질문을 하는지, 그전에 물어보는 말의 뜻은 무엇인지 인간이 낯선 빠모는 다 이해할 수 없었다.
대신 한 가지 습득한 것이 있다면 저런 말을 할 때 트레이너를 꼬옥 안아주는 것이 아주아주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조막만하고 따뜻한 털뭉치가 목을 끌어안고 뺨을 부비면 미약한 정전기가 파직거리는데도 아랑 곳 않고 트레이너는 기쁜 듯 마주 안아주었다.
“나도 좋아, 너랑 있어서.”
──그래도, 내가 싫어지면 언제든 가버려도 돼?
빠모는 여전히 트레이너의 말을 다 이해할 수 없었다.
“여행을 갈 거야, 모모. 이번엔 아주아주 느긋하게.”
어느 날 인간이 가방을 싸기 시작했다. 자기 몸의 3배쯤 되는 크기로 짐을 싸다가 “아, 첫마을은 여기니까 마을 하나 분량은 뺄까.” 중얼거렸는데 빠모의 눈에는 짐이 그렇게 줄어든 것 같지도 않았다.
몇 달을 함께하는 동안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설레는 것도 같았고 긴장한 것도 같았다. 걱정스럽게도 보였고 기대도 엿보였다. 미숙한 인지로 다 이해할 수 없는 복합적인 감정이 감돌아 빠모는 그새 트레이너가 조금 낯설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서 몸을 타고 쪼르르 올라 뺨을 콕 눌렀다. 짐싸기에 집중하던 트레이너가 눈이 동그래져 빠모를 보았다. 프하, 웃음이 터지고 조막만한 포켓몬과 함께 침대에 풀썩 쓰러진다.
“분명 즐거울 거야. 즐기고 오자.”
인간의 말을 할 수 있었더라면 왜 그런 표정이야? 물어봤을 텐데. 혀가 짧은 빠모는 뺙, 답하며 그의 품을 파고드는 게 전부였다. 그래도 즐거운 거라면 자신 있었다.
“모모, 전기쇼크.”
“뺘~”
배달을 다닐 때는 주로 거대한 부란다와 함께했다. 너무 먼 거리는 공중날기 택시를 이용하기도 했다. 마을 근방에서 야생 포켓몬을 마주칠 때도 있었지만 굳이 ‘배틀’이라고 할 경험은 많지 않았다. 그런 포켓몬에게 트레이너의 지시는 낯설고 떨리는 것이었다─정작 그 트레이너는 무척이나 익숙해 보였지만─. 첫 승리에 잔뜩 들뜨고 흥분한 포켓몬을 집어 들며 능란은 어쩔 수 없단 듯 웃었다. “너도 이런 거 좋아하는구나. 겁쟁이인 줄만 알았더니.” 그 다음엔 뭐라고 했더라? 트레이너의 말을 채 다 듣기도 전에 새로운 야생 포켓몬이 튀어나왔다. 빠모는 재빠르게 뛰어내렸다.
“──네게는 이기는 경험을 시켜주고 싶어.”
전기쇼크가 번쩍했다.
“……기권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날은 참 이상한 날이었다. 만나는 포켓몬, 만나는 트레이너마다 힘내라고 응원을 해주었다. 힘내? 뭘? 여러 포켓몬과 하이터치도 했다. 무언가를 전달해준 것 같은데 알 수 없었다.
그날은 정말로 이상한 날이었다. 볼에 들어가기 직전, 트레이너는 꼭 울 것 같은 표정을 하고 빠모와 우르를 바라보았다. 보통 저럴 땐 그 질문을 했는데. “나랑 있는 게 좋아?” 이번엔 아니었다. “너희에게 지는 경기는 시키지 않을 거야.” 이번에도 빠모는 알아듣지 못했다.
기억하는 거라곤 얼어붙은 회장의 분위기, 제 트레이너를 향하는 전기쇼크보다도 따가운 시선들, 구멍파기를 쓰고 싶은 트레이너, 그리고
▶ 도망친다.
빠모는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 시작도 하기 전에 끝나버렸다.
그 뒤로는 몇 달 동안의 기억보다도 더 많은 기억들이 빠르게 필름처럼 넘어갔다. 감기에 걸려 온 트레이너가 호숫물에 빠지기도 하고 누군가의 자장가를 옆에서 같이 듣기도 하고 싸우고 화내고 사과하고 한심하게 주저앉았다가 일어나고, 다시 싸우고 혼나고 사과하고 또 주저앉았다가 일어나고, 혼나고 위로받고 또 주저앉… 그만 주저앉아, 인간. 툭.
“악. 모모, 왜 그래?”
밤에 몰래 훌쩍훌쩍 울다가 우르의 털에 슥슥 닦고 일어나는 것도 보았다. 우르는 참 착한 포켓몬이다. 그걸 다 모른 척해주다니. 아무튼 많은 일이 지나고 난 뒤 인간은 겨우 다시 일어나려는 것 같았다. 세 포켓몬을 모아놓고─알도 있었다─곧 체육관에 도전할 거란 이야기를 했다. 역시 저번의 그건 도전한 게 아니었던 거지?
“그래서…… 이길 수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겠지만 가보려고 하는데, 그러려면 너희의 도움이 많이 필요해.”
나를 도와줄래? 반쯤 감긴 나태한 눈초리 안에는 다 숨길 수 없는 열망이 감돌고 있었다. 빠모는 저 시선을 본 적이 있다. 언제냐면, 저에게 볼을 던질 때다. 절대 속내를 말하지 않는 주제에 때때로 참지 못하고 욕심을 부리고 마는 제 트레이너. 저와 똑같은 겁쟁이 트레이너.
그런 그가 먼저 용기를 내주었기에, 빠모 또한 일어날 용기가 생겼다. 진화가 무엇인지는 이미 나몰빼미를 보고 느꼈다. 즉, 기합이다.
“뺘!”
요 며칠 물짱이들을 따라다니며 연습한 두 발 서기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나는 너랑 있는 게 좋아!”
“그래서 너랑 나란히 걷고 싶어.”
편집과 구성을 조금 새롭게 시도해봤는데 좀 더 아기자기 귀엽게 못해서 아쉽구...
아무튼 능모모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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