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켓몬스터 : 피치럼블

044) 11.10. 락樂 : 아토체육관 도전

천가유 2023. 12. 27. 21:23

ㅡ아토체육관 챌린저 클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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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챌린저 클래스로 돌아와버렸다는 거야.”

게시판에 이름을 적어놓고선 능란은 으으으음~ 하고 특유의 입매를 우물우물거리며 웃었다. 헤쭉, 나오는 표정은 거대한 도전을 앞에 두고 긴장되고 근질거려 어쩌지 못하는 것이었다. 이러다가 조금 더 궁지에 몰린다 싶으면 자폭해버리는 본인의 못난 버릇은 이제 고쳐진 건지 어쩐 건지. 다만 그렇게 궁지에 몰리지 않도록 스스로 덜어내는 법을 익혔다.

이번에도 그렇다. 너무 자신을 몰아붙이다가 먼저 떨어져 나가지 않도록 어깨의 힘을 풀어야 했다.

──라는 게 말은 좋지마안, 이기고 싶은 마음이 어디 가겠어?”

캠프의 귀염둥이는 승패에 연연하지 않는다고, 져도 즐거운 배틀이면 충분하다고 하던데 몇 번인가 그 마음을 따라해 보려고 했지만 번번이 실패였다. 져서 즐겁지 않았냐고 하면 뭐 즐거움도 있지만, 즐거움 3할 속상함 3할 아쉬움 3, 거기에 좀 더 잘해내지 못한 자신에 대한 실망 1할까지 엉망진창이다. 그렇다면 역시 이겨야지. 이기면 다른 7할 모두 사라지고 100%의 즐거움이잖아.

그래서 욕심만큼 이길 자신이 있냐고 하면, 글쎄다. 으하핫 웃고 만다. 마음을 덜어내는 작용은 바로 여기서 행해진다. 너무 실망하지 않기. 죽을 둥 살 둥 필사적으로 굴고 몰입하는 건 여전히 어려운 일이었다.

식사를 든든히 하고 최종점검에 들어간다. 출전 엔트리를 적던 능란은 매번매번 해도 달라지지 않는 인선에 다시 웃었다.

결국 4번째 체육관까지도 우리는 쭉 멤버 변동 없는 상태구만.”

위위는 제가 또 빠진 것이 불만스러운지 빽빽 울며 항의를 제기하고 있었다. 미안하다, 위위! 내가 부족한 탓이다! 샤샤는 불안한 눈망울이었다. 자신을 내보내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태태는 아직 무슨 생각인지 알 수 없었는데 다만 뜨뜻한 모래땅에 몸을 지지며 있는 것이 나쁘지는 않은 모양이다. 진화 전까진 퍽 성급하게 굴더니 다태우지네가 되고 나서는 제법 여유다. 그럼 셋 다 오늘도 응원 잘 부탁해.

세 포켓몬을 놓고 출전 멤버들을 돌아본다. 이제는 뭐, 얼굴만 봐도 무슨 생각인지 알만한 모습들이었다. 나나는 차분했고 배배도 온순했다. 모모는 씩씩하려고 애쓰고 있었지만 꼬리가 동그랗게 쳐진 것이 긴장한 티를 숨기지 못했다. 보면 제일 차분하지 못한 거 나뿐이지? 모모를 안아 올린 채 트레이너는 반성했다.

너희는 늘 잘하니까 이 말은 결국 나에게 하는 말인데…….”

할 수 있는 준비는 다 마쳤어. 지금의 이 상태가 우리의 최선이야. 더 잘할 수 있었다고, 이번에 좀 못한 것 같다고 서운해하지 말고 지금 선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걸 다하고 오자.”

그러면 분명 즐길 수 있을 거야.”

피차 즐기는 배틀이 되자던 일홍의 말이 귓가에 스친다. 배틀 코트가 오픈되면서 흥겨운 음악이 사방에서 들렸다. 위압감을 안겨주는 북소리, 어딘지 쓸쓸한 바닷바람 소리, 바위에 가로막혀 모래바람 한 점 없던 고요함을 지나 이제껏 방문한 곳 중 가장 화려하고 즐거운 분위기였다. 이래서야 정말, 이기느냐 지느냐의 시합이 아니라 그 사람과 저의 멋진 듀엣 무대라도 되는 것 같지 않은가.

그게 노림수인 건가?”

중얼거리며 호명에 맞춰 걸음을 옮긴다. 앞선 다른 어떤 곳보다도 유난히 관중이 많은 자리였다. 한 달 전의 자신이었다면 이 모든 사람들이 저를 한심하게 여길 것만 같아서, 잘하지 못하는 스스로가 부끄럽고 꼴사나워서, 자신이 없어서 그야말로 도망태세로 곤두서 있었을 테지만…… 지금은 아니라니 다행이지. 그러니 이런 낯 두꺼운 퍼포먼스도 하는 것이다.

그야말로 낯 두꺼운 퍼포먼스였다.

건너편에서 나오는 짐리더에게 경쟁의식이라도 가지듯 사람들의 시선을 느끼며 몸을 움직인다. 갓을 높이 던져올리고 햇빛을 가려주던 색색의 천들은 양손에 가볍게 말아쥐어 물 흐르듯 스텝을 밟았다. 한들한들, 빛을 받으며 길다란 천들이 허공을 수놓는다. 유연한 몸은 코트의 시작점부터 뻗어져 궤도를 알 수 없이 움직였다. 인심난측人心難測, 사람의 마음은 헤아리기 어렵듯 여자의 발이 어디를 향할지도 알 수가 없다. 그럼에도 마냥 흥겹기만 했다.

이러다 갓이 먼저 떨어지는 게 아닐까 위태로운 순간, 모크나이퍼가 날아올랐다. 낚아챈 그것이 머리 위에 다시 얹어졌을 땐 어느새 무대의 중심에 있었다. 쏟아지는 환성 앞에서 복숭아빛으로 뺨을 물들인 능란은 능청스럽게 다시 정중한 인사를 건넸다.

일홍 씨 앞에서 주름잡기에는 춤사위도 배틀도 아직 한참 못미치지만, 보다시피 즐기기 위한 각오를 하나 선보였어. 한 번 움직이고 나니까 엄청 들뜨긴 하는데~ 이 리듬이 배틀까지 이어질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나도 하고 싶다고 느끼는 무대, 해보겠단 거야.

 

또다시 배틀 코트에 올라가는 트레이너는 샤샤는 커다란 눈망울로 지켜보았다. 저기 올라가서, 또 무시무시한 충돌을 보이려는 게 아니야? 그런데 너는 어딘지 신이 나 있어. 즐거워 보여.


사진을 잘 고른 것 같아서 뿌듯했어요. 칼춤으로 랭업해놓고 배틀하기도 짜릿했고.

칼춤을 1번쯤 더 썼으면 나나 혼자서 다 이겼을 텐데 거기서 급소에 맞았더라면 뒤엔 아무것도 못할 운명이었어서 적절했다 싶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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