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10주차 리포트
날카로운 에어슬래시가 바위를 가른다. 오늘로 몇 개째인지 모를 노릇이었다. 이러다가 산맥 초입을 돌산으로 만들겠어. 협곡 안쪽의 드래곤들이 화가 나서 찾아오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러는지. 그러나 이마저도 부족해 작은 음뱃은 막 습득한 폭풍을 시험하겠다는 듯 맹렬하게 날개짓을 했다. 결국 날뛰는 음뱃을 말려서 데려온 건 모크나이퍼였다. 더 훈련할 거야. 더 강해질 거야! 버둥거리는 녀석을 발주먹으로 꿍, 때리며 진정시키자 알에서 태어난지 이제 갓 2달이 되어가는 어린 포켓몬은 반항어린 눈빛으로 씨근덕거렸다.
이 녀석 벌써 사춘기인가. 노트 씨네 난로도 이랬던 것 같은데. 지켜보는 트레이너는 심란할 따름이었다. 그야 무엇이 불만족스러운지는 알았다. 볼 안에서도 포켓몬들 역시 다 지켜보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힘마저도 느꼈을 터다. 공포스럽기까지 하던 얼터스톤의 힘, 얼터코팅한 드래캄의 프레셔, 인간의 길을 벗어난 챔피언, 그의 피를 토하는 듯한 외침.
「선전포고도, 무엇도 아닙니다. 저는 이 힘을 이용해 영원히 챔피언의 자리에 남아 있을 겁니다.」
「모두가 동경하여 강함을 추구하게 만드는, 완전무결. 무소불위의 존재. 저의 존재는 화랑지방의 모든 트레이너에게 목표가 되겠죠.」
「이것이 제가 이 땅을 사랑하고, 배틀을 사랑하는 방식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이 땅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물러설 수 없는 게 당연하잖아!」
그 광경을 지켜보던 모든 사람들과 모든 포켓몬들이 각자가 각자의 생각을 가졌으리라. 누구 하나 같은 생각이었을 리 없었다.
이를테면 능란은 보았다.
「결과를 생각해 주세요. 끝이 좋아야 괴로웠던 과정이 아름답게 비치는 법입니다.」
그 말에 작게 수긍하는 듯한 기색의 사람을.
가령 능란은 생각했다.
「여로 님의 절실함에 파고든 거겠지….」
챔피언이 속아 넘어간 것일까. 그 또한 동조자일까. 비서들이 악인인 걸까. 그들의 의도에 나름의 선함이 있다면─ 그것이 면벌부라도 되는가.
각자의 생각에 정답은 없었다. 다만, 자신의 경험에 바탕해 느낀 결이 일치하지 않음에도 이 자리에 모인 모두가 챔피언을 막기로 동의했다. 그것으로 되었다. 그리고 백인백색의 결 가운데 능란의 가장 어린 포켓몬이 느끼고 내린 결론은,
《더 강해질래!》
덕분에 새벽부터 밤까지 위위의 훈련에 꼬박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허리가 휘는 걸 느끼며 능란은 아직도 기운이 팔팔한 포켓몬을 불렀다.
“위위, 오늘은 이쯤 하자구. 너 그러다 날개가 덜 자란다? 충분히 시간을 들여서 커야지, 조급하게 군다고 되냐는 거야.”
포켓몬이 부루퉁하게 트레이너의 지시에 불복하려던 때에, 스마트 로토무가 울렸다. 발신인은 형제. 아, 그러고 보니 퇴근하면서 전화하겠다고 했었지.
“요오, 무슨 일?”
「무슨 일이냐니. 나 그쪽으로 가?」
“엥? 뭘 와.”
「자꾸 딴 소리 하지 말고.」
태연자약한 대답에 상대는 깊은 한숨으로 돌려준다. 이렇게 걱정해오는 거 민망하다니까, 뺨을 긁적이며 능란은 이번에야말로 성실히 답했다.
“방방곡곡 배달기사를 뭘로 보고 그러시나. 정말 위험하다 싶으면 알아서 몸 빼겠지.”
성실히 답할 생각이었으나── 돌아온 답변은 제 상상과는 다른 궤를 하고 있었다.
「이미 충분히 위험한 상황이었거든? 왜 산울림이 있는 곳으로 제 발로 들어간 거야. 캠프 사람들까지 우르르. 그러다 정말 산사태라도 났으면, 굴이 무너져서 그대로 파묻히기라도 했으면 정말 어떡했어. 다들 걱정 많이 했어, 란아.」
“아.”
찬물을 뒤집어쓴 듯 돌아오는 현실자각이었다. 그렇지, 그래. 얼터스톤의 힘이 실은 포켓몬의 생명력을 좌지우지하네, 그 힘을 노리고 챔피언이 자신의 몸에 스톤을 꽂았네, 챔피언이 인간을 벗어나려고 하네 어쩌네, 비서들이 나쁘네 어쩌네, 그야말로 저희만 아는 이야기일 뿐이다. 뉴스를 지켜보던 사람들에게는 고작해야 ‘골갱이 산에 지진이 발생했다.’, ‘리그 사람들이 통제하며 인부들을 대피시켰다.’, ‘그런 자리에 야생의 트레이너 캠프 사람들이 나타났다?’ 이 정도가 아닐까.
세상을 지키기 위해 불철주야 애쓰는 복면 히어로들의 기분이 이랬던 건가, 얼토당토않은 감상에 빠지며 능란은 고쳐 말했다.
“별일 없었어. 안전했고. 안에…… 찾으러 가야 하는 사람이 있었거든. 그래서 달려갔던 거야.”
「……그래서 그 사람은 무사했어?」
‘찾았어?’도 아니고 ‘무사했어?’라니,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을 해오잖아, 수. 한 박자 숨을 골랐다.
“있잖아, 수. 너는 무슨 일이 있어도 내 편이지?”
「응? ……아니?」
“엑.”
「혹시 국제 경찰이라도 불러야 할 수준의 범죄에 연루된 거라면…… 자수하자, 란. 면회갈게.」
“끊어!”
기껏 사람이 진지하게 말했더니. 끊겨진 전화는 2초만에 다시 걸려 왔다. 능란은 잠깐 애틋한 적 없는 형제를 수신거부로 돌려놓고 모래톱길로 향할 준비나 하였다. 지금은 좀 아니꼽고 예쁘지 않으니까 한 4시간쯤 방치했다가 그 녀석이 괜히 신경 쓰여서 잘 준비도 못하고 있을 즈음 다시 연락해야지. 그리고선 다시 한 번 물어야겠다.
‘넌 내 편이지?’라고.
여로에게 있어 산사와 산수 역시 그런 존재가 아니었을까. 두 사람에게 있어 여로가 맹목의 대상이었던 것처럼.
심각해지는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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