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아토시티 아르바이트
선글라스 두 개를 나란히 맞춰 끼고 모래바람 흩날리는 대지 위로 폼나게 착륙한다. 떠나갈 때처럼 리무진 택시를 부르진 못했지만 거대한 아머까오의 날개짓 아래에서 코트를 펄럭이며 내리는 두 사람의 모습은 제법 어딘가의 첩보 영화에 나올 것도 같았다.
“꼭 이런 식으로 등장해야 해, 능란?”
“애들 앞에선 기선 제압이 중요하다는 거야.”
어른들은 품위가 있어 겉보기가 허접해도 면전에서 지적하는 법이 없지만 애들은 다르다. 조금이라도 틈을 보이는 순간 ‘재미없어.’, ‘시시해.’, ‘하나도 안 멋져.’, ‘안 할래.’ 그렇게 손님들을 모두 잃고 말 것이다. 그러니까 아이들을 구름떼처럼 모으기 위해서 이렇게 등장부터 화려한 연출을 해보았단 것이다.
마치 일홍처럼.
적당히 하고 갈 정진이 과연 구름떼 같은 신청을 바랐는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유스팜에는 미리 부스 신청을 해두었기 때문에 척척 다가가 이름표가 걸린 목걸이와 부스 위치를 받았다. 정해진 자리로 이동하면서 능란은 미리 준비해두었던 현수막을 바람에 크게 펄럭였다.
[유스팜 스페셜 게스트 초청 :: 당신도 일홍이 될 수 있다! 다 함께 춤춰봅시다.]
이렇게까지 할 일인가. 허위매물인 건 아닌가. 여러 가지로 태클을 걸만한 문구였다. 그러나 능란은 뻔뻔하기만 했다. 자, 오라버니. 일홍 씨를 뛰어넘을 각오로 가르쳐주는 거야 춤. 어쩔 수 없지. 하기로 한 이상 빼는 성격은 아닌 정진도 덩달아 주변으로 호객 행위를 이었다. 두 사람의 뒤로 홍보문구를 보고 관심을 가진 아이들이 피리 부는 사나이 행렬처럼 줄을 잇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관심에 정진의 어깨 위 가가만 우쭐거렸다.
부스는 운 좋게 목이 좋았다. 가가와 나나가 양쪽에서 현수막을 당겨 부스 꼭대기에 걸고 아래에선 정진은 화이트보드에 오늘의 스케줄을 적었다. 1교시 알로라 댄스, 2교시 화랑무용, 3교시 실전. …실전?
“저기, 능란. 이거 설마 아이들이랑 배틀을 하겠단 건 아니지?”
“오오, 그것도 재밌겠구만. 하지만 아니지이. 마지막엔 다 같이 발표회라도 해보잔 거야.”
발표회인가. 확실히 그냥 배우는 것보다 실천하는 게 더 잘 기억된다는 걸 정진도 아는 바였다. 그것도 나쁘지 않겠어. 그러면 촬영 레코드를 보호자에게 제공하기로 할까? 정진의 제안에 그거 정말 좋아하시겠는걸. 능란이 씩 웃었다.
데데를 머리에 얹은 모모가 춤을 추고 가가를 태운 나나가 허공에서 전단지를 뿌리며 다른 부스의 시선이 따가울 정도로 홍보를 한 끝에 두 사람의 체험전은 대성황이었다. 아주 먼 옛날의 알로라에선 이 춤을 문자 대신 사용하기도 했었어. 몸으로 말을 표현하다니, 꼭 안농 같지. 정진의 풍부한 배경지식을 바탕으로 한 이론수업은 지나가던 어른들도 발을 멈춰 세우고 들었다. 지루해하는 아이 하나 없는 모습에 이거라면 브리더가 아니라 스쿨의 선생님도 잘하겠는걸? 능란은 정진에게 새 진로도 말해주기로 했다.
본격적으로 춤을 가르쳐줄 땐 정진의 옆에서 능란이 작은 북을 두드렸다. 아토시티는 그러지 않아도 어딜 가나 음악이 흐르고 있었기 때문에 박자를 맞춰줄 북 하나만 있으면 어렵지 않았다.
“알로라의 춤은 부드럽게 흘러가는 데 있어. 어딘지 아토시티의 전통춤과도 닮아 있을 것 같네.”
물론 유연하게 잘 따라하는 아이가 있는 만큼 전혀 유연하지 못하고 뻣뻣한 아이도 있기 마련이었지만─ 한 번에 다 움직이려고 하지 말고 천천히, 자신의 몸을 의식해보자. 손끝에서부터 차근차근 흐름을 타는 거야. 정진의 설명이 곁들여지자 조금씩 나아지는 모습을 보였다.
참여한 아이들 모두 즐거워 보였다. 순조로운 진행이었다. 춤만은. 그러나 일이란 늘 계획대로 따르지 않는 법이다. 기껏 참여해놓고 내내 부루퉁한 표정으로 그만을 노려보는 아이가 입을 연 것이다. 기껏해야 열두어 살, 트레이너인 걸까? 맛보돈을 옆에 끼운 채 춤엔 참여 안 하던 소녀는 곧 정진에게 검지손가락을 척 겨누는 것이었다.
“일홍 관장님을 이겨버렸어. 아저씨 싫어!”
“아저씨…….”
“들어버렸다, 아저씨.”
자신의 영웅을 이겨버린 아저씨 따위 미운 것이다. 오늘은 그래서 배틀이라도 걸려고 했던 걸까? 맛보돈과 볼을 꾹 쥔 채로 정진을 노려보면서도 아이는 조금 떨고 있는 듯했다. 글쎄, 싫다는 말 좀 들었다고 어린아이와 진심 배틀을 할 만한 사람이었다면 여기 오지도 않았을 텐데. 여전히 관성처럼 북을 두드리며 능란은 힐끔, 정진의 표정을 살폈다. 흠, 확실히 무표정의 정진 씨는 조금 다가가기 어려울지도.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모모는 데데와 열심히 훌라를 추었다. 옆을 힐끔거리는 아이들을 위해 능란은 북소리를 높였다. 그사이 정진이 아이의 눈높이에 맞게 무릎을 낮추었다.
“일홍 관장님은 배틀의 결과가 어떻든 하는 사람도, 보는 사람도 즐거운 배틀이었다면 좋은 배틀이라고 하실 텐데 너는 보면서 즐겁지 않았나보구나.”
“웃…….”
괜찮아, 덧붙이며 손이 조심스럽게 아이의 머리에 얹어졌다. 보면서 즐겁지 않았으면 하면서 즐거운 배틀을 알면 되니까.
“나중에 너도, 관장님 앞에 도전할 만큼 성장해서 즐거운 배틀을 겪어보면 좋겠다. 그렇게 된다면 일홍 관장님도 분명 기뻐하실 거야.”
몇 마디 말에 아이가 얌전해졌다. 아이의 품에서 맛보돈이 푸흥, 울음소리를 냈다. 정말? 그 작은 속삭임에 정말이지. 대답해주는 정진을 보며 능란은 확실히 저 사람은 오빠다, 라고 다시 한번 생각했다.
이후에도 몇번인가 작은 트러블이 있었다. 아이도 많고 포켓몬도 많고, 게다가 춤은 흥겹고 사고가 발생하기 쉬운 환경이었지만 정진과 능란은 이런 일을 자주 겪어본 사람마냥 트러블에 능숙하게 대처했다. 보고 있어, 능수? 네가 없어도 이쪽은 마음의 오라버니와 능수능란이다, 훗.
특히나 알록달록한 전기 포켓몬들의 향연은 인기가 높았다. 아직 자기 포켓몬을 가져본 적 없는 아이들이 데데나 가가에게 마구 손을 뻗으며 나도 키울래! 라는 보호자의 듣기 싫은 말 TOP10에 들어올 대사를 하는 바람에 난처하기도 했다.
어떻게 좀 해봐요! 라는 보호자들의 시선을 따끔거리게 맞으면서 능란이 할 수 있는 말이라곤 “어어, 감전에 주의하자.” 이게 다였는데 정진은 에몽가를 키울 때 좋은 점을 10개를 말하면 나쁜 점을 15개쯤 말해 보호자들의 게비X콘이 되어주었다. 물론 에몽가의 단점을 말할 때의 가가의 표정이 나빠졌던 건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도 보람찼고 무척이나 즐거웠다. 그야말로 바쁘고 알차고 뿌듯한 시간이었다.
“──해서, 성공적으로 유스팜을 마친 것에 대하여 건배~!”
“건배~”
테이블 위로 산해진미를 늘어놓고 하랑사케를 짠, 부딪친다. 테이블 위에는 여관에 시킨 것만이 아니라 체험을 마친 보호자들의 선물도 가득 쌓여 있었다. 태권도 학원을 보내고 싶어 하는 심정이 바로 이런 것일까? 내일도 프로그램을 열어주면 안 되냐는 뜨거운 앙코르 요청을 힘겹게 거절하고 온 뒤였다.
아직도 춤의 열기가 미미하게 남은 채 능란은 키득이고 웃었다.
“정진 씨, 스쿨의 선생님도 잘 하겠단 거야.”
포켓몬은 천둥의 돌, 트레이너가 잡을 돌은?
오라버니... 아련해짐. 전기타입의 오빠가 있어 좋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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