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가온시티 아르바이트
딩-동, 하고 벨을 누를 것도 없이 수리 박사님의 비조푸는 바깥에서 트레이닝 삼매경이었다. 돌고 돌아 수리 박사의 연구실로 돌아온 능란은 비조푸에게 가져온 죽통밥을 나눠주며 수리 박사를 찾았다. 평소 같으면 누가 찾아왔냐고 고개라도 내밀었을 남자는 지금 산더미 같은 자료들을 옆에 쌓아두고 책에 코를 박고 있었다.
“요오, 수리 박사님. 잠은 제대로 자고 있는 거냐니까.”
“오? 왔구나. 아하하, 물론이지.”
옆에서 수리 박사의 던지미가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포켓몬이 고자질하지 않더라도 박사의 안색은 영 좋아 보이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라고, 마지막으로 그를 보았던 보드기 마을에서의 일을 떠올린다. 그 비서들은 정말 사람의 마음을 상처 주는 일에 악질이었다.
포켓몬을 이용해서 끔찍한 짓을 벌인 것도 모자라서 그러한 비도덕적 행위에 우리가 연루되도록 만들었다. 단순히 이용당했다는 문제만이 아니다. 우리로 하여금 죄책감을 갖도록 만드는 것이다. 정말 치사하고 비열하기 짝이 없는 행보다.
능란 자신으로 말하자면 그런 것에 순순히 이용당해주고 싶지 않아서 마음으로 거부할 속셈이었다. 일부러 상처주려는 일에 당해주겠어? 나는 무고하다 이거야. 그렇게 말해봤자 잘못한 건 너희잖아. 그러나 모두가 모두, 능란처럼 신경줄이 두꺼울 리는 없었다.
「……그럼 이 일들 모두, 나와 여기 아이들이 도와 마련한 연구 자료들을 토대로 벌인 일들이다…. 이건가?」
「내가 연구에 전념하고자 리그를 은퇴한 건. 여기 있는 아이들이 그런 나를 도와준 건 이런 일에 이용당하려 한 것이 아니다.」
「똑똑히 말해두겠는데, 잘 들어. 우리 연구가 이 이상 너희들의 독단에 악용된다면, 그때는 가만두지 않을 거다.」
「──참고하도록 하죠. 연구에 협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트레이너 캠프 여러분.」
저 녀석들의 의도대로 상처받아주지 말라고. 우린 나쁜 거 없잖아! 그렇게 외치고 싶었으나 박사가 책임감을 느끼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타인의 선의와 열정을 이용하는 사람들 덕분에 왜 이쪽이 속상해야 하는가. 아토시티에서 잘 먹고 잘 쉬던 것만 아니었어도 애꿎은 사원을 퍽퍽 두드려가며 울화통을 터트렸을 것이다.
그날로부터 오늘이 딱 열하루째였다.
“트레이닝 상대가 필요하다고 해서, 안 늦었지?”
그야 트레이닝 상대는 몇이라도 늘 부족하지. 수리 박사의 대답을 들으며 능란은 모모를 내보냈다. 같은 격투타입끼리 어디 힘 내보고 와. 수줍음 많던 포켓몬은 어느새 늠름해져서 용기 있게 비조푸에게 나섰다.
저 녀석도 비조도로 자랄 날이 머지않았으려나? 가게 주방에서 아버지를 도와 요리를 하는 집안의 비조도를 떠올린다. 그 녀석이 빚는 교자가 참 맛있었는데. 저 녀석이 진화할 때까지 매일매일이라도 와야겠구만. 너스레를 떨다 아, 생각난 듯 능란이 화제를 돌린다.
“그러고 보니 이번주에도 배틀 팰리스잖아. 스페셜 게스트 티켓을 마구마구 쓰고 있는데 이러다 수리 박사님이랑 마주치는 사람이라도 나오려나 싶다니까. 이거이거, 긴장되라. 박사님도 기술가르침만 하지 말고 가끔은 직접 몸을 움직이러 나오라구.”
“캠프의 아이들이 얼마나 성장했는지 직접 볼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지. 상대가 나로 정해지길 바라야겠구나.”
“그으래, 힘조절 좀 하는 박사님이랑 말이지? 나는 절대 풀파워의 박사님이랑 붙고 싶지 않지만─봐주면 감사하지만─안 그런 사람들도 있을 텐데, 어떻게 될지 궁금하구만.”
모모의 로킥에 코트 주위에 박혀 있던 바위 하나가 박살이 난다. 부서진 바위의 잔해, 모래먼지의 틈으로 비조푸의 양손이 매섭게 움직였다. 빠른 난파에 두들겨 맞으면서 모모는 끈기있게 빈틈을 찾았다.
마침내, 비조푸의 팔꿈치 아래가 비자 그곳으로 묵직한 펀치가 날았다. 번개펀치였다. 흩뿌려지는 바위의 잔해에서 오오옷, 모모가 투지를 불태운다. 고생한 두 포켓몬에게 주먹밥을 나눠주며 능란의 시선이 잠시 부서진 돌조각을 응시했다.
박사님도 여로 씨의 인터뷰 봤지? 서두를 뗐다. 여로 씨는 왜 이날 이때까지도, 자신의 뜻을 이어줄 사람을 찾지 못한 걸까. 누굴 탓하려는 건 아니지만 아쉬운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별 수 없었다. 하지만 정녕 중요한 건 적합한 후계자가 아닐 것이다. 여로 씨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바위와 꽃을 놓고 보자면 아무래도 바위에 비해 꽃은 너무 빨리 저물잖아. 그러면 꽃은 가변可變이요 바위는 불변不變인 걸까 생각하기도 했는데 서유 씨가 그러더라구. ‘돌도 바람에 깎이고 변한다.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그러게 말이야. 인간의 시점에선 한없이 영원 같은 것도 지구의 관점에서는 순간순간 변화하고 있을지도 몰라. 세상에 정말 영원한 건 없는 거야.”
그러니까 영원을 동경하고 바라고, 나는 영원한 건 별로라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영원이 꼭 나쁜 것만도 아니야. 이 만파식적이, 도화무늬 기와집의 능가가 영원할 수 있다면 그건 또 좋을 것 같거든. 그 안의 사람들은 끊임없이 바뀌고 그들의 정신도 바뀌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이 도화무늬를 기억해준다면 말이야. 읊조리며 개구지게 웃고 만다.
“좋은 것, 나쁜 것. 올바른 것, 그릇된 것…… 수많은 돌조각 안에서 원하는 것을 골라내는 눈을 키우듯, 중요한 건 ‘판별’인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
그리고 판별해내기 위해선 이몸의 실력이 더 강해져야겠지. 그만한 눈을, 스스로 얻어내야만 하니까.
“박사님, 내내 책상업무만 한 건 아니지? 몸이 굳은 건 아닌지 확인시켜주는 게 어때?”
대련해달라는 말을 잘도 둘러 말하며 능란은 천천히, 2회전을 위해 코트로 향했다.
박사님과 동네주민으로서의 내적친밀감이 있어요.
'포켓몬스터 : 피치럼블' 카테고리의 다른 글
049) 11.20. 편가르기 (0) | 2023.12.27 |
---|---|
048) 11.18. 경험經驗 (0) | 2023.12.27 |
046) 11.13. 옛이야기 (0) | 2023.12.27 |
045) 11.11. 락 그 두 번째 樂 二 (0) | 2023.12.27 |
044) 11.10. 락樂 : 아토체육관 도전 (0) | 2023.12.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