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켓몬스터 : 피치럼블

050) 11.22. 삼고초려三顧草廬

천가유 2023. 12. 27. 21:30

ㅡ짐리더즈 어셈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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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길 하랑마을에서 다님길로 가기 위한 먼 여정을 앞두고 능란과 아이는 공중날기 택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지금은 추위 대비로 꽁꽁 싸매고 있지만 다님길은 여기만큼 춥진 않겠지. 망토는 가는 길에 벗을까? 짐을 넣을 가방도 챙기고……. 준비할 게 많았다.

보 군의 입안은 왜 어써러셔 문 같은 게 아닌 걸까.”

어써러셔 문……? 흐흐단 한 곳만~연결할 수 있다면…♪ 저는 그곳으로 갈 텐데…….”

아니아니, 꽃다운 스무살에 저승길은 사양이라는 거야.”

그나저나 아이 군은 용케도 그 차림으로 계속 지내는구만. 단벌 신사라는 녀석? 잠시 꼬마유령이라든지, 아토시티에 나타난 도깨비도 구경하긴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이벤트성 환복, 옷을 안 갈아입는 건 좋다고 해도 춥지는 않은지 걱정이었다. 가뜩이나 몸도 차가운데 말이다. 다님길에 가거든 배배의 털옷을 하나 더 만들어달라고 할머니에게 부탁해볼까, 그나저나 가족을 보게 된다면 이 일에 대해서 말해야 하나 복잡한 머리를 안은 채 아이와 함께 능란은 늘봄마을로 향했다.

점점 추워지는 날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무예가들의 열기로 뜨거운 마을이었다, 늘봄은. 아침도 낮도 밤도 대나무 연무장의 기합소리가 줄어들 줄 몰랐다. 분위기만으로 질린 듯 흥미를 잃고 시들어가는 아이를 옆구리에 낀 채 능란은 아이 군은 고스트 타입이라 격투에는 타격도 안 받잖아.” 그런 소리나 떠들었다.

그렇게 늘봄체육관에 도착하자마자 제일 먼저 겪은 것은 바로,

뭐냐. 이미 배지를 딴 사람은 재출입 할 수 없다.”

문전박대란 것이었다.

이럴 줄 알고사실 몰랐다하랑마을의 명물 풋콩과자를 사왔다. 온천마을의 기념품은 종류가 아주 많아 그중에서도 진달래가 좋아할 만한 것을 심혈을 기울여 고른 참이다. 그렇게 선물을 내밀며 다시 고개를 숙이자,

짐리더에게 금품 및 현물 등의 뇌물수수는 금지다.”

다시 한번 까였다.

수상하고 불신감 어린 시선으로 응시해오는 옆자리의 꼬마유령을 애써 외면하며 능란은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고개를 숙여 만남을 청해야 했다.

진달래와 늘봄체육관에 새로운 상처를 얻은 것은 말할 것도 없는 이야기다.

──그래서? 갑자기 찾아와서 배틀도 대련도 시합도 아니고 이야기가 하고 싶다고?”

이야, 달래 씨 얼굴 한 번 보기 힘드네. 이럴 줄 알았으면 서유 씨가 하던 것처럼 차라리 결투장을 보낼 걸 그랬나.”

뭣하면 지금 이 자리에서 줘도 된다.”

아니, 철회하겠습니다. 죄송함다.”

그래서~? 진달래의 눈썹이 한 번 더 꿈틀거린다. 서론은 되었으니 바로 본론으로 들어오라는 성급한 기질이 엿보였다. 그래도 차는 내어주었기에체육관의 문하생이일단 찻잔부터 손에 든 능란은 잠시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꺼내야 하나 고민했다.

이윽고 여자는 천천히, 제가 잘 하는 특유의 허풍과 과장이 섞인 이야기꾼의 기질을 두고 다만 진정성만을 담아 믿기 어려운 이야기를 꺼냈다.

──우선 먼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내 말이 어떻게 들리든지간에 끝까지 들어달라는 부탁이야. 수리 박사님의 얼굴을 봐서라도, 아니면 만파식적을 걸어서라도. 그만큼 허황된 이야기나 싸구려 가십지의 음모론 같을 수 있지만 그런 거짓말로 진달래 씨의 시간을 뺏을 생각이 없어.

어디서부터 이야기해야 할까. 우선은 사건의 시작이다. 우리 화랑지방이 얼터코팅을 알아낸 뒤로 덕분에 배틀이 얼마나 더 즐거워졌는지는 짐리더인 당신 앞에서 꺼낼 것도 없는 이야기지. 그런데 만약, 이 얼터스톤에 단순히 포켓몬의 타입을 덧씌워주는 것 이상의 힘이 있다면…… 달래 씨는 어떨 것 같아? 그보다 더 강하고 비현실적인 신비로운 힘이 깃들어 있다면.

수리 박사님과 우리는 캠프 사람들이 얼터스톤을 쓸 수 있도록 돌을 찾으러 가는 과정에서 그 힘을 목도하였어. 몸에 박힌 심지처럼 생긴 얼터스톤을 통해 포켓몬이 통상 이상의 거대한 몸집을 갖게 되거나 특훈도 하지 않고 대단한 힘을 냈지. 하지만 동시에 괴로워 보였어. 주어진 힘을 통제할 수 없어서 날뛰고 울부짖었지.

달래 씨가 이 힘을 어떻게 판단할진 모르겠어. 그야 힘 자체에 옳고 그름을 가를 수는 없지만, 이것을 우리가 사용해도 되는 것인지 말이지.

능란 개인의 견해를 따지자면 별로 반기고 싶지 않은 힘이었으나, 끊임없는 자기계발을 통해 스스로의 한계를 경신해가는 진달래에게는 흥미로운 힘일지도 몰랐다. 기실, 말처럼 힘 자체에 죄가 있단 생각도 하지 않았다. 때문에 능란은 말을 골랐다.

차분히 상대의 기색을 살피며 말을 이어 나간다.

위험한 힘이라고 판단하던 중에 우리는 여러 번 작위적인상황을 목격했어. 정크 트레이너들이 일부러 포켓몬의 몸에 심지를 박아넣고 그 양상을 관찰하던 거야. 제일 최악이었던 건…… 그렇게 해서 심지가 박혀 에너지를 소모하던 녀석들이 반대로 심지를 제거하자 퇴화해버린 일이었지. 그런데 말이야, 포켓몬에게 심지를 박아넣고 실험하던 사람들이 만약, 리그의 관계자 산사와 산수라면 어때?

그들이 챔피언 여로를 위해 이 모든 일을 계획하고 있었더라면.

──차가 금세 바닥을 보였다. 주전자를 들어 다시 따뜻한 차를 채워 넣는 동안 능란의 부탁을 기억해주듯 진달래는 숨소리조차 억누른 채 이야기를 들어주고 있었다. 그래서 능란 또한 조급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며 말을 계속했다.

지난번 챔피언 여로의 인터뷰를 진달래 씨도 봤으리라 생각해. 그 사람은 말했지.

그렇기에 저는 반드시 병을 딛고 돌아갈 겁니다.

우리는 골갱이 산의 진동이 있었을 때, 그 안에서 여로 씨를 만났어. 자신의 몸에 얼터스톤을 박아넣고 병과 노화를 막아내려고 하던 여로 씨를 말이야. 그 사람, 마치 다른 사람으로 변한 것만 같았어. 겉모습도, 눈빛도, 가진 욕망마저도. 얼터코팅이 주는 힘 때문에 괴로워 보이기도 했고 그 알 수 없는 힘이 주는 희열에 찬 것도 같았어. 어느 쪽이든 정상은 아닌 것 같았지.

저는 이 힘을 이용해 영원히 챔피언의 자리에 남아 있을 겁니다.모두가 동경하여 강함을 추구하게 만드는, 완전무결. 무소불위의 존재. 저의 존재는 화랑지방의 모든 트레이너에게 목표가 되겠죠.

진달래 씨는 믿겨져? 그 사람이 이런 말을 했다는 게. 당신은…… 이런 걸 바라? 무소불위의 존재가 되어 화랑지방에 영원히 군림하는 유일한 챔피언이라는 걸 말이야.

나는 도저히 이게 여로 씨의 본심이라고 생각되지 않아. 그래서, 그 자리에서 사라져버린 여로 씨와 두 비서를 쫓기 위해 짐리더들을 찾아가 도와달라는 말을 하고 있었어.

부디 도와줘. 다시 한번 여로 씨를 만날 수 있도록, 만나서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당신의 힘이 필요해.”

김 서린 찻잔 안으로 물방울이 또르르 굴러 떨어진다. 식어버린 찻잔을 놓고 능란은 언젠가처럼 진달래에게 머리를 깊이 숙였다.


여러모로 진달래와 인연이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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