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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y you’ll share with me one love.
커피 괜찮아요? 질문을 건넸더니 내일 괜찮아요? 질문이 돌아왔다. 질문을 질문으로 돌려주는 게 어딨어요. 볼멘소리를 냈더니 질문을 아예 무시하던 사람도 있었는데요. 한 마디도 지지 않고 받아쳐 결국 대답이 궁색해진 건 처음에 입을 연 쪽이었다.
막 사귀기 시작했을 땐 과거 이야기는 서로 불문율에 부치기로 암묵적인 합의를 본 것처럼 뻥끗도 안 하더니 요새는 좀 편해졌다는 걸까. 종종 저렇게 과거의 꼬투리를 잡곤 하는 것이다. 긍정적인 변화인지 아닌지는 모르겠다. 남자에 한해서 신디는 자신의 판단을 그다지 신뢰하지 않았다.
대신에 자기가 먼저 굽히고 들어가겠다는 양─상대는 뭐라고 받아들일지 모르겠으나─대답했다.
“내일 오프잖아요.”
당신도, 나도. 모처럼 쉬는 날을 맞췄으니까. 좀 늦게 자면 어때. 그제야 남자도 빙그레 웃었다. 그럼 저도 좋아요!
20살엔 핸드드립이니 커피머신이니, 원두는 이게 좋고 어느 가게가 잘 볶아주고 따져가며 이것저것 커피와 관련된 것들을 사 모았는데 결국엔 한 번도 쓰지 않고 캐롯마켓에 내놓았다. 그땐 그저 주체하지 못할 돈을 펑펑 쓰고 싶었던 게 아닐까. 카페에서 사 마시는 게 수지에 맞는단 걸 알고부터는 텀블러나 모았다. 그리고 커피 맛이 괜찮다는 카페를 돌아다니며 멋대로 별점을 매겼다.
그러다가 언제부턴가 다시 소소하게 커피 머신을 들여놓았는데 머무는 집에 애착이 생기고부터다. 그러니까, 지금처럼 그와 집에서 보내는 시간에 애착이 생기고부터.
“아, 이거 좋다. 좋아하는 맛이에요.”
“그거 좋아하는 것 같아서…….”
“고마워요.”
별 것 아닌 칭찬에 몸이 꼬이다니 어울리지 않아, 신디아 캐럴. 스스로에게 찬물을 끼얹으며 그건 뭐예요? 그의 옆자리로 갔다. 테이블 위로 서류와 팜플렛 등이 잡다하게 꺼내져 있었다. 일 관련인 거야 알았지만…, 둘이 있을 때 굳이 일거리를 꺼내 놓지 않는 그다. 그런데도 꺼내두었단 건 그만큼 급하거나, 할 얘기가 있거나.
“이번에 좋은 제안이 들어왔거든요. 새로운 작품을 발굴한다는 목적으로, 신인 감독 청년 지원 공모전이요.”
이번엔 후자인 모양이다. 신인, 감독, 청년, 지원. 뭣 하나 여자가 아는 그와는 참 어울리지 않는 단어의 연속이었다.
“떠오르는 신예 스타부터 시작해서 천의 얼굴을 가진 연기자, 무대 위의 감초, 다재다능한 익살꾼, 별별 수식어가 다 붙던 당신도 감독으로는 아직 신인이군요. 맙소사.”
무대 위에서 다양한 삶을 연기하던 그가 다음으로 스스로에게 준 배역이다. 팬들이 서운하겠어요. 팬을 핑계로 자신의 아쉬움도 살짝 섞었다. 몇 안 되는 취미를 뺏기게 생긴 것이다. 무대 위의 그를 눈으로 좇는 즐거움 말이다. 그저 기분에 불과하겠지만 그가 등을 보이는 것 같았다. 관객인 채로는 닿을 수 없는 「관계자 외 출입금지」의 벽이다.
“그럼요. 아직 청년이고, 신인이죠.”
싱그러운 젊음을 자랑하는 감독 유망주 올리버 워렌(34). 자체 자막을 걸어주며 말판 위를 앞지르는 그의 말을 머릿속에 그렸다. 상념은 이쯤에서 끊는 게 좋다. 신디는 다시 머그컵을 들었다.
“그래서 청년이자 신인인 우리 감독님께서는 어떤 작품을 해보시려고요. 음, ‘오페라의 유령’?”
“이번 공모전 테마가 [고전의 재탄생]이거든요.”
거기서부터 남자의 설명이 시작되었다. 이미 유명한 고전을 재해석해보라는 제안은 신인들에게 어느 정도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줌과 동시에 기존의 틀에서 벗어난 신선한 시도를 볼 수 있기에 유구하게 내걸리는 것이었다.
그중에서 올리버가 잡은 작품이 바로 ‘오페라의 유령’이다.
“브로드웨이의 간판극이죠. 기네스북에 가장 오래 상영된 뮤지컬로 등재된 35주년의 스테디셀러 작품. 영화로도 만들어지고, 여전히 각종 매체에서 가면을 쓴 남자라든지 미궁 속의 오페라하우스, ‘노래해, 크리스틴!’ 그 한 마디, 상징성이 넘쳐나는 작품이에요. 그래서 오히려…, 도전해보고 싶었어요.”
“누구나 아는 작품에 당신만의 색을 입혀보고 싶어서요?”
대답 대신 씩 웃은 남자는 상당한 두께의 소설책을 들어 올렸다. “하나는 프랑스어로 된 원서고요, 하나는 영문판이에요. 뮤지컬 버전의 각본도 가져왔죠.”, “그 세 개가 무엇이 다른데요?” 묻는다면 이제 그의 입에 걸린 시동을 막을 수 없게 된다.
그래도 좋았다. 그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 떠드는 모습이. 신이 나서 눈을 반짝이는 얼굴이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다를 게 없어서, 문득문득……
“신디는 읽어 봤어요?”
“음. 어땠을 것 같아요?”
신나서 떠들 줄 알았던 남자는 의외로 차분하게 질문을 되돌려주었다. 이유를 생각하면서 아까의 복수를 하듯 반문하자 무언가를 가늠하듯 그의 시선이 가늘어졌다. 당신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읽어낼 수 없어서 대신에 먼저 답했다. 어깨까지 오는 금발을 손끝을 찰랑여 넘기며 콧대를 세우는 언제나의 ‘슈퍼스타 신디’다.
“나 이미 해봤잖아요, 오페라의 유령.”
“30주년 기념 테마 향수 모델?”
그게 벌써 몇 년 전 일인데, 즉답이 나올 줄 몰랐다. 놀라는 여자를 앞에 두고 남자는 자랑스러운 기색도 없이 빙그레 웃었다. “그야 신디의 팬이니까.” [이 명제는 참이다.] 도장이라도 찍히듯 망설임 없는 답이었다.
“우리 헤어진 뒤에도… 계속 내 팬이었어요?”
그 순간 짧은 정적이 스쳤다. 청산유수처럼 말과 말을 잇는 데 망설임이 없는 남자가 보이는 0.5초의 간극이란 그의 가장 진실된 대답이었다. 10년 전부터 변함없이.
간극의 의미는 긍정도 부정도 아니다. ‘말하고 싶지 않아요.’ 그 뜻을 이제 여자는 안다. 홀로 앞서가던 그의 말이 잠깐 정지한다. 따라갈 수 있을까. 그새 웃는 얼굴을 회복한 그가 질문을 튼다.
“신디는 헤어진 뒤의 이야기가 많이 궁금한가 봐요.”
-반대로 당신은 별로 궁금하지 않고요.
“한 번 팬은 영원한 팬이에요. 신디도 제 팬이 되면 그 기분을 알아줄 텐데!”
-왜 이미 당신 팬일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아요?
다시금 간극이 벌어진다. 이럴 때 따라가야 하는데 여자는 여전히 느렸다. 0.5초만에 틈을 메우던 그의 요령을 반도 따라하지 못하고 대답이 나오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간극의 의미는 이번에도 긍정도 부정도 아니다.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이제 남자도 안다.
또 실망시킬까봐 긴장해 눈동자를 굴리던 여자는 온화하게 기다려주는 시선과 맞닥뜨리고 낯을 붉혔다. 카메라 앞의 포커페이스는 이 순간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커피잔이라는 좋은 소품이 있어 다행이지. 한 모금 시간을 번 뒤에야 겨우 할 말을 찾았다.
“그럼 나도 10년쯤 당신 팬이었는데, 안다고 해도 돼요?”
“정말요? 신디가 제 팬이라고요? 그럼 당신이 크리스틴 다에의 향수 모델을 할 때 저는 뭐 하고 있었게요.”
“악, 그런 질문 반칙이에요!”
“아하하.”
향수 모델을 한 게 몇 년 전인지도 기억이 안 나는데 그런 걸 답할 수 있겠냐고요. 투덜대는 여자에게로 손이 뻗어졌다. 커피잔의 온기가 고스란히 남은 따뜻한 손바닥이 그녀를 감쌌다. 여기서 잠시 카메라 off.
───아니. 돌아가는 카메라 같은 건 없다. 꺼질 건 더더욱 없었다. 커피향 묻어나는 입술이 부드럽게 겹치고 뺨을 어루만지는 손의 네 번째 위치에는 심플한 금색 링이 보였다. 그것을 어쩌면 자랑스럽게, 혹은 사랑스럽게 어루만지며 여자가 고개를 비틀었다. 오페라하우스 지하보다 훨씬 아늑하고 향기로운 이곳은 어떤 숨겨진 무대장치도, 조명도 존재하지 않는 둘만의 공간이다.
“그래서 어땠어요? 작품의 감상은.”
“내가 읽어봤을 거라 이미 단정 짓네요.”
“말했잖아요. 모르는 게 없는 신디의 팬이라니까요.”
크리스틴 다에 역을 맡고 인물 연구를 하지 않았을 리가요. 잘 아는 듯한 대답에 여자는 다시 10년 전의 기억을 떠올렸다. 당신이 나에 대해 뭘 아느냐 짜증도 내고 그렇게 추켜세울 만큼 대단한 게 아니라고 부정도 했었다. 그럴 때마다 저를 우상처럼 쳐다보며 대단한 거라니까요! 호들갑을 떨던 남자는 과거에 남겨지고 지금의 그는 작게 웃을 뿐이다.
“보긴 다 봤죠. 뮤지컬이든 영화든 소설이든. 소설이 주는 느낌은 꽤 달랐어요. 뮤지컬에선 좀 더 신비롭고 또 위대하고… 황홀한 느낌이잖아요. 그런데 소설에선, 이게 웬 하남자예요!”
“오, 신디….”
연인의 감상을 방해하지 않으려 했지만 저렴한 표현에 탄식을 참지 못했다. 아니, 웃음을 참지 못한 걸까.
“겨우 스무 살이나 됐을까 한 순진하고 마음씨 착한 여자애를 구워삶는 나잇값도 못하는 변태, 범죄자, 도착증, 완전 별로라니까요.”
“아아… 네에… 흐.”
“크리스틴을 탓할 생각은 없어요. 그 애는 어렸고, 또 간절했을 뿐이잖아요. 그런데 눈앞에 아버지가 보내준 것 같은 천사가, 대단한 음악 선생님이 내려오면 어떻게 홀리지 않겠어요. 하지만 그 남자는 너무, 너무 멋없어요. 최악이에요. 무릎 꿇고 울며 빈다고 다가 아니라고요. 나라면 걷어차주었을 텐데.”
“과연, 그런 감상이군요.”
“…….”
“응? 왜요?”
신디가 마음대로 떠드는 동안 그는 의견을 아꼈다. “아니,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한마디쯤 할 법도 했는데. 자칭 ‘신인 청년 감독’ 앞에서 이런 감상을 떠드는 것도 우스웠다. 그다지 전문성이라곤 느껴지지 않는 감상 아니던가. 그러나 남자는 오히려 흥미롭단 표정이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낸 거네요. 잘 어울렸어요. 당신만의 ‘크리스틴 다에’.”
“그야 뭐, 소설에서 묘사하는 그녀의 이미지와 생긴 것만큼은 딱 들어맞잖아요. 금발, 파란 눈, 오페라하우스의 프리마돈나. 아, 프랑스에선 마르가리타라고 하던가요. 진짜로 그녀처럼 노래나 연기를 잘하진 못하지만 한 컷의 순간으로 남는다면 누구보다 잘 할 자신이 있었어요.”
처음 오퍼가 들어왔을 때부터 고민하지 않고 받아들였다. 하이틴 스타 신데렐라의 이미지에서 벗어나고자 고민이 깊던 시기였다. 한층 성숙한 이미지로 변신할 수 있다면, 하물며 수수께끼의 유령에게 사랑받는 가녀린 히로인이라니 좋은 기회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올리버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그게 아니었다.
“생김새만 갖고 한 말이 아니에요.”
“그럼요?”
질문에 답하는 대신 올리버는 내내 안고 있던 발상을 꺼냈다.
“크리스틴이 만약 신디 같은 성격이었다면 어땠을까요.”
“나 같은 성격이 뭔데요?”
“일단 거만하고?”
“하?”
“제멋대로면서.”
“저기요.”
“어리광쟁이에 겉보기보다 여리지만, 정에 휘둘리는 법이 없죠.”
“오, 맙소사.”
당신 나를 뭘로 보는 거예요? 난데없이 비난받은 여자가 분통을 터트린다. 크리스틴이랑 정 반대죠. 덧붙인 남자의 말에 나도 알아요. 대답은 즉시 나오면서 말이다.
(이래 봬도 연인의) 비방에는 순순히 동의할 수 없었지만, 저와는 다른 사람이라고 신디도 생각하는 바다. 작품 속의 마르가리타는 자신에게 사랑이나 결혼을 강요하는 유령을 연민할 정도로 마음이 강했고 또 다정했다. 외면만큼이나 내면이 아름다운 사람이었으니 같을 수가 없었다.
곱씹어 보니 30주년 포스터 촬영이 부족했던 것만 같아 불만스러워진다. 지금이라면 더 잘할 수 있을까. 오, 아니지 신디. 그건 새로운 마르가리타의 역할이야. 그런데 올리버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아직도 본론이 아니었다.
지금이 바로 그 본론이다.
“그러니까 제 크리스틴이 되어줄래요, 신디?”
“무슨 뜻이에요?”
“[크리스틴]이란 제목으로 작품을 만들어보려고 해요. 당신이 말한 것처럼 누구나 아는 오페라의 유령에 저만의 색을 입혀보려고요.”
남자의 목소리가 유창하게 울렸다. 이미 몇 번이나 생각하고 고민한 것처럼 한 마디, 한 마디가 매끄럽기만 했다.
“소설은 라울의 시점에서 진행되고, 뮤지컬은 크리스틴이 중심인 것 같지만 사실은 아름다운 크리스틴의 노랫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도 모두의 눈은 그 뒤에 선 유령에게 가 있죠. 라울과 에릭, 사랑과 연민, 꿈과 영광…… 그 사이에서 선택도 결정도 크리스틴의 몫인데 정작 우리는 두 남자의 눈을 통해 그녀를 보고 있던 거예요.”
노래하고 싶었던 소녀는 유령을 피해 연인의 손을 잡고 도망쳤다. 꿈을 포기하고 공포로부터 도망친 그녀는 행복해졌을까? 만일 크리스틴의 성격이 달랐더라면, 이를테면 눈앞의 여자라면 어떻게 행동했을까.
작품을 고르려던 순간 불현듯 떠오른 생각이었다. 남자가 만들고 싶은 극은 바로 그 발상에서부터 뻗어간다.
“솔직한 이야기를 하자면, 소극장 규모의 창작극에서 ‘오페라의 유령’ 하면 떠오르는 수많은 무대장치나 화려한 효과를 넣을 수 없기도 하고요.”
“아하하…, 그건 너무 솔직한 이야기예요.”
본론에 들어가면서부터 어쩐지 긴장해 있던 신디가 겨우 바람 빠지듯 웃었다. 모델로서 일을 수락할 때는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뭘 이렇게 긴장해 있던 걸까. 그의 기대에 미치지 못할 것 같아서? 그가 바라는 이상의 이미지를 구현하지 못할까 봐? 그래서 그가 실망하기라도 할까 봐.
“내가… 당신에게 도움이 될 수 있어요?”
“물론이죠. 당신의 도움이 필요해요.”
어느새 그의 손이 허리를 감싸고 있었다. 부드럽게 끌어당겨 하강 곡선을 그리는 눈썹 위로, 이어서 눈꼬리 끝으로 뺨으로 쵹, 또 쵹, 쵹. 여기저기 입술이 따라붙었다. 앓는 소리를 내며 얼굴을 밀어내자 싫어요? 안 돼요? 밀려나며 남자가 물었다. 그게 아니라… 자신 없는 목소리가 입안을 맴돌았다. 그녀의 기색을 읽어낸 눈매가 새초롬한 곡선을 그렸다. 종종 생각하는 거지만 여자는 이 시선에 약했다, 틀림없이.
“해주세요, 제 크리스틴.”
결국 여자가 두 손을 들었다. 항복을 항복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게 남자의 특징이기도 했다. 와, 저 지금 신디와 계약을 따낸 거예요. 능청을 떨어오니 혀를 내두르고 만다.
커피잔이 빌 즈음엔 졸리지는 않지만 자리를 옮겼다. 오렌지색의 스탠드 조명이 은은하게 켜진 침대 위에 그의 무릎을 베고 누운 채 시선만을 매끈한 턱 끝에 두었다. 펜 자국 남은 손가락이 아무렇게나 흩어진 짧은 머리칼을 빗어 내리다 빙글빙글 감는다. 남자는 자신이 생각하는 연출 방향을 설명하기 바빴다.
“무대장치 대신 조명과 복장에 신경을 쓸 건데요. 특히 크리스틴의 의상은 최소 5벌은 준비해야 해요. 코러스를 넣을 시절의 수수한 복장, 유령과 노래 연습을 할 때는 아직 피지 못한 꽃봉오리 같은 복장, 주연으로 무대에 섰을 때는 우리가 아는 대중적인 마르가리타의 화려한 복장, 그러다 유령의 지하세계에 납치되었을 때는 지하세계의 여왕 같은 복장을 짜서 지상의 별일 때와 대조되면 좋겠고요. 마지막에는 온전한 ‘크리스틴 다에’를 나타내고 싶어요.”
속사포처럼 터지기 시작한 말이 이제야 신디가 아는 그 같았다. 그래도 너무 신이 난 것 같은데. 그는 배우로서의 자신과 연출자로서의 자신 중 고르라고 하면 누굴 고를까. 선택할 수 없는 문제라고 할까. 사랑과 삶 사이에서 답했던 것처럼.
“같이 대사를 맞춰주세요!”
“대본도 없이요?”
내가 당신도 아니고 즉석극 같은 걸 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요. 불만 어린 눈빛에 바로 그거예요. 남자가 웃음을 터트렸다.
“신디가 느끼는 그 자체가 바로 대본이에요.”
“말이나 못하면……”
종이가 팔락팔락 넘어가다가 한 지점에서 멈췄다. 소설의 절정이다. 몸을 일으킨 여자가 줄거리를 주의 깊게 읽는 동안 어디선가 가면이 나타났다. 그렇게까지 하는 거예요? 질린 목소리에 몰입은 중요하니까요. 남자의 답이 태연하기만 했다. 가면이 얼굴을 가리자 오페라의 유령이 그 자리에 섰다.
■제 25장 : 전갈이냐 메뚜기냐 ~ 제 26장 : 최후의 입맞춤
에릭은 오페라 하우스를 폐허로 만들고 자신도 그 속에 묻히려 하고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많은 보석들과 눈부시게 빛나는 하얀 어깨들을 함께 거느리고 무덤 속으로 들어가고 싶었던 것이다.
내일 밤 열한 시!
공연 도중, 모두 함께 공중으로 날아가버릴지도 모른다. 크리스틴 다에가 “싫어요.”라고 대답하는 바로 그 순간에!
내일 밤 열한 시……
순진한 크리스틴은 싫다는 대답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살아 있는 송장과 결혼하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하지 않겠는가? 크리스틴은 자신의 거절과 승낙 여부에 수천 명의 목숨이 달려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이제 오늘 밤 열한 시! 앞으로 오 분 뒤……
사내가 미친 사람처럼 웃으며 말했다.
“그대에게 오 분의 여유를 주리다! 여기 작은 열쇠가 있소. 이 열쇠로는 방에 있는 두 개의 검은 상자를 열 수 있소. 한 상자에는 전갈이 들어 있고 다른 상자에는 메뚜기가 들어 있소. 만약 그대가 전갈을 선택한다면 승낙의 표시로 알겠소. 메뚜기는 거절의 뜻이오.”
목소리마다 그의 감정이 요동쳤다. 하지만 스스로 가면을 찢어버릴 듯 구겨트리면서도 치우지 않았다. 중요한 선택을 앞두고 송장같이 추한 몰골이 그녀의 선택을 저해할까 두려웠던 것이다. 가면 같은 게 있든 없든 그녀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을 걸 알면서도.
“메뚜기! 메뚜기를 조심하시오! 메뚜기를 돌린다면 그것은 펄쩍 뛰어오를 거요! 아주 높이, 높이 뛰어오를 거요!”
어쩌면 그가 기대한 것은 크리스틴의 동정이었다. 나를 사랑하지 않아도 당신은 선량하고 착한 사람이니까, 당신의 선택에 오페라하우스가 수많은 사람들의 무덤으로 변해버릴 수도 있다는 걸 안다면 날 선택할 것이라는 비열한 기대였다.
그녀의 연인 샤니 자작은 크리스틴에게 전갈을 선택하라고 말했다. 전갈이 곧 크리스틴과 에릭의 결혼을 가리키는 것을 알면서도. 사람들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거짓 맹세라도 해야 한다는 것일까? 아니면 유령의 신묘한 정신적 고문에 지쳐 굴복해버리고 만 것일까.
진실이 무엇이든지간에 이 자리에 선 비겁한 남자들은 우리의 마르가리타에게 모든 선택과 결정을 의탁하고 있었다. 선량한 여인을 궁지로 몰아 올바른 선택을 강요했다.
“앞으로 이 분 안에 전갈을 돌리지 않는다면, 내가 메뚜기 조각을 돌려버리겠소. 그러면 메뚜기는 높이 튀어오르겠지!”
유령의 목소리는 지하세계를 울리듯 낮고 불길했다. 동시에 깨끗하고 아름답기도 했다. 저승으로 사람을 꾀어내는 악마와 같았고 지옥불을 삼키는 괴물 같았다.
“전갈을 택해요……. 그렇다면 우린 함께 천국에 갈 수 있을 것이오. 아니, 아직까지 망설일 바에야 내가 메뚜기 조각을 돌리는 수밖에!”
그는 전갈을 택하라고 애원하다가도 메뚜기를 돌리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크리스틴과 함께 살고 싶은 걸까, 아니면 차라리 함께 죽고 싶은 걸까. 그의 손이 청동으로 정교하게 만들어진 조각품을 덮기 위해 뻗어졌다.
“그만!”
그 순간 크리스틴의 목소리가 히스테릭하게 울려 퍼졌다. 유령이 동작을 멈추자 무엇이든 잡히는 대로 물건을 집어 던졌다. 열쇠더미든 제 손목을 옥좼던 밧줄이든 의자든 축음기든 무엇이라도 좋았다. 하지만 그런 것으로는 유령을 막을 수 없었다. 그는 여인이 던지는 것들을 어떤 것은 피하고 어떤 것은 도로 잡으며 여유를 부렸다.
하지만 크리스틴은 그를 맞히는 게 목적이 아니었다. 그녀의 손에 마침내 에릭이 종종 들고 다니던 길게 뻗은 지팡이가 잡혔다. 중후한 마호가니 지팡이를 들어 올린 크리스틴은 그대로 전갈과 메뚜기 손잡이에 힘껏 휘둘렀다. 멋진 스윙폼이었다. 야구였다면 틀림없이 홈런이었고 골프였다면 최장거리 슛을 쏘았으리라.
두 개의 손잡이가 지팡이와 함께 날아갔다. 나뭇조각의 파편이 그녀의 뺨을 할퀴고 지나갔다. 그 자리에는 이제 전갈도 메뚜기도 아닌 구분할 수 없는 손잡이들만이 남아있었다. 그녀는 뾰족한 조각에 손바닥이 찔리는 것을 아랑곳 않고 전갈─이었던─손잡이를 돌렸다.
이것으로 폭탄을 막은 걸까? 크리스틴은 자신의 선택을 아직 확신할 수 없었다. 시간을 벌어야 했다.
“난 당신과 결혼할 수 없어요, 에릭. 당신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에요.”
“그대의 선택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죽게 된다 해도?”
“내 선택이 아니라 당신의 선택이죠.”
“아니! 그대가 날 선택해주기만 한다면 아무도 죽지 않을 수 있었소. 그대가 나를 살리고 저 페르시아인과 샤니 자작을 살리고 지상에 있는 오페라하우스의 관객들을 살릴 수 있었어! 그런데 선택하지 않은 거야. 오직 내가 괴물 같아서. 내가 추악하고 끔찍해서, 날 혐오해서!”
어디선가 둑이 터지듯 물이 차오르는 소리가 들려 왔다. 그건 옆방에서, 옆방의 지하에서, 지금 이 지하세계보다 더 아래 있는 고문실에서 들려오는 소리였다. 지하수로가 개방되고 파리 한복판에서 터질 뻔한 화약들이 모두 물에 잠겼다. 그 안에 갇혀 있던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저들을 살려주세요!”
“다 죽어버렸으면 좋겠소. 그대의 관심을 받는 저들도, 관심을 받지 못하는 나도. 그대가 밉소. 그대가 미워…….”
유령은 이제 아무래도 좋아졌다. 그제야 유령은 자신의 마음을 깨달았다. 만일 크리스틴이 거짓 맹세를 하고 전갈을 돌린다 하여도 유령은 만족하지 못했을 것이다. 어떻게 해도 그녀는 자신을 좋아해주지 않을 것이고, 그 자신도 이토록 추악한 스스로를 좋아할 수 없었다. 뿌리칠 수 없는 저주였다.
사내가 자기연민에 빠져 있을 때, 크리스틴 다에의 피 묻은 손이 사내의 뺨을 때렸다. 가면 위로 붉은 손자국이 선연히 남았다. 어둠 속에서 화염처럼 불타오르던 흉흉한 눈동자가 일순 흔들렸다. 그런 괴물의 시선을 흐릿함 한 점 없는 푸른 눈동자가 꿰뚫어 보았다.
“그래요. 나는 당신을 선택하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그건 당신의 얼굴이 흉측해서, 생김새가 못나서가 아니에요. 내가 정말 끔찍이 여기는 건 당신의 추악한 내면이에요, 에릭.”
허리를 곧게 편 여인이 유령을 내려다본다. 더는 공포가 그녀를 구속하지 못했다. 누구보다 자유로운 영혼을 갖게 된 크리스틴이 이제껏 억눌렸던 목소리를 뱉었다.
“당신은 나를 공포로 장악해 조종하는 괴물이고, 아름다운 노랫소리로 꾀어내는 악마예요. 여기서 저들을 구해주지 않는다면 살인자가 될 것이고 이미 이 오페라하우스를 자기 멋대로 움직이는 폭군이죠. 그리고 그 모든 게 내 탓이라고, 혹은 나를 위해서라고 말해요. 하지만… 내게 저지른 그 모든 행동은 하나도 날 사랑해서 한 게 아니에요.”
“내 사랑을 부정하는 것이오?”
크리스틴이 먼저 괴물에게 다가갔다. 이제껏 누구도 한 적 없던 행동이다. 그녀의 걸음에는 두려움이 없었다. 그러자 뒷걸음질 치는 건 괴물 쪽이었다. 이제껏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는데…. 피 묻은 가면을 벗겼다. 타인의 피를 뒤집어쓴 너머에는 살이 흉하게 문드러져 흘러내리는 송장이 있었다. 그럼에도 크리스틴은 표정 한 번 찌푸리지 않았다.
그녀의 손이 다정하게 남자의 이마를 매만졌다. 그 위로 따뜻한 입술이 내려앉았다. 남자의 몸이 벼락을 맞은 것처럼 뻣뻣해졌다. 난생처음이었다. 어머니에게조차 외면받은 삶, 아무에게도 키스 받아본 적 없던 인생에 처음으로 타인의 정이 닿았다.
여인의 목소리가 입맞춤만큼이나 달게, 자애롭게 떨어졌다.
“나는 사랑이 무엇인지 알아요. 내 아버지가, 내 이웃이, 내 연인이 내게 알려주었고 또 나 역시 그들에게 돌려주었어요. 에릭, 이런 건 사랑이 아니에요. 이 이상 괴물이 되지 말아요.”
하지만 나는 이미 괴물이지 않소. 읊조리는 남자를 크리스틴이 끌어안았다. 앞으로는 아닐 수도 있죠.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그는 이미 괴물이었고 앞으로도 아닐 수 없었다. 그런데 그녀가 말하는 순간, 어쩌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닐 수만 있다면, 아니고 싶었다.
오랜 세월 누구도 풀지 못했던 유령의 저주가 풀렸다. 괴물이 울었고 유령이 울었다. 남자가 울었다. 태어나면서부터 한 번도 사랑받아보지 못한 아이가 울었다. 그에게 사랑이 무엇인지 알려주기 위해 내려온 천사의 앞에 속죄를 바라고 무릎 꿇고 울었다. 그의 눈물이 멎지 않는 사이 고문실을 채우던 물이 멎었다.
아무도 죽지 않고 끝난 밤이었다.
완전히 망했어요. 신디가 투덜거렸다. 뭐가 망해요? 올리버가 물었다. 내가 생각한 유령은 변태에 범죄자에 최악의 하남자였는데, 당신 때문에 꼭……. 꼭? ……사랑하는 것처럼 연기해버렸잖아요. 정말 이게 도움이 되었어요? 심각한 목소리 사이로 남자가 박장대소를 터트렸다. 그게 사랑하는 연기였단 말이에요? 오, 신디.
“왜요. 불만 있어요?”
“아뇨. 아무 말도 하지 않을게요.”
그럼 신디가 생각하는 [크리스틴]의 결말은 어떻게 될 것 같아요. 유령을 사랑하게 되는 걸로? 여자가 기겁을 하며 고개를 저었다. 그래선 안 되죠. 음, 나는… 크리스틴이 오페라하우스에 남아서 원하는 만큼 노래 부르면 좋겠어요. 라울은 북극에 잘 다녀오고요. 두 사람이 각자의 자리에서 꿈을 이뤄나가다 보면 사랑도, 다시 이룰지 모르죠. 아닐 수도 있고. 남자가 쾌활하게 받았다. 그 결말은 저도 좋네요. 제 취향이에요.
“그럴 것 같았어요.”
“이제 제 취향도 잘 알아요?”
“안지 꽤 되지 않았나.”
제법 우쭐거리는 투였다. 킥킥 웃으며 남자가 부정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유령은 어떻게 될까요. 그는 정말 크리스틴을 인터뷰하는 것 같았다. 여자는 길게 고민하지 않았다. 우리 좋은 친구로 남아요. 어? 잠깐 자기가 차이기라도 한 것 같아 그가 벙찐다. 장난이 먹히자 신디는 만족스럽게 그에게 기울여 누웠다.
“언젠가 그의 손에 반지를 돌려주는 날이 올 때까지 좋은 친구로 남겠죠. 무시무시한 지하세계가 아니라 밝은 지상에서 같이 뱃놀이라도 하면서요. 이제 저주는 풀렸고 그는 더 이상 오페라의 유령이 아니니까.”
“좋아하는 여자와 친구로 남아야 하는 건 꽤 잔인한 일 같은데…….”
“그래서 싫대요?”
“그럴 리가요.”
역시 당신에게 말하길 잘했어요. 당신이 바로 제 크리스틴이에요. 아낌없이 쏟아지는 칭찬과 아낌없이 떨어지는 키스. 그만 좀 달라붙어요. 핀잔을 주면서도 손은 정작 그의 목에 은근히 감긴다. 서로가 눈 감은 일이다.
강요된 선택지에 휘둘리지 않고 21세기의 해석을 덧입힌 무대 [크리스틴]이 좋은 화제를 일으키며 연극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온 것은 조금 뒤의 이야기다.
훌쩍 앞서나가며 새로운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그를 신디는 쓸쓸히 여기지 않았다. 그의 무대에 신디가 있었다.
■ 마치며
“마지막에 왜 키스했어요?”
페이지를 넘기던 손길이 멈추고 여자가 고개를 돌렸다. 따뜻하게 닿아오는 녹색의 시선은 답안지 같은 것은 없노라고, 무엇이든 당신이 말하는 것이 답이라고 다정을 그리고 있었다.
그 눈만을 남기고 하얗고 곧게 뻗은 손이 남자의 얼굴을 가렸다. 조금 전까지 쓰고 있던 가면을 대신해서다. 소설에선 검은 가면을 썼는데 뮤지컬이나 영화에서는 흰 가면을 쓰고 나왔다. 그 또한 그랬지. 그 하얀 가면 위로 붉은 손자국을 남겼더랬다.
검은색은 숨기 좋은 색, 하얀색은 주목시키는 색. 텍스트를 벗어나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은 주인공을 유령으로 바꿔버렸다. 소설과 극이 아주 다른 작품이 되어버린 이유다.
뮤지컬이 유령을 포장하고 유령의 편이 되어도 여자는 크리스틴의 편이었다. 크리스틴의 공포와 혼란을 이해하고 그 착한 마음씨에 감탄했다. 하지만 크리스틴처럼 유령을 연민하지는 않았다. 키스 같은 것도 할 리 없었다. 그랬는데,
[제 크리스틴이 되어줄래요, 신디?]
“신디, 간지러운데요….”
두 손이 위아래로 맞물려 남자의 얼굴을 가린다. 손끝이 그의 뺨이나 눈꼬리나 관자놀이를 스쳤다. 긴장한 듯 곤두선 솜털을 간지럽히며 끔뻑이는 시선을 한참 들여다보다가 눈마저 감춰버렸다. 즉석극을 할 때는 저 다정한 녹색 눈동자가 기괴하게 빛나는 것만 같았는데 가면 하나로 마치 그 너머가 정말 해골밖에 남지 않은 착각이 들었다. 솔직히 오싹했다.
연기력은 정말 사람 과몰입하게 만드는 대장이라니까. 덕분에 신디 역시 이상한 몰입감에 빠져 움직여버렸다. 왜 그런 행동을 한 건지 지금도 모르겠다.
다정함이란 무엇으로부터 비롯되는 걸까.
“연민이 사랑은 아니잖아요. 내 생각에 크리스틴은 에릭을 사랑한 것까진 아니었어요. 그런데……”
“그런데?”
“내가 당신의 크리스틴이라면, 당신은 내 에릭인 걸까 생각해 버리니까 음……,”
이번에도 남자는 끈기 있게 연인의 답을 기다려주었다. 아무리 손가락이 간지러워도, 피부 위가 후끈거려도 꼼짝 않고 가만히 있었다. 그의 눈을 가려버린 채 그녀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당신과 눈이 마주쳤을 때 도저히 객관적인 판단이 서지 않더라고요.”
꾹 누른 손바닥 위로 웃음소리가 터졌다. 하하하, 혹은 흐흐흐, 보드라운 손바닥 위로 실없는 소리가 글자를 이뤘다. 뭐가 그렇게 우스워요. 볼멘소리를 터트리는 연인은 정말 아무것도 몰랐다. 조금 전 자신이 어떤 달콤한 고백을 한 것인지.
“그래서 제 가면을 벗기고 싶어진 거예요?”
“……조금요.”
얼마나 조금? 그렇게 묻듯 손 위로 손을 겹치고 ‘조금’의 틈을 냈다. 다시금 시선이 여자를 엿본다. 눈이 닿자 화들짝 놀라면서도 신디는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대신 호기심 어린 빛으로 그를 관찰했다.
“더 알고 싶고, 알아내서 이해하고 싶고…….”
“신디, 저한테 관심 있어요?”
가볍게 농담을 던졌지만 돌아오는 건 다른 무게의 답이었다.
“그랬나 봐요. 뻔히 남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아서 숨겨버린 것을 무례해도 좋으니 벗겨내 닿고 싶어졌어요. 알아서 어쩌려던 걸까요.”
잠자코 듣던 남자는 가타부타 설명을 붙이는 대신 간결하게 결론을 내려주었다.
“알아서 사랑해주면 되죠.”
얼굴을 가린 손을 천천히 떼어내 목에 두르고 가느다란 허리를 쥐어 제 무릎 위로 당겨 올렸다. 여전히 여자는 두서없이 뱉어낸 말 안에 담긴 감정을 다 헤아리지 못하고 있었다.
왜 모르는 걸까. 한때는 도저히 그런 상대를 이해할 수 없었다. 지금도 그녀를 다 이해한다고 할 수가 없다. 다만 이제는, 안다. 그녀가 이런 사람일 뿐이라는 것을.
“내게 알려줄 거예요?”
“알려주면 사랑해줄 건가요?”
대답 대신 입술이 겹쳤다. 할 말이 궁색해지면 나오는 그녀의 못된 버릇이다. 당신은 매번 이러지. 투덜거리면서도 올리버는 기꺼이 키스에 화답했다. 키스가 끝나면 대답도 들려줘요, 신디. 나 이번에도 잘 기다릴 테니까.
아름다운 합작을 함께했어요(u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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