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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죄가 된다면

: 로블렛 H. 베리 더보기 단순한 이야기부터 시작해보자면 비에모드 라반둘라는 로블렛 H. 베리를 좋아했다. 그를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저뿐이겠느냐만은 그렇기에 당연한 수순처럼 비에모드 또한 그를 좋아할 수밖에 없었다. 사람에 대한 호와 불호의 경계는 첫인상이 대부분을 차지한다고 한다. 로블렛 H. 베리는 그 점에서 첫인상을 좌우하기에 좋은 여러 가지 조건을 갖고 있었다. 멀리서도 눈에 띄는 큰 키, 그 높이에도 불구하고 흐트러짐 없는 우아하고 곧은 행동거지, 또렷하게 올라간 사나운 눈꼬리, 사파이어를 닮은 푸른 눈동자는 겪은 적 없는 시린 겨울 하늘을 떠올리게 한다. 알고 있는가? 지나치게 차가운 것은 반대로 지나치게 뜨겁게 느껴진다. 그가 머금은 온도가 그랬다. 입술을 떼는 순간 귀를 사로잡아버리는 ..

03. 우리는 낙원에 다다를까

: 에덴 더보기 처음은 호기심이었다. 어딘가의 풍속 소설에나 실릴법한 상투적인 표현이었으나 우리 관계의 첫 단추를 꿰기에는 부족하지도 넘치지도 않는 적절한 무게였다. 거듭 말하자면 처음은 가벼운 호기심이었다. 아카데미에 들어와 느낀 첫 감상은 그간의 제 세계는 우물 안처럼 좁았다는 것이며 두 번째 감상은 우물 밖에는 제게 없으며 앞으로도 가지지 못할 것을 가진 이들이 차고 넘친다는 것이었다. 그 중 하나가 너였다, 에덴. 광부의 아이, 가난하고 배우지 못한 자, 가진 것 없어 탐욕스럽고 그것을 숨기지도 않는 눈, 그러나 새하얀 눈. 어떻게 그 눈을 갖고 태어났나요? 솔직한 이야기를 하나 털어놓자면 1학년 때의 네 모습은 라반둘라의 이름으로 접근하기에 턱없이 가볍고 좋았다. 비굴하고 고개 숙이던 너라면 몇..

02. 뤼봉과 라벤더

: 로블렛 H. 베리 더보기 아주 먼 옛날, 쿠스토스의 동쪽에는 황폐하고 버려진 땅이 있었답니다. 드넓은 평야지대였던 그곳은 개간을 한다면 좋은 농지가 되었을 테지만 돌과 바위가 가득해 누구도 손대지 못하고 있었죠. 그러던 어느 날 정착한 곳을 찾던 한 무리의 사람들이 그 땅에 도착해 바위를 부수고 돌을 골라내기 시작하였습니다. 몇날며칠, 혹은 한 달, 혹은 1년. 그 사이에 지친 사람들은 다른 땅을 찾아 떠나기도 했지만 남은 사람들은 묵묵히 바위를 부수고 돌을 고르고 인베스에게 기도드렸죠. 이 땅에 기름진 축복이 내리길. 그러자 정말 기적이 일어났답니다. 자색의 머리카락을 가진 사랑스러운 요정이 인베스의 성령처럼 그들에게 내려온 것이죠. 요정은 인베스의 뜻을 따라 속죄와 봉사를 해야 한다고 했어요. 그..

01. 호흡의 속도가 다르다

: 크피르 F. 렌하르트 더보기 뱉어내는 한숨이 새벽 공기를 따라 흐릿하고 희게 퍼진다. 밤을 물들이기엔 터무니없이 희박한 색이었다. 제 머리색과 같다. 전부 물들이기엔 턱없이 옅었다. 비애의 정의와 같다. 네 심장이 일출을 바라보는 해바라기처럼 방향을 가리키고, 새 신에 싸인 네 두 다리가 움직이는 동안 새벽녘과 함께 지워질 뿐이다. 희뿌옇게 번져가는 두 색의 눈은 너를 보면서도 먼 곳을 응시하고 있었다. 고명한 후작가의 장자로 태어나 부족함 없이 자랐다. 빠르게 발전해가는 도회지의 번화와는 거리가 먼 고즈넉한 시골이었으나 그만큼 한가로움과 여유가 있었다. 고향을 사랑했다. 그곳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묻힐 때까지 우물 안 개구리의 삶이라 하더라도 행복했을 것이다. 하늘이 높은 것만 알면 만족할 수 있는 ..

레딘테그로 : 혁명의 도화선 :: 비에모드 라반둘라 (아스칼론)

[ 캐치프레이즈 ] 침묵하는 검끝의 잔향 “ 라 바르(La vare), 씻어나릴 수 없는 침묵에 기도합시다. ” @매민님 커미션 [ 외형 ] 라벤더를 연상케 하는 우아한 곡선의 연보라빛 머리카락. 물결치듯 구불거리는 머리카락이 어느덧 허리 아래까지 덮고 있다. 임무에 나설 때는 편의를 위해 틀어 올리고 있으나 그 외에는 느슨하게 옆을 땋거나 묶어 풀어내리고 있다. 청색과 청보라색의 서로 다른 눈동자는 세월의 흐름도 여의치 않고 꽃잎 내려 앉은 밤의 호수처럼 변함없이 잔잔하고 고요하다. 다만 때때로 그 눈이 침묵 속에 탁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입가의 점이 끌려올라가도록 부드러운 미소는 지워지는 법이 없다. 아스칼론 기사단에 입단하여 어느덧 7년, 단정하게 차려 입은 하얀 단복 아래로는 전투로 남은 흉터 ..

레딘테그로 : 혁명의 도화선 :: 비에모드 라반둘라 (아카데미)

[ 캐치프레이즈 ] 침묵하고 씻어내라 “ 라 바르(La vare). 손 내밀어보세요. ” (i: 에치와이님 지원) [ 외형 ] 라벤더를 연상케 하는 우아한 곡선의 연보라빛 머리카락. 날개뼈 부근까지 길러 언제나 머리카락 끝까지 에센스를 바르며 정갈하게 관리하고 있다. 청색과 청보라색의 눈동자는 바람결에 물결치는 꽃밭처럼 잔잔하고 고요하며 말끔한 인상 가운데 입술 아래쪽의 점이 시선을 사로잡곤 한다. 기사를 하기에는 신체 조건이 좋은 편은 아니다. 스스로도 그 취약점을 알고 다른 수를 찾고 있다. [ 이름 ] 비에모드 라반둘라 (Viemaud Lavandula) [ 성별 ] 여 [ 나이 ] 19세 [ 학년 ] 3학년 [ 키 | 몸무게 ] 162cm / 마름 [ 성격 ] 고요한, 다감한, 의뭉스러운, -아카..

45 베일 아래의 꿈

: 타카하타 이노리 더보기 ──꿈속에서 말이죠. 노래하듯 흥얼거리며 흘러나온 목소리는 상대의 답이 돌아오기 전에 선수를 치듯 이어졌다. “꿈속에서 이노리 군이 어느 대감집 자식이었어요. 아주아주 높은 자리였죠.” “꿈에 내가 나왔어?” “나왔어요. 주연이었답니다~” 간장을 발라 구운 떡을 김에 하나씩 싼다. 김에 싸는 속도와 건너편에 앉은 이의 입에 들어가는 속도가 엇비슷했다. 얘는 제법 다네. 우물거리며 나오는 말에 세이라는 그렇죠? 하고 빙그레 웃었다. 단맛 나는 간장을 썼거든요. “간장이 단맛도 나?” “설탕이 없던 시절엔 여러 곳에서 단맛을 찾았다고 해요.” 헤에, 하고 감탄하며 그가 그래서? 뒷이야기를 채근한다. 손은 부지런히 떡을 싸며 세이라는 잠시 눈을 감고 기억을 더듬었다. 꿈속에서 본 풍..

눈부신 여름과 눈부신 당신과

: 루 모겐스 더보기 넓은 창을 통해 빛이 쉼 없이 쏟아졌다. 베일은 비가 내리는 날에도 흐려질 줄 모르는 하늘이라 처음에는 대단히 신기하기도 했는데, 어느새 그 풍경에도 익숙해져 쏜살같이 지나가는 비구름과 그 뒤에 프리즘 영롱한 햇살을 구경하러 창가 앞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나는 이 풍경이 좋더라. 여름에만 볼 수 있는 이거. 해가 갈수록 좋아하는 것을 말하는 일이 어렵지 않았다. 이제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바라고 그것을 어떻게 하면 가질 수 있는지 알았다. “어째서 태어난 걸까.”,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 걸까.” 쏟아지는 모래알처럼 그녀를 괴롭히던 고민은, 그 쏟아진 바닥으로 들어가 거름이 되었고 그 날의 고민이 지금의 결실을 이루었다고 이제와 말할 수 있었다. -..

with.루 2021.08.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