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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울 소리가 멎다

도깨비쥐가 주는 음식을 먹고, 그러다 잠이 들고, 문득 일어나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에 잠겨서, 친구를 찾아 손을 더듬고, 그러다 혼자 남아, 아아…… 어둠에 완전히 먹혀버리면 차라리 편해질까. 외로움에 사무치길 반복해.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자신이 산지도 죽은지도 모르는 채 그저 막연하게 손발이 전보다 자랐다는 걸 느끼던 어느 날이었다. 임금쥐로부터 명령이 내려왔다.도깨비쥐가 인간에게 명령이라니, □■가 들었으면 기가 찼을 것 같아.……어라. 누구더라?잘 기억나지 않아.사실은 기억만이 아니었다. 어둠 속에서 너무 오래 머문 걸까. 잘 보이지 않고, 잘 들리지 않았다. 손발에 쇳덩이가 매달린 듯 무겁고 모든 것이 흐리멍덩해.아?당연한가.나는 살아있지 않으니까.살아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

산산이 부서지는 눈부신 우리의 날들이 다시는 오지 못할 어둠으로 가네

처음 ?의 방을 앞에 두고 무슨 생각을 했더라? 알고 싶어. 그래, 그랬던 것 같다. 단순한 호기심만은 아니었다. 호기심이었다면 진작에 도망쳤을 것이다. 그보다도 가슴을 쿵쾅거리며 저를 부추긴 건 두려움.두려웠기 때문에 열고야 말았다. 제 두려움의 실체를 알고 싶어서.안에는 무언가 역한 냄새와, 정신을 어지럽히는 거울로 된 벽이 있었지. 제가 찾고 있던 건 늑대였다. 이 안 어딘가에 늑대가 숨겨져 있어. 그렇게 믿었다.파작, 하고 거울에 흠집을 내고 그 너머에 빈 공간을 찾았을 때는 약간의 기쁨, 그리고 기쁨보다 큰 두려움.“선생님은… 여기에 누가 들어온 것 같다는 보고를 받아서 감시중이란다. 혹시 모르니?”그 때 이미 들켰던 것이겠지. 벽에는 제 신력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고 제 여우는 그 모든 ..

그렇게 소리가 어둠에 먹혔다

즐거운 축제날이었다. 안 좋은 예감 따위 조금도 들지 않던…… 그렇지. 짧은 인생 중 손 꼽아 즐거웠던 날이 아니었을까? 어쩌면 그 때 이미 운명은 결정되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볼 거 많겠지…. 먹을 것도. 한 바퀴 돌아보려고. 같은 자리 빙빙 안 돌고 잘…….”“그럼 오늘, 은…… 헤매지 않게.”체력이 좋지 않은 저는 평소부터 움직이는 걸 그리 좋아하지 않았지만 그 날은 무슨 바람이 불었을까. 제가 먼저 손을 내밀었다.현권, 신인학당에 와서 친해진 아이로, 언제나 구석에서 가만히 있는 제게 먼저 와서 말을 걸어주고 옆에 있어주던 친구였다. 특별히 대화를 나누지 않아도 함께 무언가를 그리거나 새기거나, 권이 곁에 있으면서 잔잔히 흘러가는 시간을 좋아했다.권이와 함께라면 축제도 즐거울 것 같아. 막연하게..

공백

【노아야, 뭐 하고 있었어?】어릴 때부터 숫기가 없는 편이었다. 아버지가 일하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며 하루를 꼬박 보내도 괜찮을 정도로 내향적이고, 얌전한 아이. 누이는 그런 저를 언제나 살뜰하게 챙겨주었다.“아, 버지의. …….”【대패질이라고 해. 신기하지? 저렇게 하면 나무가 매끈매끈해져서, 만져도 다치지 않는데.】제가 다 말하지 않아도 꼭 마음을 읽은 듯 먼저 말해주던 누이. 덕분에 저는 말이 서툰 채로도 불편함을 느낄 줄 몰랐다.【도와줄까?】“…… ……응.”【자, 여기. 연이 날아가서 곤란했겠다.】“…… ……응.”누이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불쑥 나타나 제 손에 필요한 것을 쥐어주었다. 부르지 않아도 곁에 있었다. 언제나 언제나, 신기할 정도로.“……■□는 어떻게, 내, 가…… 말, 안 해도.”..

애매한 기억

: 채도화 “…안 돼, 소노아. ……그러면 안 돼.”그렇게 말하는 네 눈동자 너머로 진한 공허를 보았다. 한 번 삼켜들면 빠져 나오지 못할 것만 같은 그 우물 속에, 너는 어떤 것을 빠트렸어? 딸랑, 딸랑.두 개의 방울이 부딪치며 맑은 소리를 낸다. 습관처럼 제 머리카락을 넘기며 노아는 구석에 웅크렸다. 광장이든 계단이든 교실이든 어디라도 좋다. 다른 사람들의 잡담을 듣고 있으면 마치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기분이 들어 노아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시간을 좋아했다.그러고 있으면 많은 이야기가 들려왔다.“어? 이 거울… 저번에 –한테 빌린 건데…… 누구였지?”“주인이 알아서 찾으러 오겠지.”“그런가?”“……우리 부모님은 연세가 굉장히 많은데 자식이 나 하나뿐이라 되게 애지중지 하신다니까. 어릴 때도 되게 ..

연애 러쉬

: 미나미 코우 나나츠보시 요리는 호기심이 왕성한 아이다. 궁금한 것은 참지 못했고 알고자 하는 욕구도 뛰어났다. 욕구는 타고난 성향만으로 이루어진 게 아니었다. 배우고자 하는 의지, 그 기저에는 그래야만 한다는 의무감 또는 책임감 같은 것도 딸려 있었다.「요리가 좋아한다는 감정을 더 다양하게 배우면 좋겠어.」오빠의 말이 있었고,【이대로는 요소라와 혼인할 수 없어.】스스로도 납득하고 싶었다.다양한 이유가 어우러져 요리는 경험을 필요로 했고 그녀의 눈에 포착된 것은 학원 내에서 오는 사람 막지 않고 가는 사람 잡지 않는다고 불리는 미나미 코우였다.어쩐지 그와 사귀었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가 진심으로 좋아해주는 것 같지 않다거나 알면 알수록 속을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라거나 그런 말을 하는 모양이었지만 요리..

아이돌 AU

: 츠키나미 다이아 “최종 11인의 멤버는──!!! ……나나츠보시 요리 양, ………츠키나미 다이아 양, ………이상으로 확정되었습니다. 모두 축하드립니다!”《당신의 소녀에게 투표하세요.》 라고 했던가. 몇 달에 걸친 합숙 생활과 합숙 생활 내내 살 떨리던 서바이벌 경쟁, 처음엔 101명이서 시작했던 프로그램은 최종적으로 11명만을 살려둔 채 막을 내렸다. 출연을 결정한 건 요리 자신이었지만 막상 프로그램이 시작하고 나서는 무던히 후회하였다. 어제까지만 해도 함께하던 동료가 오늘은 앉을 의자를 잃고 무대에서 퇴장해버리고 친구임에도 불구하고 경쟁하지 않으면 안 된다. 데뷔하여 아이돌이 되는 건 분명 그녀의 꿈이었지만 누군가의 자리를 대신 차지하고서까지 해야 할까? 후회도 컸다.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을 ..

이빨 뽑는 날

“흐어어엉, 요소라는 바보! 요소라는 거짓말쟁이!!”“요리. 그러니까 거짓말이 아니라 정말로 흔들리는 이빨을 뽑아야 새 이가……”“흐어어어엉, 거짓말! 요리도 타마 할머니처럼 틀니 해버리는 거야? 잇몸으로 우물우물 해버려? 싫어어, 흐어어엉.”“하아아…….”아마 여섯 살이었던가. 드디어 요리도 젖니가 빠질 나이가 되었다. 그러나 이가 흔들린다는 것은 아무래도 아이에게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현실이었던 모양이다. 이제껏 밥을 씹을 수 있게 해주던 소중한 아랫니가 위태롭게 흔들리는 것도 모자라 뽑아야 한다는 것이. 뽑고 나면 튼튼한 새 이가 날 거라고 요소라는 끈기를 갖고 설득했지만 슬프게도 요리는 받아들이지 못했다.커다란 보라색의 눈동자에 그렁그렁 눈물을 매달고 요소라의 손에서 벗어나려고 버둥거린다. 그 두 ..

봄사냥

: 츠키나미 다이아 비가 그친 다음날은 거짓말처럼 맑았다. 자고 일어났을 때, 눈을 찌르는 태양빛과 제 머리색마냥 새파랗게 펼쳐진 하늘에 요리는 만면의 미소를 띠고 피크닉 준비를 하였다. 다이아의 방에 달려가, 손을 잡고는 함께 식당의 조리실을 빌려서는 피크닉 음식을 만들었다. 주 메뉴는 유부초밥과 샌드위치. 함께 양념된 밥을 주물러 유부의 속을 채우고 샌드위치에 넣을 재료들을 손질하면서 요리는 봄을 만끽할 기분으로 가득 차올랐다.“기대되네, 나미나미!”“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두 사람이서 옹기종기 모여 도시락을 싸는 모습이 귀여웠는지 조리실의 직원들이 이것저것 도와주거나 챙겨주기도 했다. 덕분에 메인메뉴 외에도 과일이며 간식이 잔뜩 생겨서 이걸 다 먹어치우려면 두 끼는 필요할 것 같았다.피크닉 가방..

맞선

: 미나미 코우 “코우, 이번엔 정말 참한 사람으로 잡아뒀으니까 꼭 좀 잘 해봐라.”“또~? 하아, 삼촌들도 참 끈질기네.”졸업하자마자 그에게 들이닥친 건 즐거운 20대의 청춘이나 치열한 젊음, 스릴 넘치는 사건, 그런 게 아니었다. 반대로 성인이 되기만을 기다렸다는 듯 어깨를 짓눌러오는 여러 책임, 의무, 이어받아야 한다고 눌러오는 윗세대의 기대와 기대만큼이나 부푼 가문의 무게였다.그러나 도망칠 생각이었다면 이미 머리에 피가 마르기도 전에 집을 뛰쳐나갔을 것이다. 도망치지 않은 건 그의 선택이었고 그의 책임이었으며 이제 와서 후회 같은 건 느끼지 않았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결국 이곳이야말로 그가 숨김없이 그 자신을 내보일 수 있는 곳이었고, 그가 사랑하는 곳이니까.그렇다고는 해도 어깨를 짓누르는 책임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