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룸메이트

: 아이제니프 다 카일리피르 제니에게 룸메이트 제안을 받았다. 챠콜은 신이 나서 방의 짐정리를 하다가 문득 아, 하고 습관처럼 뒷목을 문질렀다. 그러고 보니 룸메이트를 만들지 않으려고 했던 건 제 목의 표식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으음, 하고 고민하던 챠콜은 그래도! 하고 혼자서 고개를 붕붕 저었다. 그건 나중에 제니에게 설명해야 할 또 다른 문제고 지금은 룸메이트가 생겼다는 즐거움을 느끼고 싶었다.《챠콜은 사람과 어울리는 걸 싫어하지 않는다.》──는 굉장히 별 것 아닌 사실을 이곳에 와서 깨닫고 있었다. 그 전까지는, 이런 사실과 마주할 일 자체가 없었으니까.좀 더 어울리고 싶다. 좀 더 가까이 있고 싶다. 좀 더, 좀 더……. 깨닫고 난 뒤로 마치 어떤 갈증에 시달리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그런 자신에게..

심연의 서막 2017.07.20

푸른 꽃잎

: J. 디셈버 윈터가든 “’존재’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건, 결국 내 탄생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의미가 되죠.”가늘고 하얀 손가락 끝에서부터 파란 빛줄기가 서로의 몸을 얽어 묶는다. 마력에 예민한 자라면 그의 손가락이 자아내는 정순한 기운을 감지해낼 수 있겠지만 애석하게도 챠콜은 그저 달빛도 햇빛도 아닌 빛이 손가락 끝에서 만들어지는 걸 감탄하며 바라볼 뿐이었다.마법이란 이렇게 예쁜 걸까? 보석이나 꽃 따위와는 다른 사람을 홀리는 힘이 있는 것 같았다. 새파란 빛줄기는 이윽고 얼음으로 빚어낸 듯한 줄기가 되었고 그 줄기에서 쏙쏙 가시가 돋아났다. 어딘지 당신 같네. 그렇게 생각하며 응시하고 있자 그가 도자기 같은 손가락을 이쪽으로 느릿하게 가져왔다.“탄생은 내 뜻대로 할 수 없는 문제예요. 내 스스로 결정..

심연의 서막 2017.07.20

그림 너머

: 에르덴 루미얀체프 짧게 내뱉은 숨이 밤을 수놓듯 하얗게 번진다. 그러나 이 땅을 모두 덮은 검은 장막을 수놓기에 제 숨은 터무니없이 연약했다.잠이 오지 않는 밤이었다. 가끔 이렇게 자려고 해도 정신이 말똥거릴 때가 있다. 오늘은 달리기가 좀 부족했던 걸까. 체력을 모두 써버릴 때까지 달리고 달리고, 그러다 지쳐서 곯아떨어져야 하는데. 지금부터라도 산에 다녀오면 좋겠지만 오늘은 아무래도, 그것보다는 뭘 해도 안 되는 날인 게 분명했다.“……ㅅ.”손가락 끝이 저릿하고 아파온다. 시작인가. 꼭 뱀의 독에 물린 듯 심장에서 가장 먼 부위부터 저릿저릿 쥐가 난 듯 아려오는 게 첫 번째다. 그 때부터 이미 챠콜의 기분은 최악으로 치닿는다. 이 다음은 피부 안쪽에서부터 수천 개의 바늘이 몸을 찌르는 듯한 감각이다..

심연의 서막 2017.07.20

내밀어진 손을 잡았어

: 아이제니프 다 카일리피르 『함께 강해지지 않을래?』───그 말에 솟아오르던 감정을 아직도 말로서 채 다 표현해낼 줄 모른다. 길고 험난한 산맥을 홀로 넘어, 동쪽에서 서쪽을 가로지르는 지루한 여행길이었다. 산맥을 몇 번 넘은 것만으로 익숙하고 낯익은 동쪽과는 다른 공기, 다른 문화가 펼쳐지는 건 신기하기도 하고 동시에 두렵기도 하였다. 이곳의 사람들은 제가 아는 사람들이 아니다. 겨우 다른 도시를 방문한 것만으로 긴장하고 경계해야 했다.이제 가르쳐줄 사람이 곁에 없으니까.잔뜩 경직된 어깨를 하고 아카데미에 도착했다. 서툰 글씨로 입학 신청서를 작성하고 입학시험을 치르라는 안내를 받아 가는 길 내내 어려운 문제가 나오면 어쩌지, 입학 안 시켜준다고 하면 어쩌지 조마조마했던 것 같다.그렇게 들어간 경기장..

심연의 서막 2017.07.20

서막

“아! 펜던트 찾았다~!”오늘은 하루 종일 펜던트를 찾느라 시간을 다 보내버렸다. 떨어트린 걸 새가 물어갔던 건지 둥지 위에서 기어코 찾던 걸 발견한 챠콜은 휴우, 가슴을 쓸어내리며 펜던트를 뽀득뽀득 닦아 품안에 갈무리하였다. 어느새 하늘은 새까맣게 물들어 별이 반짝이고 있었다. 나무의 가장 꼭대기까지 올라 챠콜은 두 팔을 넓게 펼치고 폐까지 얼어붙을 것 같은 찬 공기를 후읍 들이마셨다.사막의 밤도 깜짝 놀랄 만큼 추웠지만 이곳과는 공기가 다른 기분이다. 숨을 쉴 때마다 얼음을 깨무는 듯한 공기가 여전히 조금 낯설었다.“진짜 온 거구나. 아카데미.”후만이 보면 놀라겠다. 까칠까칠한 수염이 난 채로 크게 웃던 그의 얼굴을 떠올리며 챠콜은 따라서 혼자 큰 소리로 웃었다. * * 세상에 눈을 떴을 때부터 아이..

심연의 서막 2017.07.20

심연의 서막 : 에슬리 챠콜 (2부)

(*안개님 지원 감사합니다S2)“펭귄은 집에 있는데?” 이름 : 에슬리 챠콜 Esli Charcoal 나이 : 21세 성별 : 여자 종족 : 사일란 소속 : 제국군 외형 : 길던 머리카락을 어깨에 닿지 않게 싹둑 잘랐다. 머리카락에 드문드문하게 보이던 노란색이 머리카락 하단 약 1cm 가량에서도 나타난다. 끝부분은 색이 빠진 듯 빛바랜 느낌으로 건드리면 부서지기 쉽다.상아색의 깨끗한 피부, 새까맣게 반짝이는 눈동자는 변함없지만 16세에 비해 부쩍 성숙한 분위기를 풍긴다. 적어도 겉보기로는 차분하고 우아한 표정도 지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주의가 흐트러지면 금세 과거처럼 상기된 표정으로 들떠버리고 만다.최근 피부가 안쪽에서부터 열이 오른 듯 만지면 퍽 따뜻하다. 덕분에 평소에도 타지 않던 추위를 더욱 ..

심연의 서막 2017.07.20

심연의 서막 : 에슬리 챠콜 (1부)

(*안개님 지원 감사합니다S2) “펭귄은 어디 있어?” 이름 : 에슬리 챠콜 Esli Charcoal 나이 : 16세 성별 : 여성 종족 : 사일란 외형 : 군데군데 노란색으로 물든 붉은 잿빛 머리카락. 태어날 땐 조금 더 짙은 잿빛이었지만 자라면서 밝아졌다. 붉은 기가 돌게 된 건 사막의 태양에 오래 노출된 탓일지도? 하고 본인은 생각하고 있다. 군데군데 노란색으로 물든 건 아마도 사일란으로 태어난 후유증. 자랄 땐 평범한 머리색이었지만 들쑥날쑥 노랗게 변해버린다.또랑또랑한 검은색 눈동자. 작고 가벼운 체구로 몸의 탄성이 좋다. 목소리가 큰 편으로 유쾌한 일이 있으면 입을 크게 벌리고 웃는다. 자신을 흥분시키는 타깃을 발견하면 두 뺨을 붉게 물들이고 부담스러울 정도로 쳐다본다. 피부는 조금 건조한 편...

심연의 서막 2017.07.20

개나리

『이것 봐요, 잔뜩 피었어.』 “응. 정말 잔뜩 피었네.”그녀의 말을 따라 하며 그 뒤를 쫓는다. 맞잡은 손은 나란히 걸어도 괜찮다고 해주었지만 조금 익숙하지가 않아 네 갈색의 머리칼이 나부끼는 걸 뒤에서 지켜보다가 결국 잡아당기는 손에 이끌려 나란히 보조를 맞췄다.함께 봄나들이를 가기로 결정한 건 몹시 즉흥적인 일이었다. 「개나리, 가윤이를 닮았어.」 그 말 한 마디에 불쑥 약속이 정해졌다. 아직 꽃봉오리가 피기도 전부터 그녀는 언제쯤 꽃이 다 피어날까요? 노래를 하며 기대했고 이윽고 언 땅이 녹고 메말랐던 땅 위로 파릇파릇한 잎사귀가 덮일 즈음이 되자 제일 먼저 자신에게 달려와 주었다.노아야, 꽃이 피었어요. 같이 보러 나가요!──바깥에 핀 꽃을 보기도 전에 환하게 웃는 그녀의 얼굴이 꽃처럼 곱다고 ..

#01

고산이 돌아간 뒤 우리는 학교에 남겨지게 되었다. 처음에 리리의 인형과 싸우는 어린 여자애를 보았을 때는 이게 또 무슨 일인가 했는데 저 여자애가 마왕이라고?그 마왕 일당이랑 전면전이라도 벌어지는 걸까. 2라운드 돌입일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그들이 별관으로 도망치면서 큰 싸움은 벌어지지 않았다. 좀 더 큰 전투를 각오했는데─마왕과의 전투라니 어딘지 RPG 게임 같은 느낌이다─, 그쪽도 모든 힘을 되찾은 게 아니어서 그런지 일단 후퇴한 모양이다.덕분에 마왕 일당이 별관을 차지하고 우리가 본관을 차지하는 형태가 되어버렸다. 곰 여왕이랑 왕을 봉해두었으니까 이제 완전 안심~ 이라고 생각했는데 마왕이 남아서 조금 걸리긴 했지만, 당장 서로 크게 싸우진 않을 것 같았다.그러고 나자 생각보다 평화로운 나날이었다. ..

~2017년/Notice 2017.07.14

01-05

엄마를 위해서 돈이 필요하다. 겨우 하루, 하루만 꺼림칙한 폐교를 조사하면 20만원이나 준다고 한다. 그러다 찾는 물건을 발견하면 무려…… 10억! ……10억이란 대체 얼마나 큰 금액일까. 그거 하나면 엄마도 다 치료하고 앞으로 힘든 일 하지 않고도 먹고 살 수 있을까? 그렇게만 된다면 대학 걱정도 안 해도 될 텐데.그렇게 정신을 차렸을 땐 폐교 안에 있었다. 아무래도 멍하니 걸어온 모양이다. 게다가 주위에 사람이 이렇게 많았나? 다른 데 정신이 팔려서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흠칫 놀라고는 데구르르 눈을 굴리며 주변을 살피자 다들 비슷한 것 같았다.───저 사람들 다 경쟁자?저도 모르게 경계하며 지켜보는데 누군가 나타난다. 눈 양쪽 색이 다르고 머리에 흉터가 있는 사람…. 무서워. 그 사람이 그랬다. ..

~2017년/Notice 2017.07.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