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처럼 가볍게 서로 어울려 장난을 치는 시간이었다. 열어놓은 창문으로는 햇살과 바람이 기분 좋게 불어왔다. 슬슬 바람이 더운 것도 같네. 여름이 오려나. 그런 대화를 나누었을까. 그의 위에 올라앉자 히죽거리는데 그가 슬쩍 상체를 들며 눈을 마주쳤다. 잠깐의 신호였다.
어깨를 감싼 커다란 손에 침대의 스프링이 삐걱 소리를 내며 크게 흔들리고, 두 사람의 위치가 순식간에 뒤집힌다. 얇은 이불이 펄럭이다 가라앉으면 이번엔 내 차례야. 그렇게 말하기라도 하려는 듯한 그의 얼굴이 보여서 소리 높여 웃었다.
이리 와. 제 위로 드리운 그의 목에 팔을 감고 당기자 기다렸다는 듯 그가 얼굴을 묻었다. 부드러운 머리카락이 먼저 뺨과 목에 닿고 이어 입술이 닿는다. 쪽쪽, 쪽, 일부러 내는 소리는 어딘가 웃음소리를 닮은 것 같기도 했다. 한참을 그저 부비적거리며 피부와 피부가 접촉하는 감촉을 즐기겠다는 양 굴다가 한 번씩 떨어져 눈을 마주치기도 했지. 유순한 시선이 일부러라는 듯 올려다보는 게 애교라도 부리려는 것 같아 아주 예뻐. 그 말 대신 온도가 다른 양 눈에, 그의 입술에 똑같이 키스를 해주었다. 그러면 만족한 듯 다시 달콤한 맛이 감돌 것 같은 입술이 뺨에, 턱에, 잔 키스를 내렸다.
간지럽다고 살짝 몸을 비틀면 양손으로 쥔 어깨와 그 위로 접힌 그의 긴 팔이 새삼스럽게 단단해서 품에 가두어진 느낌도 받았다. 꾹 누르는 손에는 체중이 실려 침대가 조금 기운 건 아닌가 착각이 들었다. 새삼스럽게도 그가 커다랗구나, 무겁구나, 느꼈다. ──평소엔 잘 느끼지 못하다가 이럴 때 느낀다.
“꽤 무겁네, 루.”
“그렇게 말하면 상처인걸.”
연인에게 사랑받기 위해 다이어트라도 하란 뜻일까? 어디로 보나 농담인, 혹은 저를 놀리기 위한 게 뻔한 말이지만 눈썹을 팔자로 내리고 말해오면 알면서도 움찔해버린다. 그걸 즐기는 거겠지. 그런 뜻 아니란 거 알면서. 말과 함께 내려간 눈썹을 억지로 올리면 아하하, 능청스런 웃음이 돌아왔다.
“그런 게 아니라 이러고 있으니까 정말 커다란 개에게 깔린 것 같아서, 루가 맨날 날 고양이 보듯 구는 기분을 좀 이해해버렸어. ……날 좋아하는 동물은 역시 루뿐이지.”
언젠가의 일을 떠올리며 구불거리는 그의 머리카락을 살살 쓰다듬었다. 그녀의 손길에 그의 눈꼬리가 다시 만족스럽단 듯 휜다.
“널 가장 좋아하는 동물도 나뿐이지?”
그 말에 키득거리고 웃으며 끄덕인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동물도 루뿐이고.”
이거 동물이라고 해도 되는 걸까. 잠깐 고민하지 않은 것도 아니지만 인간은 모두 동물이라던 누군가의 가르침을 떠올리며 넘겼다.
그러고 보니 꽤 길었네. 그리고 색이 더 연해진 것도 같아. 처음 만났을 때의 그 길이에는 비할 바가 되지 않지만 제법 길어진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굽이굽이 쓸어내리며 중얼거린다. 자르는 편이 좋아? 그의 말에는 고개를 저었다. 루가 자르고 싶으면, 자를 생각이 없으면 이대로도 좋고. 다만 점점 물이 빠지듯 흐릿해지는 색은 제 머리카락이 지금 무슨 색인지를 상상하지 않을 수 없어서 우린 정말 어쩔 수 없는 굴레에 있구나. 그런 실감에 잠깐 헛웃음이 흘렀다.
갑자기 샌 웃음에 그가 기색을 살펴온다. 아무것도 아냐. 고개를 젓다가 한 번 더 그를 당겨 품에 감싸 안고는 퍽 다정한 손길로 쓰다듬었다.
“그냥 문득, 아무것도 아닌데 또 사랑스럽구나 했어. ……지금 부끄러우니까 얼굴 보지 마. 이대로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