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긋한 목소리와 함께 현관이 철컥 열린다. 다녀왔어, 루? 벌떡 일어나 현관까지 마중 나가려던 에슬리는 막 신발을 벗는 그를 보고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다.
“아, …어때?”
살짝 쑥스러운 빛을 하며 그가 허전한 목덜미를 손바닥으로 문지른다. 손바닥에는 흰 목선만 닿았다. 평소라면 목가에서 느슨하게 묶어 어깨 아래로 닿았을 옅은 회색의 머리카락이 지금은 귀를 살짝 덮을 정도만 남아있는 것이다.
어쩐지 오늘은 어딜 가는지도 말해주지 않고 “금방 다녀올게.” 그렇게 훌쩍 나갔다고 생각했다. 어떠냐고 묻는 그를 앞에 둔 채 에슬리는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그러다 한 박자 늦게 후다닥 소파 뒤로 숨었다.
이상해? 반응이 신경 쓰였는지 그가 조심스럽게 물어온다. 에슬리는 고개를 도리도리 젓고는 그대로 이마를 소파 헤드에 꾹 눌렀다. 그게 아니라……, 말을 끌다가 흘끔, 소파 위로 눈을 들면 어느새 한 걸음, 두 걸음 그가 다가오고 있었다. 그래서 다시 후다닥 머리를 소파 아래로 눌렀다.
“아니면 마음에 안 들어?”
“그것도 아니고…… 마마, 마음의 준비가 필요해…!”
그게 무슨 말이야. 머리 위로 웃음소리가 들려 목부터 열이 오른다. 갑자기 여름의 햇빛이 자신에게만 쏟아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정말인걸 어떡해.
그와 알게 된지 올해로 몇 년째더라. 16살, 아카데미에서 처음 만나서 오늘 이 시점까지 그의 머리카락은 언제나 어깨 아래를 유지했다. 조금 부스스한 느낌이 들던 단정하지 않은 느낌의, 이렇게 목덜미가 시원할 만큼 짧고 산뜻한 모습은 처음 본다. 다시 말해 지금의 그가 낯선 것이었다.
낯설어서 새삼스럽게 낯을 가리고, 부끄럽고 또 두근거려서 똑바로 볼 수가 없다. 어디가 어떻게 부끄럽고 두근거리냐고 물어보면 그냥, 그냥……. 웃지 마. 중얼거리며 에슬리는 소파 아래로 좀 더 숙였다.
미의 기준이라거나 이상형을 말하라고 하면 마땅히 떠올릴 게 없다. 특별히 미의식을 갖추고 있는 것도 아니다. 에슬리는 이런 방면에 무심했다. 그런데 참 신기하지. 때때로 연인의 얼굴을 볼 때면 사람들이 외모를 두고 감탄하거나 찬사를 하는 기분을 알 것 같아졌다.
“마음에 안 들면 어쩌지. 네게 잘 생겨보여야 하는데.”
어딘지 앙큼하고 능청스런 목소리가 머리 위로 떨어진다. 잠시 숨을 삼키던 에슬리는 여전히 눈을 내리깐 채로 가까이 다가온 그에게 팔을 뻗어 목을 감았다. 그렇게 힘을 주자 그녀에게 이끌려 순순히 기대온다. 무게를 싣고 그의 어깨에 슬쩍 턱을 얹으며 희게 드러난 부분을 만지작거렸다.
사일란의 표식, 새까만 문양, 아직 조금 까끌거리는 부분과 가위가 닿아 열이 남은 피부, 위에서부터 손가락에 걸어 쓸어내리면 금방 뚝 끊겨버린다. 그게 살짝 허전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다. 이상해. 이미 나는 루에게 반해 있는 줄 알았는데 방금 또 반해버린 기분이 들어버렸어. 맨날 두근거리는 줄 알고 있었는데 아직도 두근거릴 게 남았구나 했어. 머리카락을 조금 자르고 온 것만으로 이런 기분을 느껴버리는 거 웃기지 않아? 그런데 진짜야. 혼잣말과 함께 이마를 슬 품에 문질렀다.
“머리는 왜 자른 거야?”
“슬슬 여름이고 더워지니까. ……아직도 얼굴 보면 안 돼?”
“아직, 그…, 조금만 더.”
이러다 여름이 다 지나도록 못 보는 건 아니지? 농기 섞인 목소리에 뚱한 얼굴로 아니야. 답한다. 며칠 안에 적응할 거니까. 투덜거리자 며칠이나? 하고 돌아온 반문은 정말로 놀란 것일까 놀리려는 것이었을까. 며칠 안엔 할 거야. 한 번 더 말하며 에슬리는 여전히 낯선 그의 머리끝을 조금 더 만지작거렸다.
───공기가 뜨거워지고 있었다. 그늘과 양지가 서로 다른 온도를 머금었다. 온통 초록빛으로 물든 땅 위로 풀냄새가 강해져가고 어딘가 먼 하늘에서는 비구름이, 반대편에선 피부가 익을 것 같은 강한 햇살이 찾아들었다. 시곗바늘이 또 한 번 째깍, 움직여 어느덧 함께 맞이하는 4번째 계절이다. 함께하는 여름은 또 얼마나 눈부시고 찬란할까. 기대로 심장이 빠르게 뛴다. 그러려면 어서 익숙해져야지. 간지럽다는 그의 웃음소리를 귀에 담으며 에슬리는 한참 짧아진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렸다. 여름의 실감이었다.
여름한정 루슬리의 달라진 헤어스타일~>< 이런 식으로 소소하게 달라지고 시간의 흐름이 보이고 하는 게 좋다. 함께 지내고 있다는 것도 느껴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