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케가와 후유키. 세이라가 학원에 입학하던 시점에서 이미 학원에 부임해 있던 교사. 첫 인상은 조금 무섭다. 말을 걸지 못하겠다. 아이들을 싫어하는 건 아닐까. 등등. 조부모의 품을 떠나 살던 땅도 떠나 낯선 곳, 낯선 사람들 사이에 둘러싸였던 8살 세이라에게 타케가와 후유키는 그러니까 우연히 마주쳐도 살금살금 피해버릴 상대였다.
그 이미지가 조금 달라진 것은 어느 날 피곤한 얼굴로 센베를 먹는 그를 보았을 때, 울고 있는 아이의 머리를 다정하게 쓰다듬어주는 그를 보았을 때, 그리고…, 또 그리고…….
학원에 적응해나가는 만큼 그가 익숙해졌다. 표정에 드러나지 않는 그의 상냥함을 알게 되었다. 발견하면 먼저 가서 인사를 하고 할머니가 센베를 보내주실 때면 꼭 찾아가 나눠주고 그러다 반대로 간식거리를 한아름 받기도 하고. 세이라에게 후유키는 센베를 맛있게 먹어주는 좋아하는 선생님이었다.
다정한 관계에 조금의 변화가 찾아온 건 그로부터 1년이 지나서였다. 겨우 학원에 적응한 세이라에게 조부와의 사별은 큰 충격으로 다가왔고 그에 더해 학원에서 갇혀 지낼 수밖에 없는 현실을 깨달으면서 어린 나이로는 감당하기 힘든 무력함과 좌절을 느끼게 되었다.
스스로도 온전히 표현해낼 수 없는 슬픔과 절망에 허우적대는 그녀를 차갑고 깊은 바다에서 꺼내준 건 후유키였다.
머리를 쓰다듬는 그 손길에 다른 의미도 깃들어 있었다는 걸 알게 된 건 조금 더 지나서다. 세이라는 하지만 그의 앨리스에 감사했다. 슬픔에 짓눌린 채 있고 싶지 않았다. 어째서 이렇게까지 울적한지 스스로 이해할 수 없는 감정에 파묻혀 있고 싶지 않았다.
어렸던 세이라에게 그의 손은 때때로 마법처럼 느껴졌다. 머릿속을 차지한 먹구름을 걷어내고 햇님을 띄워주는 마법사였다.
「선생님~ 오늘도 힘내세요.」
「그래, 고맙구나.」
눈에 보일 때마다 달려가 웃어주는 것은 그가 걸어준 마법에 보답하는 세이라 나름의 수였다. 선생님 덕분에 이렇게 웃을 수 있어요. 잘 지내고 있어요. 하고 보이고 싶었다. 그러면 돌아오는 희미한 미소에 뿌듯함도 느꼈다. 그 덕분에 찾은 안온함이었다.
그 시절에는 의문조차 갖지 못했다. 만약 그의 손이 정말 마법처럼 세이라의 먹구름을 걷어준다면, 풍랑이 이는 바다를 잔잔하게 만들어준다면, 그 먹구름은 또 풍랑은 어디로 가는가.
멀리멀리 날아갈 줄로만 알았다. 어쩌면 그렇게 믿고 싶었던지도 모른다.
──선생님이 쓰러졌단 말을 들었을 때, 세이라가 떠올린 풍경은 슬픔의 무게에 무너진 그였다. 막연하게 그렇게 느꼈다. 더 이상 선생님에게 앨리스를 부탁해서는 안 돼. 이러다 선생님이, ……선생님마저.
「오래오래 건강하게, 약속…… 해주실 수 있나요?」
부모님에 대한 기억은 하나도 나지 않았다. 앨범을 넘겨도 조금 얼굴이 닮은 낯선 사람들일 뿐. 이에 그리움이나 쓸쓸함을 느낀 적도 없다. 그리워할 만큼 부족하지 않았던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니 세이라는 후유키에게 아버지의 위치를 덧씌우거나 빗대지도 않는다.
다만 돌아가신 부모님의 나이가 지금의 그와 비슷하다는 것과, ……소중한 사람의 죽음을 또 보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었다.
걱정하는 세이라를 그가 슬슬 피하는 것은 알고 있었다. 도움을 주는 것은 반기면서 도움을 받기는 바라지 않는 게 여실했다. 세이라가 어리기 때문일까. 학생이라 그런 걸까. 그저 누구의 도움도 필요로 하지 않고, 이 고통과 고난을 자신이 짊어져야 할 업처럼 여기는 그의 성향인 걸까.
「선생님이니까 이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학생들의 문제는 내 문제나 다름없으니까.」
「이것도… 나쁜 습관이려나.」
아주아주 나쁜 습관이에요. 선생님 스스로를 갉아먹는.
세이라는 고민했다. 어떻게 말을 고르면 좋을지 안경테 너머로 그늘이 드리운 그의 눈을 응시하면서 그에게 들려줄 말을 찾았다.
「제 슬픔은 지금쯤 어디로 가고 있을까요?」
「내 슬픔은 어디에도 없지.」
9살 어린아이는 16살로 자라나 반대의 질문을 꺼낸다.
“그렇다면, 선생님의 기쁨은요?”
좌지우지 할 수 없이 드는 당신의 감정은 슬픔뿐인가요? 기쁨은, 행복은, 안도는, ……어딘가 고장나버린 건 아닌가요.
“저는요, 선생님. 선생님이 제 슬픔을 가져가는 만큼, 선생님에게 기쁨도 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제 안에 슬픔만이 있는 게 아니라 기쁨도 있음을 알려드리고 싶어요. 그렇게 해서 선생님도 기뻐질 수 있도록.”
그에게 슬픔으로 기억되고 싶지 않았다. 제 안의 어디에서 기쁨을, 또 행복을 찾아야 좋을지 스스로도 아직 어려운 부분이었지만 그를 위해서 찾고 싶었다.
“……앨리스로 느끼는 감정이 가끔 무섭게도 느껴져요. 꼭 마법 같아서, 만능 같아서. 그래서 이 감정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헷갈리기도 하고.”
그의 손을 두 손으로 잡은 채 소곤소곤 말을 이어나간다. 감정을 의심한다면 의심하지 않을 다른 것을, 가령 이렇게 온기를.
“미야코 씨가 말이죠. 자기는 약을 만드는 사람이니까 자기가 만드는 약에 확신이 있다고 그랬어요. 선생님은 어떤가요. 선생님이 만드는 감정에 확신을 갖고 있나요. 선생님이 느끼는 감정은요…?”
선생님이 기쁘지 않으면, 선생님이 슬픔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저도 같은 감정을 느끼고 말 거예요. 그게 선생님에게 저의 감정을 나누어버린 책임이라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