린은 헤이거 씨랑 한 방을 쓴대요. ……세상에나! 저는 정말 놀라서 린 방에 놀러가려다가 반대로 린을 방에 초대했어요. 제 방도 어쩌면 올리브 씨와 함께였을지도 모르는데 말이죠. 이렇게 버려질 줄이야, 훌쩍. 1인실은 제법 널찍하고 제 포켓몬들은 다른 분들의 포켓몬에 비해 커다랗지 않은 애들이 많아서 모두 볼에서 나와 있어도 괜찮았어요. 테토는 자기 새 액세서리가 맘에 들었는지 거울 앞에서 떠나지 않았고 테리는 기껏 볼에서 나와 놓고 구석에서 버섯과 친구를 하고 있었어요. 테마리는 트레이닝백을 두드리느라 지금 자리를 비웠어요. 바깥에서 트레이닝백 두드리기가 끝나면 돌아올 거라고 하네요. 테루테루는 자기 차례를 기다리면서 배울 순 없지만 공중날기 시청을 함께 하기로 했어요.
아직 배울 때가 아닌 피코와 곧 배울지도 모르는 네로도 이 상영회에 함께해주었답니다. 저는 모처럼이니까 커다란 TV에 플레이어를 연결해서 ‘공중날기’ 기술머신을 재생했어요.
“디모넵은 이렇게 하는구나.”
“린은 어떻게 했는데요?”
제 말에 린은 뭔가 생각하는 표정을 지었어요. 이렇게도 하고 저렇게도 하고 그렇게도 하고, 린은 꽤 다양한 방법을 시도하나 봐요. 그러고 보니 기술머신 사용을 물리적으로 하는 분들도 꽤 많이 보였죠.
그렇지만 저는 역시 이론->실전 파여서요. 게다가 공중날기는 굉장히 난이도가 높은 기술이라고 들었거든요. 다른 지방에서는 체육관 배지를 면허 대신 사용한다나 봐요.
“하지만 테비라면 할 수 있을 거야. 그렇지?”
테비 옆에서 네로는 훗, 공중 날기. 그거 별 거 아니야. 라고 선배로서 뽐내고 싶은 것 같았어요─어디까지나 디모넵의 눈ー. 네로의 자랑에 자극을 받은 테비는 엄청난 집중력을 발휘해 공중날기를 익혔어요.
그 두 번째, 테루테루의 불꽃펀치
테비가 열심히 공중날기를 시청하는 동안 저는 캐러멜 맛 팝콘을 튀겨왔어요. 기술머신 시청이 의외로 쏠쏠하고 재밌거든요. 수많은 새 포켓몬들의 공중날기 시전을 보는 건 정말 시간 가는 줄 몰랐어요. 새 포켓몬 말고 드래곤 타입의 공중날기는 와, 저 정도는 되어야 지방을 넘어다니겠구나 했지 뭐예요.
“린, 캐러멜 맛!”
린은 팝콘 중에 캐러멜 맛을 가장 좋아한대요. 이런 부분에서 또 공통점을 발견해서 저는 신나서 팝콘을 한가득 퍼왔어요. 네? 이번에도 아무 맛 안 나는 거 아니냐고요? 에이. 이건 그냥 재료를 넣고 튀길 뿐인걸요.
저도 알아요. 제가 간을 하면 안 되는 것쯤은.
그 사이 공중날기가 끝나고 다음은 불꽃펀치의 시간이었어요. 불꽃펀치를 방송할 때는 레비도 함께 자리해서 옆에서 직접 시범을 보여주기도 했어요.
우리 테루테루는 엄청 똑똑하고 재능이 넘쳐서 불꽃 기술도 전기 기술도 얼음 기술도 쓸 수 있는데 어쩌다 보니 불꽃엄니 다음엔 불꽃펀치를 배우게 되었네요. 다음엔 불 타입 친구를 사귈 수 있으면 좋겠어요. 갈수록 추워질 텐데 테루테루에게 따뜻하게 해달라고 한 방 날려줘! 할 수는 없잖아요.
테루테루는 ‘내 이빨보다 내 주먹이 더 강해지는 고얌?’ 하고 어리둥절한 눈을 하면서 같이 불꽃펀치를 시청했어요.
그 세 번째, 테마리의 불꽃펀치
우리의 팝콘이 거의 다 비워지고 테루테루의 불꽃펀치 시청도 끝나갈 즈음이었어요.
벌컥!!
하고 문이 열린 테마리가 두 손에서 씩씩거리고 화르르륵 불타오르는 두 손을 보여주지 뭐예요.
뭐? 자력으로 불꽃펀치를 익혔다고??
……아, 그게 아니라 트레이닝백을 너무 두드렸더니 두 손이 불타오르고 있, 아니 이럴 게 아니라 물. 물!!
제가 서둘러 물을 찾자 테토가 얄밉게 테마리의 두 손에 물을 찍 뱉어줬어요. 아, 잠깐. 이러다 너네 또 싸울 거지?!
“리, 린. 미안해요. 이런 정신 사나운 방이라서!”
팝콘통이 엎어지려는 걸 간신히 사수하고 둘을 말리느라 정신없는 사이 불꽃펀치는 멋대로 2바퀴째를 재생하고 있었어요. 그리고 어느새 테마리의 두 주먹에는 불꽃이 깃들어버렸어요. 테토, 한 번 더 물! 물!!
역시 테마리의 장갑을 사주는 일을 서둘러야 할 것 같아요. 이러다 제 소중한 테마리의 주먹이 다 상해버릴 것만 같아요.
그 네 번째, 테리의 은혜갚기
테비가, 테루테루가, 테마리가 각자 새로운 기술을 익히는 동안 테리는 구석에서 무언가를 징걸징걸 씹고 있었다.
그것은 오늘 막 캠프에서 따끈따끈하게 새로 받은 기술머신 ‘은혜갚기’
기관총을 배울 때만 해도 디모넵의 품안에서 아늑하게 시청했던 것 같은데, 지금의 테리는 스스로 기술머신을 삼키고 곱씹고 기술을 익히고 있었다.
이렇게 해서 강해진다면, 강해져서 배틀에 설 수 있다면, 그렇게 디모넵의 쓸모가 될 수 있다면.
스스로 바라는 것은 정말 그것일까?
14년을 디모넵과 함께 하면서 늘 디모넵의 가장 좋은 이해자였고 위로였던 테리는 지금 처음 그 자리에 멈춰서고 말았다. 그야말로 한 그루 나무가 된 것처럼, 디모넵에게 다가가지 못하고 그 자리에 뿌리를 박고 서서 스스로의 마음을 생각하고 있었다.
테리는 무엇을 바라고 있을까.
‘디모넵을 좋아해요. 디모넵을 정말로 좋아해요. 그런데……, 그래서…….’
이 마음은 은혜를 갚고 싶은 걸까. 테리가 디모넵에게 받은 것은 은혜일까. 아닌데, 조금 다른데.
테리만이 알 수 있는 마음이 있었다. 은혜갚기 위로 그 메시지가 새겨지듯 테리의 잇자국이 선명히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