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달리아 라지엘 씨는 늘 전설의 포켓몬의 존재에 관해 부정적인 의사를 표하곤 하셨습니다. 만약 전설의 포켓몬이 정말로 존재한다면 그 힘은 ‘전설’이란 칭호에 미치지 못할 그저 포켓몬의 범주에 포함되는 것이며 여러 전설과 신화 속의 초월적인 사건들은 세월을 따라 부풀려진 것일 가능성이 크다고 보았습니다.
혹은 그 시대에서 발견된 엄청난 에너지원이 한 순간에 기적 같은 힘을 보인 것이라고요. 이를 테면 호연지방에 과거 운석이 떨어질 뻔했던 사건처럼. 어머니는 깨어진 세계를 증명하는 일에도 관심을 보이셨는데 이는 기라티나의 존재를 믿거나 깨어진 세계가 저승이라는 가설이 아니라 그 세계와 블랙홀의 연관성을 찾으려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작일, 어머니의 연구를 전면 부정할 일이 생기고 말았습니다. 전설의 포켓몬이 실재함을 목도한 것입니다. 비단 저 한 사람만이 아니라 다수의 목격담을 확보하였음은 물론이고 그 초월적인 능력 또한 검증한 바입니다.
정의 : 프라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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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로는 제법 흥분한 듯 그 초월적 존재에 대한 설명과 프라네타가 들려준 라이지방 창조의 진실, 하늘의 뿔의 역할은 무엇인지에 대한 가설 등이 한 페이지, 두 페이지, 세 페이지, 네 페이지, 그 뒤로도 손가락 한 마디 정도의 두툼한 두께로 빼곡하게 이어지고 또 이어졌다.
그 사이 디모넵은 몇 번이나 펜을 바꾸고 페이지가 넘어갈 때마다 옆에서 테리가 한 대씩 때려주는 바람에 일어나 기지개도 펴고 스트레칭도 하고 그러다 다시 앗, 이걸 빼먹었어! 하는 소리와 함께 북북 종이 위에 취소선을 그은 다음 다시 문장을 써나가길 반복했다. 날이 밝도록 꼬박.
분명 나야 박사님과 프라네타를 상대하면서 영혼까지 빨려 먹혀 꼼짝도 할 기운이 없다고 한 것 같은데 어디서 이런 힘이 또 솟아난 건지. 기억이 조금이라도 빛바래기 전에 더 많이, 빼곡히, 기억나는 걸 낱낱이 알곡까지 다 털어내고야 말 것이라는 집념은 이윽고 해가 창 안으로 눈부시게 스며들 때까지 이어졌다고 한다.
하얗게 불태운 디모넵은 그리고 거짓말처럼 기운을 잃어 체육관전 대비를 하지 못했다.
캐입적으로는 이 경이로운 발견에 대해 뭔가 하고 싶은 마음이 만만이었는데 뒷사람이 시체여서 못 했어요 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