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를 부여해? 누가? 들려오는 목소리에 박장대소를 하고 웃어준다. 피붙이라고 하는 게 뭐 그리 대단할까. 자기가 급할 땐 죽이든 버리든 얼마든지 할 수 있고, 때로는 차라리 남만도 못한 관계.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란 것이 어느 것은 안 그렇겠냐만은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부모자식이란 관계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걸 이해할 수 없었다.
할 수만 있다면 아무런 의미도 부여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지 않으면, 왜 버렸냐고 묻고 싶을 테니까. 혹시 나는 쓸모가 없었던 건지, 나를 바라지 않았던 건지. 나도 당신들만 있었더라면──, 당신들만 날 당당하게 받아들여주었더라면 사일란이든 뭐든 기꺼이 받아들였을 텐데. 당신들만 내 편이 되어주었다면 아무것도 두려울 게 없었을 텐데.
어째서? 왜? 이유를 생각하기 시작하면 나쁜 상상만 들어 비참해지고 만다. 그러니까 차라리 부모자식 따위 대단한 관계가 아니라고 비웃어주거나 나는 그런 걸 바라지 않는다고 말하는 쪽이 스스로를 지키기에 훨씬 좋았다.
그랬는데, ……당신은 몇 번이나 저에게 손을 내밀어줄 생각인 걸까.
“무어든 마뜩찮으면 자네도 딸 하든가.”
“나, 난 아빠 같은 거 필요 없어!”
“글쎄, 하나 더 늘어난다고 크게 다를 것 같지 않은데.”
생각지도 못한 제안에 그 자리에선 허둥지둥 도망치고 말았다. 『사랑하는 어머니께로 시작하면 돼?』, 『네 아버지』, 농담으로는 아무렇지도 않게 지껄이던 게 뒤늦게 후폭풍처럼 여파가 찾아왔다. 함부로 약점을 드러내지 말라고 가르친 건 당신인데 그런 당신 앞에서 몇 번이나 무방비한 모습을 보인 걸까.
이런 저를 뭣 하러 거두어주려는 건지 제게 그럴 가치가 있는 건지조차도 자신할 수가 없어, 혼란스럽기만 했다. 내가 《그런 관계》를 쟁취할 수 있을 거라고? 과연 정말? 당신 말처럼 여전히 사람을 믿지 못하고 두려워하며 도망치기 급급할 뿐인 내가, ?
“당신 보호 같은 거 안 받아도 되니까!!”
놀리고 있다는 기색이 역력한 그 눈빛에 크게 외친다. 이어서는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라 주춤주춤 연구실의 벽에 등을 붙였다. 잔뜩 당황하고 궁지에 몰렸단 표정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났지만 숨길 줄 모른 채 담요자락을 움켜쥐고 으그극 이를 간다. 보호자가 아니면 뭐지. 식객이라고 하면 되나.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그래, 서브젝트도 상관없던 기분이 든다.
“따, 따라가긴 할 거지만!”
본인이 직접 한 명쯤 상관없다고 거두어주겠다고 했으니 받아들이지 않을 이유는 없다. 제 발작의 치료는 저도 바라마지 않는 것이었고 당신에게는 호위로서 성장하겠다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관계에 새로운 의미를 붙인다면 하면 자신은……,
이쪽을 향해오는 싸늘하고 시퍼런 눈동자와 시선이 마주치자 꼬리를 밟힌 쥐처럼 펄쩍 뛰어오르며 끝내 앞뒤 가리지 않고 소리쳐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