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학 수업을 마치니 몸이 아닌 마음이 노곤노곤해 집니다. 기숙사로 돌아와 씻자마자 바로 누워버렸습니다. 내일은.. 무슨 수업이 있더라… ]
메모지 한 장과 지도 한 장, 어라. 우리 이런 건물에서 지내고 있었구나. 매번 안쪽을 정신없이 돌아다니기만 했지 평면도는 처음이네. 신기한 듯 지도를 이리저리 비추다가 아, 하고 동그랗게 만 주먹으로 손바닥을 두드린다.
“그러니까 이걸 들고 기숙사로 향하라는 거지? 그야, 기숙사는 맨날 가던 곳이긴 한데~…….”
무슨 꿍꿍이인 걸까. 이 과제를 끝내면 펜듈럼을 선물해준다는 것 같긴 한데, 이번 과제의 목적은 복합 활용이었지? 과연 내가 할 수는 있는 건지. 안경 너머로 늘 보이지 않는 그의 눈동자를 상상하며 의구심을 안고 일단은 강의실에서 발을 내디뎌본다.
(중략)
“LIBERTAS?”
조합한 알파벳을 가지고 기숙사로 돌아가 상자에 입력해보기로 한다.
지친 몸을 이끌고 기숙사로 돌아가 얌전히 놓인 상자에 알파벳을 입력한다. 무슨 뜻일까. 낯선 단어의 뜻을 곰곰이 곱씹으며 상자를 지켜보자 달칵, 가벼운 소리와 함께 언제 닫혀 있었냐는 듯 상자가 열렸다. 그와 동시에 안쪽에서 빛무리가 쏟아진다. 반사적으로 눈살을 찌푸렸지만 눈을 아프게 할 정도의 빛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오히려, 제게는 너무나 친숙한 새까맣게 반짝이는 밤하늘. 텅 빈 복도를 가득 채우는 밤하늘에 마치 제 몸이 하늘 위에 떠 있는 듯한 착각을 느껴 두리번거리다 허공에 글자가 피어오르는 걸 발견했다.
『Pharetram Veritas, sed arcum Libertas donat』
무슨 뜻이지? 어리둥절해 하기도 잠시, 낯익은, 잠시 흠칫 놀라 등 뒤를 살펴볼 정도로 익숙해져버린 나지막한 목소리가 울렸다.
“자유는 진리의 화살이 올바른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활을 돕는다.”
어디서 들려오는 걸까, 두리번거리는 사이에도 목소리는 계속 이어졌다.
-이 과제를 진행한 시간과, 과정, 그런 것들에 의미를 부여하는 건 당신들 몫이겠죠? 문양이 사라진 펜듈럼을 제출해 보이면 과제 완료예요. 이후엔 뭐, …반납할 필요 없으니, 가지든가요.
가지든가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내뱉는 목소리가 너무나 그다워서 파핫 웃음을 터트리고는 확실히 꼬리가 깨끗해진 펜듈럼을 챙긴다.
갖고 싶었던 건 맞아. 유용할 것 같았거든. 당신이 말한 것처럼 이건 추적에도 사용할 수 있고, 나는 쓸 줄 모르지만 마력을 이용해서 방향을 찾거나 여러모로 활용하기 좋잖아? 그래서 달라고 말했더니 이런 과제가 나올 줄이야.
어젯밤부터 하루 종일 아카데미 전체를 쉴 새 없이 뛰어다니고 익숙지도 않은 마력을 사용했다. 손바닥을 펴자 마력석을 움켜쥐고 있던 자국이 선명히 남아 붉어져 있었다. 몇 개나 썼더라? 사용한 마력석의 청구는 그에게 해야지. 멋대로 빚을 달아놓고는 다시 한 번, 아직 남은 마력석 하나를 손에 쥐고 몇 번이고 느꼈던 그 감각을 되새겨본다.
───역시, 잘 모르겠지만 말야. 내게 통하지 않는 마력이란, 꼭 내 몸이 자연에서 빚어진 게 아니란 증거만 같아 몇 번이고 날 부정하던 그 사람들이나, 내 목의 낙인이나, 그런 것들을 떠올리게 하니까. 그러니까 마법은 좋아하지 않았어. 지금도 좋아하지 않아. 하지만, ……히죽, 피곤한 상태로 입 꼬리를 당겨 웃는다.
“역시 하면 되는 애지?”
아직 반짝반짝하게 마법이 남은 기숙사의 복도 위, 거기 혼자 우뚝 서서는 제법 뿌듯한 표정을 하고 가슴을 내민다. 지금 제가 보고 있는 이 풍경은 자신이 만들어낸 것이다. 제가 증명한 것이다. 그러니까, 부정당해도 괜찮아. 나는 이렇게 몇 번이고, 나를 증명해 보일 거야.
“디셈버가 이런 의미를 부여하라고 과제를 냈을 것 같진 않은데. 뭐, 해석은 자유니까.”
덕분에 문 닫을지도 모르는 아카데미도 기억에 단단히 새긴 것 같고. 찌뿌듯한 몸을 두 팔을 위로 올린 채 쭉쭉 당기고 상자는 잘 닫아두었다. 뒤에 올 다른 친구들은 여기서 무엇을 볼까. 어떤 것이든, 그들이 볼 풍경 또한 그들에게 의미를 부여하겠지.
“자유는 진리의 화살이 올바른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활을 돕는다…….”
그가 하고 싶었던 말은 무엇일까. 그건 또 다른 숙제로 남은 것만 같아 펜듈럼과 함께 간직하기로 하고,
“진짜 이상한 사람이야.”
그래도 고마워. 듣는 사람 없는 복도 위에서 중얼거리고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과제를 제출하러 향했다. 아~아, 배고프다.
-----------------
디셈버 펜듈럼 갖고 싶어서 날뛰었던 기록. 중략된 부분은 개인 디엠으로 진행하던 조사. 디셈버님 충성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