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로 돌아가지 못해도 괜찮아요.”
“저도 이제 디모처럼 새로운 자리가 생긴 거니까.”
그렇게 말하는 니켈은 무척 어른 같으면서 동시에 천진하게도 보였습니다.
현실을 받아들일 줄 아는 어른의 얼굴과 그 속에서 꿈을 찾은 어린아이 같은 얼굴이 동시에 있었습니다.
그런 니켈의 얼굴을 보고 저는 안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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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과 닉이 함께 있는 풍경은 재미나다. 겉보기부터 다른 두 사람은 함께 있을 때 서로 지닌 온도도 참 달라서 사랑이라는 건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끌려간다고 하는 설명을 두 사람을 보며 알 것 같았다.
딤이 이런 말을 하면 닉은 “그렇지 않아요, 디모. 우리 이래 봬도 공통점이 얼마나 많은데요.” 하고 어떻게든 공통점을 찾고 싶어 할 것이고 폴은 “그야 다르지. 살아온 환경부터, 또 성격도…….” 라고 선선히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안 봐도 안다.
이럴 때의 닉은 조금 어린애처럼 보였다.
나이는 닉 쪽이 연상. 사회경험도 닉이 더 풍부하다. 폴은 어렸고─딤보다는 많지만─, 사회경험도 적었고 누가 더 서투냐고 묻는다면 여러 가지로, 무수히 많은 것들이 폴에게 더 낯설고 서툴다.
그럼에도 때론 닉이 훨씬 숫되고 어리게 느껴졌다. 사유는 다양했는데 위와 같은 모습은 배운 대로 실천하는 어린아이의 고집이라 할 수 있었다. 말하자면 우리는 사회의 공동체라는 동질감과 집단성을 갖추어 그 안에서 안정을 찾는 면이다.
한편 다른 의미로 닉이 더 어린아이처럼 보일 때가 있는데 바로 지금 같은 경우다. 감정이 가장 순수하고 무구하게 빛날 때.
“지난번에 왔을 땐 이런 곳 있는 줄도 몰랐는데. 좋은 숲이네요.”
“그쵸. 테리랑 다른 친구들이랑 꼬박꼬박 자주 놀러 와요. 센트도 맘에 들어?”
평균보다 큰 토대부기가 모오오, 하고 기분 좋은 울음소리를 낸다. 그 곁에서 한참 작은 체리꼬는 달콤한 향기를 내뿜었다. 숲에서 함부로 이런 향기를 풍겼다간 배고픈 야생 포켓몬들이 꼬이기 마련이지만 누구든 이 파티를 본다면 오다가도 돌아갈 것이다.
그야 챔피언의 라이벌이 바로 여기 있는데 누가 덤비겠어. 딤과 같은 생각을 했는지 테리는 센트의 머리에 앉아 보란 듯이 짙은 향을 풍겼다.
“테리, 도발하지는 말고~”
“도발하는 거였어요??”
“아하하하.”
목새마을은 라이지방의 여러 마을 중 중간 정도의 크기지만 독특하게도 마을을 반으로 나누듯 단층구조로 되어 크지 않다는 인상이다.
위로는 여름이 되어도 잘 녹지 않는 눈과 침엽수, 그 사이에 종단열차의 마지막 역사가 아래로는 목새체육관을 중심으로 한 마을로 이루어져 있는데 아무래도 위쪽은 사람이 살기에는 애매하다는 듯 했다.
“대신에 자연이 잘 보존되어 있어서 이렇게 센트랑 산책 나오기도 좋지만요.”
새로운 보금자리 중 딤은 특히 숲이 마음에 들었다. 고향인 꽃향기마을은 사시사철 봄이어서 맛볼 수 없었던 겨울의 냄새가 이곳엔 듬뿍 묻어 있었다.
끝이 뾰족뾰족하고 가느다란 침엽수가 빽빽하게 들어차 있고 바닥은 거무튀튀한 흙과 그 위로 마른 잎들이 깔려 있다. 잎은 햇빛을 거의 보지 못해 짧고 말랐지만 그 아래 깔린 흙은 종종 내리는 눈과 한낮이 되도록 증발하지 못한 이슬 덕분에 축축해서 독특한 냄새를 풍겼다.
걸을 때마다 꾹꾹 찍히는 발자국과 보들보들한 흙 밑에서 느껴지는 추위를 이겨내는 생명력, 드물게도 짙은 녹색의 잎들을 뚫고 해가 비쳐들면 쌀쌀한 공기가 포근해져서 그 숨을 한껏 들이마시는 것만으로 자연을 삼키는 것 같았다.
딤은 이 숲이 좋았다. 그래서 센트가 숲을 마음에 들어 할 때 더 기뻐졌다. 센트가 쭉 여기 머물러도 좋겠지만~… 그건 안 되겠지.
속내를 냉큼 숨기고 토대부기의 목을 끌어안았다.
“다행이야, 센트. 니켈이랑 헤어지지 않게 되어서, 니켈이랑 마음껏 자연 속에서 살 수 있게 되어서.”
모오오. 하고 토대부기도 기쁘게 화답해주었다. 위로 솟은 뿔과 단단한 머리 부근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딤은 옆을 걷는 닉을 곁눈질했다.
그는 후련해 보였다. 걱정이나 미련은 보이지 않았다. 세 달 간의 캠프 생활로 자신감이 생긴 걸까. 더군다나 홀로 떠나는 길도 아닌고. 불안보다는 설렘이, 우려보다는 기대가 서려 있었다.
몹시 천진한 표정이었다.
딤은, 닉이 이런 표정을 지을 때마다 따라 웃고 싶어졌다. 그와 저 사이에 나이 차는 아무래도 상관없이 또래처럼 친구처럼, 같은 설렘을 공유하는 사람으로서 무언가 통하는 기분을 느꼈다.
닉은 의지할 수 있는 어른이었고 제 아픔을, 외로움을 알아봐주는 경험이 풍부한 사람이었는데 그런 닉이 꼭 저와 같은 점 위에 섰다고 느껴질 때 유쾌해지고 말았다.
“내일이면 출발하죠?”
“그래야겠죠.”
“서운하다~”
디모가 그렇게 말해주니 좋네요. 저도 서운해요. 들려온 답은 진심이었지만 닉은 그래도 하루 더 머문단 말은 하지 않았다.
딤도 두 번 붙잡지 않았다. 지금의 닉은 꿈을 이루고 있는 중이었다. 그래서 저렇게 반짝반짝할 수 있었다. 그를 위한다면 붙잡기보다는──,
“그럼 오늘은 여기서 다 같이 캠프 해버릴까요? 센트, 같이 잘까?”
“아아……, 좀 봐주세요, 디모. 저는 내일부터 또 노숙인데.”
추욱 고개를 떨구는 그의 옆에서 크게 웃으며 흙과 잎 위로 발자국을 남겼다. 그 옆으로 토대부기의 발자국이 나란히 깊게 찍혔다. 집까지 이어지는 길고 긴 자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