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랑은 여전히 매일매일 전화하고 있어요. 아침에도 하고 밤에도 하고. 어떤 날은 짧게 끝나기도 하고 어떤 날은 30분씩 1시간씩 하기도 하는데 그 덕분일까요. 바로 옆에 있는 게 아닌데도 아빠랑 변함없이 함께 있는 기분이에요. 우리 거리가 아주 가깝다고요.
하지만 아빠에게는 그렇지도 않았나 봐요.
[사실은 말이다. 나는 네가 곧 돌아올 줄 알았어.]
어느 밤, 아빠가 문득 말을 꺼냈어요.
[여행이 힘들거나 집에 가고 싶거나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니라 단순히 말이다. 여기가 네 집이니까. 때가 되면 돌아올 줄 알았단다.]
그런데 그것도 내 욕심이었던 모양이야. 하고 아빠는 조금 힘없이 웃었어요.
[디모넵. 그곳이 이제 네 새 집이니?]
──이곳, 꽃향기마을의 집은 예전 집이 되어버렸어? 묻는 아빠의 물음에 저는 갑자기 아무 말도 할 수 없게 되었어요.
어느새 딱 10월이네요. 두 달 뒤면 제가 집을 떠난지가 1년이고, 트레이너 캠프가 끝나고 리브와 함께 살게 된 지도 반 년이 넘었어요. 리브랑 같이 사는 건요. 굉장히 평범한 일이에요. 좋다거나 싫다거나 대단하다거나 별 거 아니라거나, 그런 감상 같은 건 하나도 없이 아주아주 평범하고 또 지극히 일상적인.
그걸 신기하게 받아들인 적이 없었는데 아빠의 말을 듣고 처음으로 되짚어보게 됐어요.
저는 이곳을 집으로 여기고 있어요. 두 말 할 것 없이요. 그리고 리브는.
“리브, 오늘 저녁 메뉴는 뭐가 좋아?”
“어……네가 요리하는 것만 빼고 뭐든?”
“아하하, 농담도 참~”
“……이게 농담처럼 들렸냐.”
말은 저렇게 해도 일단 주면 다 먹는걸요. 아침을 먹고 나면 아직도 매일 조금씩 다듬고 손보는 중인 정원 가꾸기를 하다가, 날씨를 보고 물을 주거나 주지 않거나 해요. 물을 안 줘도 되는 날에는 정원에서 조금 벗어난 터에 가서 물을 뿌리는데요. 그러면 포켓몬들이 좋아하거든요.
돌아와서는 진흙을 깨끗이 닦아내고 점심을 먹고 공부를 해요. 여러 분들의 도움을 얻어서 저도 임시로 연구자격이 생겼거든요. 덕분에 예전에는 구경도 못하던 연구 자료나 논문을 볼 수 있게 되어서, 이게 또 얼마나 방대한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자료 정리를 하다가 테리나 테오가 데리러 오면 저녁 장을 보러 나가요. 가끔 리브랑 시간이 맞으면 같이 가고 아니면 혼자 가고.
이제 목새마을 상점가는 제 손바닥 위나 다름없어요. 한 눈에 봐도 모든 정보가 다 파악되거든요. 그야말로 천리안이죠, 후후!
“오늘은 물 좋은 생선이 들어왔대. 가자미 튀김을 해볼까?”
제 말에 테리가 옆에서 한숨을 폭 내쉬는데 그 모습이 아무리 봐도 ‘재료를 사지 말고 완제품을 사는 방법도 있어요, 디모넵.’ 하는 것 같지 뭐예요.
“괜찮아. 나 튀김 요리 하는 거 좋아하는걸~”
‘좋아하는 문제가 아니에요.’ 라는 테리의 마음의 소리는 슥 무시했어요.
저녁을 먹고 뒷정리를 하고 리브랑 같이 TV를 보고 놀다가 시간이 늦으면 잘 준비를 해요. 바로 자진 않고 게임을 하거나 책을 보거나 늦게 잘 때도 있지만요.
무엇을 숨기랴! 리브나 저나 트레이너 캠프 당시에 새벽까지 깨어 있던 버릇이 낫지 않아서 수면 패턴을 되돌리는 데 엄청 고생했거든요. 덕분에 목새 체육관은 한 때 [오전에는 접수받지 않습니다.] 같은 팻말이 걸려 있기도 했어요. 요즘은 둘 다 많이 고쳤지만요~
그렇게 눈 깜짝할 새 하루가 저물어서, 익숙하게 리브가 누운 옆자리에 가서 눕다가 문득 아빠와 나눈 대화가 또 떠올랐어요. 오늘 통화할 땐 어제 이야기는 없던 것처럼 아무렇지 않게 지나갔지만…….
“이상한 걸까. 이상하지 않은 걸까?”
“또 뭐가?”
“리브는 나랑 같이 사는 거 어때?”
“엑.”
뜬금없는 물음이었던 걸까요. 잠깐 당황하는 리브의 눈에서 드라마에서 종종 보던 “자기는 내 어디가 좋아?”란 물음을 받은 듯한 머뭇거림이 비쳤어요. 에, 잠깐만. 그렇게까지 생각할 문제야??
“그야, 당연히… 좋지.”
“마지못해 대답하지 않았어, 방금??”
“아, 아니거든?? 네가 갑자기 이상한 질문 하니까 그렇지!”
“이게 왜 이상한 질문이야. 아주 별 거 아닌 건데!”
그럼 너는 어떤데! 하고 날아온 반격에 저는 당당히 답해줬어요.
“잘 모르겠어!”
“하?”
어제부터 내내 생각했는데 말이죠. 좋아요, 물론. 좋은지 싫은지를 물으면 당연히 좋으니까 같이 살고 있는걸요. 하지만 좋은 걸 넘어서서 뭐라고 해야 할까.
무척 편안한 거예요. 이 생활에 아무 의문도 갖지 않을 만큼.
그러면서 떠오른 건 막 이사하던 초창기의 리브의 이야기였어요. 리브는요. 일찍이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칼로스 지방의 박사님이랑 같이 살면서 오랫동안 그곳을 자기 집이라고 여기기 어려웠대요. 박사님은 잘 대해주셨고 언니와 동생도 함께였지만 얹혀사는 기분이라 그랬던 걸까요. 그리고 가족이라고 반드시 서로 다 알거나 다 이해하는 것도 아니잖아요. 이 부분에서 전 아주아주 고개를 끄덕였어요.
그래서 목새마을에 집을 지을 때 처음으로 내 집이 생긴 기분이라고 넌지시 이야기 한 적이 있거든요. 그 말이 왜 떠올랐냐고 하면, 그러니까 말이죠.
“가족이라는 말의 ‘가’는 집을 가리킨대. 한 지붕 아래 산다고. 식구라는 말은 같이 밥 먹는 걸 가리키고 말야.”
한 식구. 한 가족. 우리 집. 그런 여러 가지 표현들을 돌이켜보면 지금의 우리 형태는.
“우리는 한 지붕 아래 살고 같이 밥을 먹잖아. 이런 걸 가리켜서 가족이라고 해도 되는 게 아닐까?”
동거인이라거나 그런 서먹한 표현 말고서.
아빠가 어제 한 말에는 은연 중에 그런 의미가 담겨 있었어요. [그래도 네가 돌아올 가족은, 네 집은 여기가 아니냐.] 그런데요. 저는 꽃향기마을과 아빠를 사랑하는 만큼 목새마을과 이 집을, 리브와 함께하는 생활을 사랑하게 되어가는 것 같아요.
반드시 피가 섞여도 가족이 될 수 없기도 한 것처럼, 꼭 피가 섞이지 않아도 얼마든지 가족이 될 수 있잖아요. 집은 꼭 한 곳에만 있어야 하는 게 아니잖아요.
“이렇게 말해도 리브를 언니라거나~ 형제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만. 언니라거나 동생이라거나 아빠라거나 자식이라거나, 그런 이름표를 붙이지 않더라도 우리는 가족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사람에게는 누구나 각자의 거리감이라는 게 있다고 해요. 이게 정말 백 명이 있으면 백 명이 다 달라서, 누구는 한 겹만 있기도 하고 누구는 겹겹이 있기도 하고 누구는 100m쯤 넓게 쓰기도 하고 누구는 겨우 1m 공간을 쓰기도 하고, 그렇지만 결국 모두에게 가장 안쪽 선이라는 게 있는데.
저는 이렇게 리브랑 같이 누워서 같이 이불을 덮으면서 우리의 거리감이 아주아주 가깝다는 걸 실감할 때 깨닫고 말아요. 나는 이 자리가 좋다고요.
언젠가 시간이 지나고 나면 우리의 보금자리가 서로 달라질 수도 있고 새로운 가족이 생길 수도 있겠죠. 늘 같을 수는 없을 거예요. 그렇지만 아빠와 떨어진 지금도 여전히 아빠는 제 아빠고 가족인 것처럼, 리브와도 그럴 거라 믿어요. 아무래도 저는 정말 리브를 좋아하는 모양이에요.
그렇지만 아빠를 서운하게 하는 건 저도 속상하니까, 다음번에는 아빠를 이 집에 초대해보고 싶어요. 그런 이야기를 리브에게 전달하면서 저는 이불을 폭 뒤집어썼어요. 창문 너머로는 달과 별이 반짝거리고 바로 옆에는 이제 없으면 허전한 온기가 있었어요. 이 순간이 소중해서 저는 역시, 이곳이 제 둥지라고 실감하고 말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