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를 끊은 디모넵은 화면이 꺼진 휴대폰을 들고 갸웃거렸다.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는 꼭 3일 낮 땡볕에 노출되어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해 시들시들하게 익은 풀 같았다. 그러고 보니 유우는 더위에 약했던가. 그의 체온은 평균보다 살짝 낮아서, 만지면 이쪽이 시원해지곤 했는데 정작 그 본인은 더위에 약하다니 아이러니한 일이다.
‘파충류….’
동물에 비유하자면 까칠한 고양이, 아니면 예민한 토끼라고 몰래 생각해 왔었는데 이렇게 보니 유우에게서 자기 체온을 조절하지 못하는 게 파충류가 떠오르기도 했다. 아닌 게 아니라 오늘도 디모넵은 텟샤의 체온을 꼼꼼하게 조절해주고 나온 참이다. 유우도 지금쯤 흐물흐물해진 걸까.
―상상하고 몰래 웃었다.
“시원한 마실 거라도 사갈까, 테페?”
작은 가방에 동전지갑을 넣고 신발을 고쳐 신었다. 외출에 따라 나설 리피아, 테페가 피- 하고 귀엽게 답을 해주었다. 유우의 이브이는 아직 진화 전이었다. 그야 원체 포켓몬에겐 느긋하니까 진화도 언젠가 때가 되면 알아서~ 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지만 그 이브이도 같은 생각인진 알 수 없었다.
“널 보고 마음이 조급해 진 건 아닐까 했어.”
꽤 의욕 넘치는 이브이 같았지. 게다가 캠프 사람들 중에 님피아와 블래키, 이제 리피아까지 생겼으니 다른 이브이를 기대해보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아, 이럴 게 아니라 서둘러야지.”
단골 수퍼마켓에서 라무네를 2병, 좋아하는 맛의 곤약젤리를 2봉지 사서 그의 집까지 향했다.
걸어가는 길목으로 해바라기 밭이 높게 펼쳐져 있었다. 유우랑 같이 구경 가도 좋을 텐데. 이 햇볕에 나오라고 하기엔 무리일까. 그래도 말 정도는 꺼내 봐도 되겠지. 이러니 저러니 해도 그는 대개 디모넵의 부탁을 들어주었다.
여름 축제에 같이 가기로 한 것도.
“유우도 즐거워 해주면 좋겠어요.”
이 날을 위해 남자 유카타 입는 법도 확실히 공부해두었으니까. 같이 유카타를 입고 캄캄해진 여름 밤, 축제의 등불이 별보다 환하게 빛나는 거리를 걸으며 야키소바를 먹고 사격을 하고 금붕어 낚시도 해보고 빙수를 사먹고 마지막엔 불꽃놀이까지 즐기다가 돌아오는, 혼자 머릿속으로 축제 지도 한 편을 완성하고 디모넵은 초인종을 눌렀다.
딩-동, 하는 경쾌한 소리의 뒤를 이어 네…에-,평소보다 톤 다운된 목소리가 들렸다. 벌써 식지 않았지? 라무네의 온도를 확인한 디모넵은 현관문이 열림과 동시에 그의 뺨에 차가운 병을 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