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에피. 잘 지내고 있을까? 기껏 보낸 편지가 돌아오지 않았으면 좋겠네. 곧 떠날 거란 말을 듣긴 했는데, 부디 당신이 아직 로제의 집에 머물고 있으면 좋겠어. 이번엔 모처럼 생일 선물도 준비했으니까. 기껏 준비한 거니까 에피가 편지보다 선물부터 먼저 뜯지 않았으면 좋겠다. 제법 고민했다고? 친구의 생일 선물이라거나, 처음 준비해보니까.
짠~ 선물은 과자야. 직접 구운 거니까 로제랑 같이 먹어줘♪ 번개 모양이 꽤 잘 나왔다고 생각하는데 어때? 요즘 이것저것 요리에 취미가 붙었거든. 어쩌면 그만큼 여유가 생겼단 뜻인지도 몰라. 예전에는, 배만 채우면 그만이라고 생각했지만 요즘은 맛도 제법 고르게 되었고.
저번에는 베일까지 놀러와 줘서 고마워. 에피랑 같이 베일 관광해서 즐거웠어. 에르덴은 이런 데 어울려주지 않으니까. 음…… 나도 에르덴이랑 베일 관광을 한다고 하면 미묘할 것 같네. 레타랑 셋이서 제전을 보러 갔다 온 것도 즐거웠고. 에피랑 같이 있으면 즐겁네~ 응, ……즐거워.
──그러니까, 역시 얼굴을 보고 말하는 편이 좋았을 것 같지만 그 땐 말 할 타이밍을 잡지 못해서, 편지로라도 전하려고 해. 네시가 잡혀가고 에피가 산으로 도망쳐버렸을 때의 일이야.
난 그 때 당신을 따라갈 생각을 하지 않았어. 따라가 봤자 아무런 말도 못할 게 뻔했고 무슨 말을 전해야 좋을지도 몰랐고, 아니 어쩌면 당신을 상처 입히는 말만 해버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래서 무시하려 했어. 하지만 루가 먼저 찾으러 가겠다고 말을 꺼내주었고 덕분에 나도 못 이기는 척 따라갈 수 있었어. 간 뒤에도 역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어. 당신이 혼자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짐작할 수 없었어. 그 때 새삼스럽게 내가 얼마나 부족한 인간인지 깨달았어. 누군가를 소중히 대하거나 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도.
에피는 그 뒤에 나에게 와서 고맙다거나 미안하다거나 그런 인사를 전했지만 난 그런 말을 들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야. 이런 나와 친구로 있어도 정말 괜찮은 걸까? 하는 생각도 좀 해버렸지만, ……에피가 친구라고 해주었으니까. 그런 생각은 하지 않을게.
우리, 실베니아로 가던 길에 만났던 거 기억해? 그 때 말이지, 난 솔직히 아카데미 같은 곳 왜 가는 걸까 이유도 모르고 무작정 움직이고 있었어. 그 땐 뭐든 목적을 갖고 움직이지 않으면, 한 번이라도 멈춰버리면 다시는 움직이지 못할 것 같았거든. 사실 실베니아가 아니라 어디든 좋았던 걸지도 몰라. 걷고 걷고 또 걷고, 그렇게 마냥 걷고만 싶었어.
그러다가 에피랑 다시 만난 거야. 이제 날 기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지. 설마 몇 년도 전에 잠깐 만났던 사람을 기억할 줄은 몰랐어. 그 때 에피가 날 불러줘서, ……덕분에 실베니아까지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어.
내게 에피는 그러니까, 고마운 사람이야. 또 좋아하는 친구야. 그러니까…… 잃지 않도록, 다음번에는 좀 더 소중한 것을 소중히 할 수 있도록 노력할 거야. 어라, 어쩐지 뭔가 이상한 얘길 늘어놓은 것 같네. 이런 말 쓰려던 게 아니었는데.
늘 고마워. 그리고 다시 한 번 생일 축하해.
당신의 친구 에리가」
아, 맞아. 엘피시스의 생일이야. 퍼뜩 달력을 보며 날짜를 떠올린 건 지난번, 로제와 엘피시스가 함께 베일에 놀러왔을 때 로제로부터 스쳐지나가듯 들은 이야기 덕분이었다. 친구의 생일을 축하해줘야지. 처음엔 단순히 그 생각만으로 들떠 쿠키를 굽네 어쩌네 부산을 떨었지만 막상 편지를 쓰고자 펜을 들자 나오는 건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 제멋대로 손이 움직여 완성된 편지를 본 에슬리는 멋쩍은 표정으로 이 편지를 보내도 괜찮을까 고민에 잠겼다. 편지는 됐으니까 카드와 쿠키만 보낼까. 거기까지 마음이 기울었지만, ──아니지. 역시 보내는 게 좋겠어.
마음은 전할 수 있을 때 전해두어야 하니까. 다시금 결심을 잡은 에슬리는 편지의 내용을 보지 않으려고 애쓰고 눈을 꼭 감은 채 편지를 봉투에 집어넣었다. 이제 남은 건 쿠키의 보존 마법이 유효한 사이 되도록 빨리 선물이 그녀에게 도착하는 것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