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켓몬스터 : 디 이노센트 제로

51) 02.17. 태양을 기다리며

천가유 2022. 4. 30. 00:59

For. 솔라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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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트레이너 캠프에는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출신도 제각각, 연령도 제각각, 각자가 걸어온 길이 발자취로 남아 저마다의 개성을 뽐냈다. 어느 지방에는 발자국 박사라는 사람이 있어 남겨진 발자국만 보고 많은 것을 읽어낼 수 있다지? 저에게도 같은 능력이 생기면 꼭 캠프 사람들에게 한 번씩 발도장을 찍어달라고 부탁하고 싶을 만큼, 캠프에 모인 사람들은 저마다의 이야기로 빛나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유난히 너는 빛났다. 모두가 자신의 개성을 갖고 반짝였지만 그와는 조금 다르게, 문자 그대로의 의미로 찬란히 빛나고 있었다. 솔라리스Solaris. 태양을 가리키는 이름다운 휘광이었다.

사실을 말하자면 처음에는 그런 네가 곤혹스러웠다. 다른 이유는 아니다. 단지 네가 만들어낼 빛이, 섬광이, 장내를 가득 메우도록 반짝이는 샛노란 스파크가 보통 사람들보다 더 자극적이어서. 너를 견디지 못할까 걱정이었다. 그러나 당초의 걱정과 달리 그것은 우리 사이에 문제나 트러블을 발생시키지 않았다. 지금에 와서 말하자면 서로 호흡이 잘 맞았던 건 아닐까. 그런, 우쭐대는 생각도 가져본다.

처음 가졌던 우려가 잦아드는 동안 캠프는 밤낮 없이 시끌벅적했다. 언제나 어느 시간대나 누군가가 캠프 한가운데 서서 적막함을 달래주었다. 시간 가는 줄 모르는 나날 속에서 유독 너는 도드라지게 아침을 여는 사람이었다. 어떤 힘들고 고된 일이 있든 간에 태양은 반드시 떠오르고 만다. 그렇다면 찾아올 내일을 기다릴 힘은 어디에서 날까? 그 답이 너에게 있는 것만 같았다.

대화를 하면 할수록 네게서 새로운 면을 많이 보았다. 예를 들면 이렇다. 대개 그 우렁찬 목소리와 에너지에 집중하여 간과하기 쉽지만 너는 마냥 낙관하기보다 냉정하게 선을 가늠하는 사람이었다. 시간도 힘도 한정되어 있다. 우리가 모든 것을 다 해낼 수는 없다. 그렇기에, 한정된 영역 안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야만 한다. 닥쳐온 상황 속에서 당장에 무엇을 할 수 있을지 판단하는 네 눈빛은 몹시 날카로웠고 긴장감이 흘렀다. 그 지혜를 얻기까지 얼마나 많은 경험을 쌓아왔을까. 본 적 없는 네 옷 아래 흉을 생각했다.

만약 누군가가 싸운다면 난 싸움을 중재할 수 있는 위치에 있고 싶다네. 하지만 싸움에 끼어들기에 그에 맞먹는 힘이 필요하지.

그리고 네가 거쳐 온 길을 떠올린다. 궁금한 게 많았다. 특별히 전기 타입만 고집하는 이유가 있나요? 머큐리와는 어떻게 만나게 되었어요? 처음 여행할 땐 어땠나요. 혼자 외롭고 쓸쓸하진 않았나요. ……원망한 적은 없나요? 돌아갈 곳이 없게 만든 이들을. 계속 혼자서만 힘낼 건가요? ──무섭진 않았어요? 그 순간에 끼어드는 일이. 아프진 않았어요? 치료를 받고 가면 좋았을 텐데. 어디로 가는지 말해주진 않나요? 따라가면 방해인가요? 궁금한 건 저뿐인 것만 같아서.

그대의 믿음은 내일의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네!

──그대의 믿음을 져버리고 싶지 않은 이유도 있다네.

의지되어지고 신뢰받는 자리. 거기서 삶의 보람을 찾으며. 정작 그 반대는 할 줄 모르던 서툴던 아이.

저에게는 지극히 당연한 참견과 걱정을 낯설게 받던 얼굴을 떠올렸다. 찰나의 순간, 한 명의 의젓한 레인저가 아직 덜 자란 아이로 보였다. 어째서 기대는 법 하나 배우지 못해 혼자 그 밤길 너머로 사라져야만 했던 걸까.

고작 며칠 전의 일이다. 그럼에도 풍경은 영영 잊지 못할 듯 아름답게 남았다. 돌담길 너머 따스한 들판. 한낮의 태양, 내리쬐던 볕 아래 평화롭기만 했지. 선선한 가을바람이 사이를 스치면 노란 리본이 살랑살랑 흔들렸다. 바람결에 묻어나는 싱그러운 들판의 내음. 이대로 저녁놀이 내릴 때까지 있어도 좋았다.

어쩌면 너무 편안한 감각이라 잠들면 영원히 못 일어날지도 모르겠다네.

그 땐 제가 깨워줄 테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설마 당신을 두고 혼자 갈까요.

모든 긴장의 벽이 허물어지고 나른하기만 하던 낮이었다. 영원하기만 바랐다.

기대는 순식간에 뒤집혔다. 어느덧 꼬박 밤이 깊었다. 태양을 잃은 밤이 막막하게 캄캄했다. 네가 사라진 자리에 서서 그림자조차 먹힌 검은 너머를 응시했다. 어둠이 무서운 적은 한 번도 없었으나 그 너머에 혼자 있을 너는 걱정되었다.

어서 아침이 밝기만을 바랐다. 태양과 함께 네가 아무렇지 않은 모습으로 돌아올 것만 같아서. 그렇게 아침을 기다렸다.


자랑스럽고 멋지지만 걱정도 많이 한 제 친구. 얘도 우리집에 끼고 왔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