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주차 리포트
여자는 리포트를 작성하고 있었다. 야심한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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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고스트 타입에 의문을 갖고 탐구하기로 마음먹고부터 에셸은 여러 책들을 살펴보고 자료를 모았다. 목새마을의 팔름연구소는 지질 전문이긴 해도 가벼운 교양 정도의 고스트 타입에 대한 책들은 있었는데 부족한 지식을 채워 넣기에는 이조차도 감지덕지하기만 해 머무는 동안 몇 번이나 팔름의 연구소를 들렀다.
특히 화석을 연구하는 곳인 만큼 팔름연구소는 고스트 타입에 대해서도 독특한 접근을 하고 있었다. 이 타입의 포켓몬들은 기원이 어떻게 되는지, 그에 관한 이야기다.
수많은 신화가 잠들어 있는 신오지방에 창조신이라 일컬어지는 포켓몬에 대한 전승도 전해졌다. 하나의 포켓몬이 세상을 창조한다는 게 정말 가능한 일일까? 신화는 태초에 무無에서 홀로 생겨난 알이 깨어나면서 현재의 세계를 이루는 생명들을 창조했다고 전한다. 그러나 ‘신화’라고 불리우는 것처럼 이는 정설이나 진실보다는 신에 관련된 설화의 일종이었다. 신화학을 연구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반대편에서는 진화생물학을 연구하는 사람도 있었다. 어느 쪽이 진실인지는 아직 알 수가 없다.
고스트 타입에 대한 서술은 유난히 구전적인 것이 많았다. 많은 연구가 이루어진 메이저한 타입들에 비해 고스트 타입은 주로 목격담과 소문,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것, 행동의 이유보다 겉으로 드러난 행위에 주목해 있었다. 아직 연구가 부족한 탓도 있을 테지만 고스트 타입 자체의 문제도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고스트 타입의 기원이란 아마도 다른 생물의 탄생과 다르게,
“──불가해한 상황에 대한 공포나 죄책감을 투영시키는 것에서부터 기인하였다고…….”
리포트를 작성하던 손이 잠시 멈춘다. 인간의 기원도 알지 못하면서 이런 공부를 하고 있는 스스로에게 조금 웃음이 났다. 직접 공부하기보다 차라리 비비안느가 말하는 것처럼 전문가를 찾아 투자하는 게 나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그것은 의미가 퇴색되어 버리는 것 같다고 느꼈다. 괜한 고집이었으나 다른 무엇도 아닌 자신의 포켓몬을 위한 일이었기에 에셸은 자신의 머리로 이해하고 눈으로 찾고 싶었다.
캠프를 시작하고부터 고스트 타입에 대한 공부를 꾸준히 해오던 중 박차를 가하게 된 건 최근이었다. 그전까지는 자기만족을 위한 공부였다면 지금은 사뭇 심각하고 또 다급했다. 바나링의 상태가 기묘해진 탓이다.
「질투, 원한의 감정에 끌린다.」
「사람의 마음에 있는 원한, 질투 따위의 감정을 먹고 성장하는 포켓몬.」
「누군가가 누군가를 원망하는 어둡고 슬픈 감정을 빨아들여 조금씩 강해진다.」
「원한, 시샘, 질투 같은 감정을 먹기 때문에 사람에게는 고마운 존재다.」
언제부턴가 그 아이는 불안과 공포를 먹고 있었다. 제 탓이다. 자책이 앞섰으나 사실이기도 했다. 기차에서 사건이 발생하기 전까지만 해도 바나링은 부정적인 감정이라곤 모르고 자랐다. 여행을 다니는 동안 질투나 원한 따위의 감정을 접한 적이 전무하다고는 할 수 없으나 가장 영향을 주는 트레이너가 흔들리지 않았기에 지나가는 행인의 감정까지 일일이 접하지 않았다.
바나링에게 행복한 감정만을 주고 싶었다. 그러지 못해 속상했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포켓몬의 행동은 도를 지나쳐갔다.
「바나링. 하지 마세요.」
「보오?」
냐미링이 트레이너를 걱정하여 재우려 하는 것과는 궤가 달랐다. 바나링은 잠들어 있던 본능이 일깨워진 것처럼 에셸의 감정을 탐했다. 금붕어처럼 입을 뻐끔거리며 툭 솟은 뿔을 울렸다. 더 줘. 내게 그 감정을 더 맛보게 해줘. 배고파, 에셸. 나 배고파. 그리고 천진난만한 아이처럼 오로지 제 욕欲을 위해 감정을 부추겼다.
어쩌면 두렵기도 했다. 그 아이를 막지 못해서. 에셸이 기분을 다스리지 못하게 약을 숨기려 했고 트레이너의 주위를 맴돌며 겹겹의 색이 쌓인 눈으로 뚜렷이 응시했다. 부정적인 감정을 부채질하며 기대한다. 행위에 악의는 없을지언정 그 행위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심지어 에셸이 그러지 못하게 막고부터는 바깥을 돌아다니기 시작해, 몇 번이나 위키링에 의해 붙잡혀 돌아왔다. 하지 말라고 막을수록 아이는 반발하듯 그것에 재미를 붙였다.
질투와 원한 대신 불안과 공포를 먹고 자라나는 아이를 보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막을 수 없는 종의 본능일까. 금지하려는 것부터 인간의 오만일까. 다크펫으로 진화하면 아이는 손이 생긴다. 그럼 더 자유로워지겠지. 막을 수 없겠지. 그 안에 깊이 스민 저주 에너지를 잘 다스릴 수 있을까? 타협점을 찾아야만 했다. 바나링과 자신이 서로 납득할 수 있는.
“다양한 곳에서 응집된 부정적인 에너지가 사물이나 기물 따위에 숨을 불어넣은 것을 고스트 타입의 기원이라 한다면, 이는 신화적 탄생이라 보아야 할까 과학적 귀결이라 보아야 할까.”
어느덧 살비마을이었다. 오트에게 빌려온 책들을 옆에 쌓아두고 에셸은 리포트를 마무리했다. 그러다 문득, 포켓몬의 부재를 깨달았다.
“위키링? 바나링?”
어두운 창밖으로 보라색 불꽃이 솟구쳤다.
불꽃이 솟구친 건 후와링 때와 일부러 반복되게 주었던 거고... 얘들아 그만 싸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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