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켓몬스터 : 디 이노센트 제로

57) 02.21. 내 작은 아가씨야

천가유 2022. 4. 30. 01:07

더보기

 

 

있잖아, 에셸. 나는 진화 같은 별로 하고 싶지 않았어. 사람들은 내 설명을 보고 이 초가 생명을 빨아들인다든지, 반짝이는 건 생기를 머금은 탓이라든지, 빛이 괴이하다든지 내가 널 영계로 데려간다든지, 멋대로 떠들기 일쑤였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거든. 중요한 건 너잖아. 너는 날 무서워하지 않잖아.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랬지. 그런 네가 맘에 들었어. 나를 보고 울지도 않고, 도리어 웃던 내 작은 아가씨. 그냥 마음에 들었어.

내 몸은 늘 초 때문에 따뜻했는데 넌 그게 좋다고 했어. 그야 그렇겠지. 넌 추위에 약하잖아. 원래도 제법 추운 그 도시가 겨울이 되면 아주 전부 꽁꽁 얼어버릴 것만 같이 새하얗게 변하면 너는 늘 나를 품에 안고 얼어붙어가는 바다를 구경했지. 철없는 아가씨, 내가 아니었으면 매년 겨울 넌 침대에서 나오지도 못했을 거야. 여름이 되면 내가 더울 만도 한데 그래도 넌 늘 나를 데리고 어디든 다녔지. 정말이지, 넌 나를 너무 좋아해서 탈이야.

한 해, 두 해, 너는 자라나고 나는 그대로였지. 키가 멈춰도 인간은 나이 먹기를 멈추지 않아. 너는 자꾸만 어른이 되어 갔어. 그 동안 나는 계속 작은 불켜미였고. 하지만 그게 뭐 어떻단 걸까. 작은 채인 편이 네가 안아주기에 더 좋잖아. 앞으로 네가 서른이 되고 마흔이 되고 꼬부랑 할머니가 될 때까지도, 고작해야 3kg도 되지 않은 불켜미 정도는 데리고 다녀도 좋잖아.

네 인생은 이미 내 거나 다름없었어. 그런데 뭘 더 원하겠어. 너랑 있는 동안엔 하나도 배고프지 않던걸.

트레이너 캠프에 참가하고 해보지 못한 경험을 하고, 참 보기 좋더라. 싱그럽게 반짝이고 생기 넘치던 모습이 예쁘더라. 알잖아. 나는 네가 뭘 하든 싫어하지 않아. 흔들풍손의 손을 잡아보려던 건 정말 멍청한 짓이었지만 어차피 내가 옆에 있는 줄 알고 그런 거였지? 바보 같은 에셸, 내가 없으면 큰일 나는 에셸.

그런데 캠프가 길어질수록 조금 걱정이 되긴 했던 것 같아. 바깥은 생각보다 위험하고 작은 불켜미로는 하지 못하는 일이 많았어. 너는 내가 지켜줘야 하는데, 나는 고작해야 네 곁이 캄캄해지지 않는 정도의 빛밖에 되지 않았던 거야. 우리의 세계가 작을 때는 그 정도로도 충분했지만 키가 다 자라고도 너는 더 커지고 싶어 하잖아. 더 많은 걸 보고 듣고 겪고 싶어 하잖아. 그런 네 옆에 있으려면 나도 좀 더 자라야만 했어.

그야, 너라면 분명 지금의 나로 충분하다고 하겠지만.

내가 에셸의 곁에 있는 걸 방해해. 너만 없으면!

웃기고 있네.

저 건방진 녀석에게 맞서려면 나도 조금, 기지개를 켜야 할 것만 같은걸.

이제 안아주지 못하게 됐다고 서운해 하면 안 돼. 이럴 줄 알았으면 처음부터 고스트 타입은 나 하나로 충분하다고 할 걸 그랬나봐.

위키링, 바나링!”

, 저기 에셸이 온다. 그래, 그렇지. 아주 좋은 타이밍이야. 모습이 달라지는 순간도 놓치지 말고 봐줘. 그리고 또 내 이름을 불러줘. 다른 애들은 다 진화하면 팔이 생기던데, 그것도 팔이라고 해도 되는 걸까? , 걱정은 하지 마. 내 불이 널 해칠 리 없잖아.


위키링과의 서사를 좀 더 진득히 풀지 못한 건 아쉬워요. 하지만 가족이란 그런 거지. 굳이 말로 하나하나 다 하지 않아도 그냥 오랫동안 같이 지낸 관성이 있는.

'포켓몬스터 : 디 이노센트 제로' 카테고리의 다른 글

59) 02.22. 숨겨주었다?  (0) 2022.04.30
58) 02.21. 좋아하는 너  (0) 2022.04.30
56) 02.21. 사랑하는 저주  (0) 2022.04.30
55) 02.21. 기원  (0) 2022.04.30
54) 02.19. 선을 이루는 것  (0) 2022.04.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