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비마을 의뢰, 일일 보모!
화창하고 맑은 토요일 낮. 타도 오트를 외치는 두 트레이너가 모였다. 참고로 어제는 체육관에서 고배를 마시고 온 동지이기도 하다.
“마침 기분전환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목새 체육관 생각만 온종일 한 탓인지 모처럼 살비에 와서 다른 구경은 하지도 못했거든요.”
맞아요. 그건 정말 아쉬운 일이에요! 맞장구를 치는 비비안느는 정작 에셸과 다르게 살비에서의 생활도 상당히 만끽한 것으로 기억한다. 안네는 요령이 좋으니까요. 에셸 본인도 어디 가서 요령과 성실함은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했으나 비비안느는 그 이상을 보여주곤 했다. 이게 바로 코어근육의 힘……? 이 생각을 들켰더라면 다시 운동하자는 습격이 있었겠지. 덧붙여 비비안느와 운동하기로 약속한 뒤 에셸은 착실하게 산책과 체조를 하고 있었다. 그게 눈에 보이는 성과로 나타나지 않을 뿐.
뱀발로 새어나가는 생각을 수습하고 두 사람은 키우미집의 창고에서 골라온 열매들부터 천천히 손질하기 시작했다. 옆에선 로나와 다른 아이들도 돕고 있었다. 잘 익은 열매는 반으로 쪼개는 것만으로도 단향이 피어 올랐다. 그 냄새에 이끌리듯 오팔이 머리 위를 8자로 날았다. 안네, 포핀은 자주 만들어 봤나요? 에셸의 질문에 비비안느는 한참 기억을 더듬어 가는 모양이었다. 꽤 옛날이네요. 왜 옛날에 끝났는지 이유는 묻지 않아도 알만 했다. 제가 만드는 것보다 전문가가 만들어진 걸 사는 게 훨씬 낫지 않겠어요? 정도의 답이 아닐까. 그의 감각은 언제나 본능적으로 가장 빠르고 효율적인 방향을 향해 뻗어갔다. 포켓몬 배틀에서도 그랬다. 순간의 판단력과 가장 좋은 길을 골라내는 안목. 자신의 눈을 믿는 실행력까지. 그의 지시는 언제나 적확한 자리를 가리켰다. 비비용이 추는 나비춤은 정말 아름다웠지.
에셸도 스스로의 선택과 판단을 신뢰하곤 했지만 종종 천성처럼 감성적인 길을 택할 때가 있었다. 그 순간을 후회하진 않았으나─그야, 어쩔 수 없는 자신이다─그럼에도 한 번쯤 곱씹게 된다. 비비안느도 그럴 때가 있을까? 주걱으로 반죽을 저으며 무심결에 그를 보자 제 얼굴에 뭔가 묻었나요? 빙그레, 미소가 돌아왔다.
“문득 궁금해지지 뭐예요. 안네에게도 있나요? 이건 오판이었다, 라고 하는 선택.”
설령 그렇다 해도 그 또한 후회하지 않을 것도 같았지만 돌아올 답을 궁금해 하며 잘 섞인 반죽을 차례차례 포핀 틀에 부었다. 작업은 순조로웠다. 에셸도 베이킹에 있어서는 철저한 레시피 파인 덕이다. 오븐이 예열되는 동안 두 사람은 자신이 기억하는 선택의 순간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떨 땐 정말 과감하고 도전적인 선택을 하다가도 어떨 땐 저도 모르게 소극적이 되기도 하더라고요. 에셸의 기억은 목새 체육관을 되짚고 있었다. 거기서 어떻게 해야 했을까.
한참 그 대지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려는 것을 경쾌한 오븐 소리가 깨워주었다. 어느덧 주방에 온통 단내가 진동을 했다. 제 몫이 있을까? 두 사람의 포켓몬들이 목이 빠져라 이쪽을 보는 게 느껴졌다.
“아가 포켓몬들의 몫까지 먹어버리면 안 돼요~ ……넉넉히 만들긴 했는데 걱정인걸요.”
부족하면 더 만들면 된다지만 저 눈빛은 단순히 포핀을 탐내는 것 이상으로, ‘내 거!’라는 의미가 짙어 보였다. 키우미집에 갈 때 바나링은 떼어 놓고 갈까. 등골을 휘도록 바나링 매달릴 생각이다.
키우미집에 도착한 두 사람은 이 때만큼은 잠시 타도 관장의 마음가짐을 내려놓고 실컷 베이비 포켓몬들과 어울렸다. 살비마을의 일부만을 똑 떼어내 살비를 설명하라면 바로 이곳이 되겠지. 육아란 도통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살비의 따뜻한 기운을 듬뿍 받은 아이들을 돌보는 일은 좋은 재충전의 시간이 되었다. 이곳 살비를 조금 더 사랑하게 될 것 같았다.
비비안느 제일의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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