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글링 친밀도 로그
샛별 체육관의 도전을 마치고 다음날의 한낮. 에셸은 우유푸딩을 만들고 있었다. 신선한 우유에 젤라틴을 녹이고 단맛을 조절하여 굳힌다. 어려울 것 없이 유리병에 몇 개나 되는 하얀 푸딩이 속속들이 채워졌다. 다 굳으면 캠프원들과 나눠 먹어야지. 만들다 남은 우유에는 과감하고 사치스럽게 홍차 잎을 듬뿍 넣고 끓여서 밀크티를 만들었다. 앵무새 설탕을 퐁당퐁당 넣어 홍차 향이 깊이 풍겨 나오는 그것을 후, 불어 마신다. 따뜻하고 달콤하고 노곤한 게 따로 천국이 없었다.
곁에서 밀탱크도 신선한 우유를 하나 퐁, 따서 꿀꺽꿀꺽 마신다. 에셸은 저글링 몫으로 피로슈키를 건네주었다. 그의 엔트리 중 인간과 비슷하게 식사를 하는 건 저글링과 서머링 뿐으로, 그마저도 서머링은 겉보기만큼 들어가는 양이 적어 결국 잘 먹는 게 눈에 보이는 건 저글링이 유일했다. 기실 트레이너 본인부터가 입이 짧은 편이다. 7인분의 식비가 전부 저글링에게 들어간다 해도 좋았지.
잘 먹는 저글링을 두 손으로 꾹꾹 만지며 쓰다듬자 포켓몬에게서 기분 좋은 울음소리가 들렸다. 목에 달린 방울이 딸랑거리고 경쾌한 소리를 낸다.
“저글링, 제가 너무 당신에게 의지만 하고 있진 않나요?”
첫 만남을 떠올린다. 그 때만 해도 밀탱크를 잡을 생각이 크지 않았다. 오히려 그 때 만약 손쉽게 잡혔더라면 지금 같은 소중함을 느끼기에 부족했겠지. 그랬는데 정작 아무것도 모르고 덤벼서, 상성면에서 불리한 위키링을 대동하고 만났다가 형편없이 깨지고 몬스터볼 5개를 고스란히 바치고선 저 저돌적이고 용맹한 모습, 절대 필요해요! 결심을 했다. 그 때 반한 걸지도 모른다.
사실 저글링을 데려올 때까지도요. 이렇게 체육관 도전에 열을 올릴 줄도 몰랐는데, 정말 한치 앞도 모르는 게 사람 일만 같아요. 체육관 도전보다는 그저 여행의 동반자로 생각했었지. 누림 체육관을 위키링과 저글링, 둘이서 도전하고 이어서 북새, 또 혜성. 살비에서의 놀라운 카운터 어퍼컷에 마침내 샛별에서 2대1로 이겨주는 기함을 보였다. 늘 위기라고 생각한 순간에 저글링이 대들보처럼 단단히, 달링가의 지붕을 떠받쳐주었다.
이래서야 의지해버려도 할 말이 없지만, 그래도 너무 어깨에 부담이 크진 않았나? 진지한 눈으로 저글링을 보자 그 밀탱크는 트레이너와 꼭 닮은 미소를 보였다. 괜찮아. 난 지금 즐거워. 무사태평하고 느긋한 밀탱크, 초원에 누워 하루 종일 햇볕을 쬐거나 데굴데굴 굴러가며 작은 포켓몬을 돌보길 좋아하던 밀탱크. 하지만 지금의 이 두근두근하고 설레는 모험은 포켓몬 스스로 결정한 것이기도 하다. 그 때 그 볼을 받았잖아. 그 때부터 지금까지 쭉 즐거운 일뿐이야.
밀탱크의 얼굴에서 행복감을 읽어낸 에셸은 어쩔 수 없다는 듯 포켓몬을 꼬옥 끌어안았다. 정말 사랑스럽지 않을 수 없는 저의 대들보다.
“그럼요. 앞으로도 잘 부탁할게요. 우리 모험은 아직도 한참 남았으니까요.”
저글링 없었으면 여기까지 못 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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