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주차 리포트
남 앞에서 컨디션을 티내지 말 것. 그렇게 가르침 받으며 컸다. 코트 위를 내려갈 때까지도 미소를 잃지 않았다. 사실 그건 별로 어려울 게 아니었다. 난감할수록, 난처할수록 부드러운 미소로 포장한다. 포장지 위로 예쁘게 리본까지 묶고 나면 대개 겉을 칭찬해주었다. 굳이 그것을 풀어 안을 보려는 사람은 없다. 그러면 그 사이 혼자 기분을 다듬었다. 어리광 부리지 말고 잘 서 있어야지. 잠시간의 기분을 이겨내는 것쯤이야 어렵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오늘은 어째서 이렇게 마음이 힘든지. 힘들 때마다 북돋아주던 목소리들에 그새 익숙해져버린 걸까. 조금 우는 소리를 하고 싶다고 입술 안쪽을 가볍게 물며 에셸은 포켓몬들과 함께 집으로 돌아갔다. 물이 들어차고 있었다. 발목을 집어삼키고 서서히 수위를 올렸다.
목새로 출발하기 전, 집안은 한바탕 소동이 있었다. 갑자기 튀어나온 다즐링에 놀란 어머니, 다즐링의 소리에 쫓아 나온 바나링, 귀가하며 후와링을 발견하곤 눈이 휘둥그레 해진 아버지, 포켓몬들을 살펴보다가 그 애는 어디 있냐며 위키링을 발견한 어머니는 그대로 할 말을 잊으신 듯 했다. 그런 어머니의 기분도 모르고 바나링은 트레이너를 꼭 닮은 여자에게 사뭇 친근한 얼굴로 다가갔다. 에셸이랑 같은 분위기네! ──어머니 또한 상대가 누구든 기분을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었기에 다행이었다. 바나링은 어머니의 건조한 대응에 그다지 상처 받지 않아 보였다. 다만 어서 아이들을 내보내든 볼에 넣든 어쩌든 하라는 말에 에셸은 포켓몬들을 모두 방 안에 모아 넣었다.
그 뒤로 이어지는 가족의 대화에 두통이 일었다. 머리 한 켠을 콕콕 찌르듯 가시처럼, 자갈처럼 박혀 어지럽게 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체육관으로 향하는 길까지 컨디션을 컨트롤하지 못한 건 순전히 자업자득이었다. 다만 그로 인해 포켓몬들이 가진 기량을 다 보이지 못한 건 속상했다. 포켓몬들은 강한데 저는 여전히 부족하고 약하다. 오늘따라 그 생각이 어찌나 자꾸 사무치던지.
돌아가는 길, 자꾸만 걸음이 무거웠다. 어느덧 수면이 허리까지 잠식해온 기분이었다. 물을 먹은 솜처럼 한 발짝, 두 발짝, 피로한 걸음을 이었다. 그래도 돌아가야겠죠. 짊어져야 할 책임 앞에서 도망치는 건 그답지 않았다. 그래도 버텨내야죠. 조금만 더, 단단히 세운 마음의 벽이 무너지지 않도록. 그런데 왜── 오늘은 유난히 힘에 부치는지. 걷다 말고 우뚝 멈춰 섰다.
밤하늘이 아름다워 드는 충동이었다. 잠시 샛길로 빠졌다. 어둑한 밤의 방파제로 가 그곳에 다리를 모으고 웅크려 앉았다. 짠내음이 한껏 밀려들었다. 마음에 쌓인 모래알 같은 잡념도 상념도 모두 쓸려나갈 것만 같았다.
“조금만 쉬었다 갈게요, 위키링.”
옷깃까지 바닷물이 차오르듯 젖어가는 모습을 오랜 시간 함께한 파트너는 능숙하게 모른 척했다. 누가 오지 않도록 으스스한 도깨비불을 띄우며 망만 보았다. 여기서 다시 숨을 고르고 나면 울적한 기분쯤이야 금세 털어내겠지. 바닷바람이 다 안아주고 갈 것이다. 만조까지 물이 차오르고 나면 다음은 빠지는 일뿐이니까. 제 기분을 헤아리길 포기하고, 스스로 달래기도 포기한 에셸은 그저 축축한 설움에 잠겼다.
이날 뒷사람 컨디션도 나빴는데 체육관전 형편없이 지고 자캐도 심각한 상황이라서 우야나, 하고 턱호두 하다가 이거 올려놓고 자러 가려고 했거든요.(좀 부끄러웠음)
근데 주노가 말걸어줘서 흐어어어 하면서 답멘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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