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기까지 망설임은 없었다. 순전히 호기심만이었다면 여기까지 닿지 않았을 테지. 그의 말처럼 누군가를 ‘안다’는 것은 그만큼의 책임이 따르는 일이니까. 그러나 에슬리 챠콜에게 눈앞의 남자, J. 디셈버 윈터가든은 단순히 호기심만으로 대하는 상대가 아니었고, 때문에 그녀는 그의 문을 두드렸다. 알기를 청했다.
검은 레이스의 안대 너머로 어렴풋하게 붉은 시선이 닿아온다. 고요하게 내려앉는 시선은 시선을 주는 주인과 닮아 있어, 이름처럼 얼어붙은 겨울이 아닌 벽난로의 불꽃과 같은 온기가 감도는 시선을 익숙하게 받으며 에슬리는 나긋나긋하게 들려오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내가 나브람이 아니라는 것은 눈치 채고 있었을 것 같습니다. 나는, …뭐랄까요. 당신이 이야기한 대로 만들어졌다 하는 게 맞는 생물체이고, 만든 이는 호적상으론 내 조부에 위치하고 있는 윈터가든의 선선대 가주입니다.”
설명을 잇는 목소리에 평소와 다른 옅은 삐걱거림이 있다. 언제나처럼 우아하게 에두른 표현이 아니라 어색하다 싶을 만큼 있는 그대로의 이야기가 가감 없이 흘러나온다. 그 또한 낯선 것이구나, 자신을 말하는 것이. 어쩌면 처음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자 덩달아 긴장되는 것 같기도 하다.
그의 말은 느슨하게 이어졌다. 만들어지게 된 배경, 과정, 결과까지. 의도적으로 자세한 설명은 하지 않은 채 남의 일이라도 되는 양 덤덤하게 말과 말을 늘어놓을 뿐이었다. 그동안 에슬리는 한 마디 대답도 없이 그저 나열되는 말을, 목소리의 온도를, 표정을 살폈다. 그렇게 다 듣고 났을 때는 다만 아아, 그렇구나. 하고 주어지는 이야기를 온전히 받아들였다. 이제야 그간의 조각들이 맞춰지는 것 같았다.
「디셈버 몇 살이야?」
「네가 보는 대로랍니다.」
「아하, 그럼 할아버지?」
그가 제 몸의 이변을 알아차릴 만큼의 시간이 쌓이는 동안 그녀 또한 그를 계속 보아왔을 따름이다. 언제 방문해도 변함없는 겨울의 땅, 그리고 마찬가지로 변함없는 그 땅의 주인. 그의 바로 옆에 살아있음을 온몸으로 내비치는 아이가 있던 탓일까. 멈춰 있는 그의 시간은 보다 두드러졌고 나브람일 리 없다는 것쯤 쉬이 눈치 챘다.
제국군에 들어가면서 그에 관한 소문은 좀 더 쉽게 접할 수 있었다. 갑작스럽게 사라진 선대 가주, 솟아난 듯 나타난 현재의 가주, 선대와 똑 닮은 얼굴과 열쇠의 인정 덕분에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다던가. ‘똑 닮은 얼굴’, 나브람이었다면 의심할 게 아니었겠지. ───나브람이었다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제국군에 들어가서 접한 이야기로 윈터가든은 나브람의 가문이 맞았다. 그러나 그녀가 보고 들은 디셈버 윈터가든은 나브람이라기엔 맞물리지 않는 점이 많았다. 나브람을 뛰어넘은 마법력, 나이를 먹지 않는 몸, 그 자신을 가리키는 기묘한 태도.
그랬구나. 그랬던 거야. 퍼즐 조각처럼 흩어져 있던 그의 말이 제자리를 찾아가며 눈앞의 남자를 그린다. 선선대의 가주였다는 이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스스로 결정할 수 없었던 탄생의 산물. 이렇게 태어나고 싶었던 게 아니라는 어린 제 호소에 반응하던 5년 전의 그가 오버랩 되어 에슬리는 느릿하게 눈을 깜빡였다.
“……질문엔, 충분한 답이 되었을까요.”
문득 의식이 돌아온 건 마지막 말을 끝으로 입을 다문 그의 모습이 평소와 다름을 감지하면서다. 처음엔 창 밖, 그 유리 위, 이어서 지금은 손가락 끝에 시선을 두고 있는 그의 모습이…… 그렇지, 이쪽을 전혀 바라보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거기에 다시 기묘함을 느꼈다.
언제나 상대는 저를 바라보지 못함에도 저는 마음껏 상대를 탐구하던 시선이 어째서 지금은 닿지 않을까. 알기를 청했고 그는 문을 열어주었다. 인정받았다고 느꼈다. 기뻤다. 때문에 그의 시선이 저를 향하지 않는 걸 에슬리는 굉장히 섭섭하게 느끼고 말았다.
그래서 에슬리는 부러 더 웃는 낯을 하고 그의 옆에 섰다. 모르지 않는다. 털어놓을 때의 두려움을. 상대를 믿는 것과는 궤가 다른, 내려간 블라인드를 올리기 직전의 막연함을 그녀 역시 모르지 않기에 그에게 제 표정을 보여주고 싶었다.
하얀 김이 서린 창문을 더듬는 손가락, 그 너머로 그의 시야에 들어가 눈을 찾고 고개를 기울인다.
“지금은 어때, 디셈버? 어째서 살고 있는지, 산다는 게 어떤 건지 느끼고 있어?”
살아있어서 즐거운 일이나 좋은 일, 생겼을까?
「산다는 게 어떤 건데요? ──나는 산다는 것의 정의를 잘 모르겠어요. 알지 못하는 것을 바란다고 이야기 할 수 있을까요?」
언젠가의 기억이다. 5년 전이면서 동시에 13년 전이 되어버리는 이상하게 뒤섞였던 그 시간 속에서 그가 들려주던 말들이 바람결에 떠오르는 깃털마냥 부드럽게 상기되었다. 이제까지의 긴 세월 동안 살아있어서 좋았던 기억 따위 없음에도, 그저 약속 때문에 살아간다고 했었지.
누구와? 이어진 그녀의 물음에는 두루뭉술하게 답을 물리쳤었다. 혹시 그 ‘누군가’는 ‘수십 번의 시행착오’ 중 하나던 걸까. 그렇다면 그 누군가는 그에게 어떤 바람을 안았던 것일까. 살아서, 무엇을 보아달라고.
바라지 않았던 탄생, 태어난 것만으로 짊어지게 된 시행착오의 무게, 그에게 세이겐 윈터가든은 낳아준 부모였을까 만든 주인이었을까. 그라고 억울하지 않았을 리 없고 스스로를 동정하던 시기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제 불행에 조소해보거나 원망조차 갖지 못해 체념하거나, 그렇게 삶의 의미를 모르는 채 그저 멈춰선 채로 언젠가 끝나지 않는 겨울 속에서 죽을 날만을 기다린 채 하루를, 또 하루를 무감각하게 지새우며 보내던 시간도 있었겠지. 그녀는 그가 견뎌온 시간을 감히 재단할 수 없었다. 덤덤한 목소리 아래 묻혀 있을 수많은 감정과 회한은 그녀가 짐작할 만한 것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그의 안에 담긴 것을 다 읽어내지 못하더라도 보이는 건 있다.
“디셈버가 만약에 스스로를 동정한다면 나도 그럴 거야. 하지만 나는 나의 불행이 다른 사람의 동정을 사는 게 그다지 기쁘지 않았어.”
동정하는 건 쉽다. 쉬운 만큼 얄팍하다. 에슬리는 그 얄팍함이 싫었다. 줄 거라면 차라리 빵을 줘. 쓸모없기도 하지. 동정과 걱정은 달랐다. 걱정은 필요로 하지 않는 걸 주지 않는다. 때문에 그녀는 눈앞의 남자에게 동정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이야기 속의 그와 현재의 그는 다르다. 조금 녹았을까? 장난스럽게 던진 말에 그가 보이던 반응을 기억한다. 스스럼없이 뻗게 된 손, 비틀리지 않은 미소, 평온하던 목소리, 변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땅의 변화를.
“지금의 당신은 그렇게 불행해보이지 않거든. 살아있으라는 약속을 지킨 보람, 느끼고 있다면 나도 뿌듯할 거야.”
「──당신을 떠올려버릴 것 같아.」
그를 기억하겠노라 선언했던 지난날이 있다. 되짚어보면 어딘지 치기어리고 충동적이었던 선언. 저는 필사적으로 삶을 향해 발버둥 치는데 그는 유유자적 뒤에 남겨져서 죽음을 기다리겠다 하니 얄미웠던 것 같기도 하고 그렇게 순순히 내버려두고 싶지 않기도 했다.
지금에 와서는 그 말의 의미가 조금 달라졌다. 그를 떠올리면서 느낄 수많은 감정이 피었다. 나는 당신을 기억하고 싶어. 떠올리고 되새기고 추억하고. 당신을 그리고 싶어. 그렇게 느끼게 된 기저에는, ……내가 그만큼 디셈버를 좋아하게 되었단 뜻이야. 면대면으로 말하기는 무척이나 쑥스러운 이야기라 조그맣게 속삭이고는 새침하게 표정을 바꾼다.
“이야기해줘서 고마워. 이걸로 당신을 좀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어서, 기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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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셈버님 과거 듣고 이 때도 정말 조심조심 글을 적었던 기억이 난다. 내가 얼마만큼의 공감을 표하면 좋고 어떤 답을 들려주면 좋을까 하고:q
제목은 매번 의미를 담아 적는데 로그 제목을 캐릭터의 풀네임으로 적는 건 그만큼 그 사람을 담았다는 의미라고 해야 하나. 나타냈다고 해야 하나. 나름의 기준점이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