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주노
Q. 애인에게 초콜릿을 줄 계획인가요?
A. 당연하죠. 한 달도 전부터 기다려온 이벤트인걸요. 그런데……
Q. 그런데?
A. 주노는 제가 당연히 초콜릿을 줄 거라고 생각하고 있을까요?
──생각해주면 좋을 텐데 말이에요. 이 정도 마땅한 것은.
중탕한 초콜릿에 생크림을 부으며 에셸 달링은 머릿속에서 이루어지는 셀프 인터뷰에 한껏 몰입했다. 연인의 겸손함과 다정함은 그녀가 사랑하는 요소 중 하나였지만 가끔은 지나친 겸손이 그를 사랑받지 못하는 사람으로 만들어버리진 않았던가.
예를 들면 성 밸런타인을 기리면서 밸런타인 본인과는 아무 상관없다는 세기의 상술, 사랑이 가장 꽃피우고 폭발하는 2월 14일, 세상 모든 카카오열매가 사랑의 열매로 보이는 1년에 한 번뿐인 특별한 이 날에, 사랑의 증표가 자신에게도 오리라고 그가 기대하고 있을까? 라는 부분이다.
“우리 사귄지 벌써 1년이 다 되어가는 걸요. 어제도 사랑한다고 말했고요. 주노도 당연히 제가 줄 거라고 생각할 거예요.”
“하지만 당연한 건 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주노죠. 준다면 분명 기뻐하겠지만 받기 전까지 만약의 만약을 생각하는 점이…….”
그런 부분까지도 에셸이 너무나 사랑하는 연인이지만. 혼자서 자문자답을 하던 에셸은 옆에서 톡톡 두드리는 저글링의 행동에 아! 열이 식어가는 초콜릿을 얼른 틀에 붓기 시작했다. 타이밍을 놓쳤다간 기껏 잘 녹인 초콜릿의 결이 엉망이 된다.
덧붙여 위키링은 일찌감치 도망쳤다. 내가 그 녀석 만들어줄 초콜릿을 도와줘야겠어? 위키링의 도깨비불이 있어야 초콜릿이 가장 적절하게 녹을 텐데, 매정하기도 하지!
예쁘고 꼼꼼하게 틀을 채우고 그 위를 살살 쓸어 흡족하게 웃는다. 표현을 바꿔보자. 에셸은 경쾌하게 제자리를 빙글 돌았다.
“주노는 자신이 초콜릿을 받을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을까요?”
주는 건 당연하지만, 이 사랑을 받는 게 당연하다고 여길지 말이죠. 에셸의 말은 계속해 허공을 향했고 곁에 있는 포켓몬들은 답변을 해줄 수 없었다. 저 원맨쇼에 어울려주는 녀석들이 성격도 좋지. 곁에서 몽글몽글 구름을 뿜어내는 냐미링과 생크림을 젓는 저글링을 두고 위키링은 바깥에서 달콤한 초콜릿 냄새만 한껏 맡았다.
얼마 전 초콜릿 재료 쇼핑을 하러 가던 날도 이와 비슷했다. 차이점은 그 땐 대꾸해줄 사람이 있던 점이다. 저번 크리스마스 이후 부쩍 친해진 주노의 여동생─에셸과 동갑인─이 상대였는데 그 사이 몇 번이나 두 사람이서 친분을 다지면서 ‘이 사람 정말 우리 오빠를 좋아하는구나.’ 라는 혈육으로서는 실감하기 힘든 신기하고도 낯선 애정을 절절이 느낀 동생도 이날만큼은 소화하기 어려워 두 손 들었다고 했다.
나중에 말하기를 ‘우리 가족도 오빠를 그만큼 좋아하진 않을걸?’라던가. 에셸이 들었더라면 깔깔 웃으며 “아이 참, 가족의 애정과 연인의 애정은 다르죠.” 라고 한다지만 동생은 단언한다. “아니, 에셸 씨만큼 좋아하기도 힘들 거예요.”
물론 에셸이 자기 이야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가족을 정보원으로 쓴다! 아주 중요한 부분이지. “주노가 밸런타인을 기대하고 있나요?” 혹시 취향이라거나, 어떤 걸 기대한다거나. 은근슬쩍 물어보기도 했다. 주노의 여동생은 물론 알고 있는 것에 한해 무엇이든 말해주려고 했다. 다만 애석하게도, 대답은 “잘 모르겠어요.”였다.
사이가 좋은지 나쁜지를 묻는다면 물론 좋은 편이다. 하지만 가족애가 좋은 것과 가족의 연애사업을 잘 아는 건 별개였다. 무엇보다 애인의 초콜릿을 기대하는 친오빠의 얼굴 같은 건, 사이가 좋더라도 좀.
“에셸 씨가 주는 건데 뭐든 괜찮다고 하지 않을까요?”
“그건, ……그야 그렇지만!”
그럴 거란 걸 잘 알지만! 뻔뻔한 대답에 어느새 절친이 된 상대는 한 번 더 크게 웃었다더라.
하트 모양의 틀에 초콜릿을 붓고 안에 아몬드나 화이트초코, 라즈베리 등 내용물을 집어넣었다. 한쪽에선 생초콜릿이 굳어가고 있었고 그 옆에선 견과류를 잘게 부서 넣는 초콜릿 스틱이, 남은 초콜릿은 빼빼로처럼 과자에 발랐다.
머리가 아플 정도로 단내가 진동을 했다. 오늘 이날을 위해 초콜릿 레시피를 몇 개나 섭렵했던가. 주노가 좋아하는 초콜릿을 고민하느라 지불한 비용이다. 주노는 무엇이든 좋아해주리라 알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아하는 사람에겐 무엇이든 최고의 것을 해주고 싶지 않은가. 에셸은 그랬다. 그에게 정말 해주고 싶은 게 많았다.
고심한 끝에 내린 결론은 전부 다 만들어보자! 였고, 할 수 있는 모든 레시피의 초콜릿을 만들었다. 과일, 견과류, 마시멜로우와 럼주, 화이트초코, 다크초코, 오만 비율, 부드러운 것, 단단한 것, 톡톡 터지는 것, 심플한 것까지 안에 들어가는 내용물부터 단맛의 비율, 식감까지도!
이중에서 주노가 가장 마음에 드는 걸 찾아낼 수 있다면 좋으련만. 초콜릿을 먹은 그가 '맛있어요.'하고 웃어준다면 최고의 보답이다.
한껏 꿈에 부푼 에셸을 두고 위키링은 그 녀석의 급성당쇼크를 걱정해주었다. 이 의리 있는 샹델라.
“주노는 특별히 호불호가 없다고 하는데요. 그래도 먹다 보면 조금 더 좋아하는 맛 정도는 생기지 않을까요?”
어쩌면 그의 미각을 개발 중인지도 몰랐다. 음식에 크게 연연하지 않는 그에게 알려주는 미식의 길이다.
판에 넣은 초콜릿을 정사각형 모양으로 예쁘게 잘라본다. 인간의 마음은 모순된다고 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너무나 복잡하고 스스로도 알기 어렵다.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주노가 좋았다. 사소한 것도 유난스럽게 기뻐해주는 그여서 좋았다. 한편으론 지금쯤 당연하게 기다려도 좋을 텐데 하는 마음이 있었다. 조금은 뻔뻔할 만큼, “에셸이라면 당연히 주겠지.” 하고 혹은 “에셸은 나를 좋아하니까 당연히…… 받겠지!” 하고.
──음, 여기까지 상상한 에셸은 머릿속의 대결에서 패배를 인정했다. 패자 에셸 달링, 승자 에셸 달링. 역시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주노는 상상이 가지 않는다. 그러니까 더욱, 그의 기뻐할 얼굴을 기대하게 되는지도 몰랐다.
초콜릿의 준비가 끝나면 다음은 포장이었다. 종류별로 맛별로 하나하나 세세하게 포장하고 위에는 이름표를 붙였다. 귀여운 리본을 장식하고 모아서 다시 상자에 담는다. 상자의 포장을 마치고 맨 위에는 카드를 적었다. [사랑이 과했나요? 당신의 달링, 에셸.] 만들 땐 신이 나서 몰랐는데 제법 무게가 되었다.
─그러니까 급성당쇼크를 걱정하라니까.
위키링의 텔레파시는 알아도 모른 척이다.
위키링은 어딘지 모를 입으로 에효, 한숨을 내쉬었다. 이상한 걸 하겠다고 나서지 않은 것만이라도 다행인가. 여기서 위키링이 생각하는 이상한 건 ‘초콜릿은 바로 저예요.’ 같은 모습이다. 어라. 위키링, 혹시 속에 아저씨가 들어있진 않아?
1년 동안 기대해온 이벤트였다. 사랑을 고백할 수 있는 날이란 정말 멋졌다. 1년 사이 커진 마음만큼이나 커다란 상자를 안고 에셸은 연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지금, 만나러 갈게요.]
・
・
・
성 밸런타인을 기념하며, 고인을 멋대로 사랑의 큐피트로 써버리는 배은망덕한 어느 날의 저녁. 연인을 만나러 가는 에셸의 마음은 행복감에 부풀어 있었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마음을 전할 수 있는 날은 얼마나 멋진가. 또 몇 번이고 좋아한다고 고백할 수 있는 날은 얼마나 굉장한가.
어둠이 내려앉은 거리가 오늘따라 유난히 아름다운 조명으로 빛나고 있었다. 곳곳의 리본, 끊임없는 하트 장식, 쇼윈도에 보이는 상자 안의 초콜릿, 행복한 연인들의 소곤거림. 그래요, 오늘은 모든 연인이 주인공. 그야말로 제가 주인공.
로맨틱한 이벤트라고 당사자성 없이 두근거리던 작년과는 달랐다. 호박마차에서 내린 신데렐라처럼 날아갈 듯 에셸은 달렸다.
“주노~!”
저 멀리, 연인을 발견하고 손을 붕붕 흔든다. 경쾌하면서도 사뿐한 발소리, 한 걸음 한 걸음 기대가 부푸는 소리다.
제 손에 들린 무엇인가를 발견한 그의 표정이 바뀌는 걸 똑똑히 지켜보았고 그의 눈이 저처럼 영롱하게 빛나게 될 즈음 한달음에 안겼다. 들뜬 마음에 숨이 가빴다. 한껏 부푼 가슴으로 에셸은 꼭 껴안은 그에게 앞뒤 가리지 않고 사랑을 전했다.
“당신을 좋아해요. 제 초콜릿을 받아주세요.”
초콜릿도, 마음도, 어느 것 하나 빼놓지 말고요.
Q. 이렇게까지 좋아할 이유가 있나요?
A. 밸런타인데이를요? 주노를요?
Q. 둘 다……?
A. 둘 다, 저를 행복하게 해주니까요. 좋아하는 것만으로 행복해지니까요.
'with.주노' 카테고리의 다른 글
24) 신데렐라 이야기 (0) | 2023.04.13 |
---|---|
23) 축복이 끝나고 (0) | 2023.02.15 |
21) Mayday, Darling Time! (0) | 2023.02.12 |
20) 적반하장에 대책 없음! (0) | 2022.11.30 |
19) 햇살 아래에서 (0) | 2022.11.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