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켓몬스터 : 피치럼블

040) 11.02. 탈피, 가속(脫皮, 加速)

천가유 2023. 12. 27. 21:16

ㅡ태태 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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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랐는데. , 너희 같은 절지류의 포켓몬을 좋아하는 것 같더라고. 특히 태태는 말이야. 내가 생각하는 용의 모습에 오히려 가장 가까운 것도 같아. 언젠가 같이 고산탑을 올라 보자. 고산의 위로 너라는 태산을 보이는 거야.”

 

, 시작한다. 시작해. 이거 봐, 지유, 태태.”

능란의 부름에 이브이가 쪼르르 품에 안긴다. 태우지네는 그 긴 몸체로 능란의 몸을 휘감고 올라 트레이너의 어깨에 턱을 툭 올렸다. 인덕션을 연상케 하는 배의 노란 부분은 지금은 열을 최대한 억눌러 적당히 따뜻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었는데 덕분에 태우지네를 휘감아 지내는 요 며칠간 능란은 할머니가 종종 하던 쑥뜸을 떠올렸다. 다음엔 몸에 쑥밴드라도 붙이고 태태에게 지나가라고 해볼까?불꽃몸이 아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엄연히 남의 포켓몬이었으나 지유는 능란의 품에서 익숙하게 예쁨 받고 있었다. 간간이 간식을 넣어주는 손길이나 복실거리는 가슴털을 쓰다듬어주는 손길이 퍽 자연스럽기도 했다. 태태가 능란의 엔트리로 온 뒤 종종 생긴 일과였다.

셋이 함께 가라르의 배틀 방송을 시청하는 일이다. 마침 자주 보는 중계러의 열띤 목소리와 함께 양측의 에이스 포켓몬이 등장한다.

이야, 이번에는 상대로 리자몽이 나왔잖아. 거다이맥스한 리자몽은 엄청나지. , 건너편은 이상해꽃이네. 이거 상당히 지역대표 결전 같네. 단순 상성으로 따지자면 리자몽이 우위지만……

해설소리가 포켓몬들의 아우성에 묻힌다. 어째서 다태우지네가 나오지 않은 거야. 맞아맞아, 거다이브이는 어디 있어. 포켓몬들의 재촉에 능란은 아이고, 앓는 소리를 냈다. 내가 내보내달라고 해서 나오는 게 아니란 거야. 하지만 막상 시합이 시작되자 두 녀석 모두 화면에 집중해서 잔뜩 몰입한 게 보였다. 가라르 특유의 거대한 체육관 돔 안을 화려하게 오가는 기술들을 볼 때마다 포켓몬의 몸이 더욱 뜨끈뜨끈해졌다.

지유의 목 부근을 만지작거리며 능란은 다시 한번 거다이브이의 꿈을 꿨다. 그 녀석의 폭신폭신한 털과 거다이포옹이 정말 엄청나단 거야. 지유, 너도 모두를 납작쿵하게 만들 수 있다니까? 오늘도 장외의 속삭임이 거대한 헛스윙을 날리고 있었다.

가라르에 가면 지금처럼 트레이너 캠프 다 같이 캠프는 몰라도, 개인 캠프는 많이 보인다더라구. 그러다 오며가며 캠프를 합치기도 하고 거대한 냄비를 꽉 채워서 카레를 끓이면 그걸 캠프 모두와 나눠 먹기도 하고. 이야기만 하는데도 즐거울 것 같더라니까.”

최근에 푸드트럭에 관심이 생긴 능란은 우린 아예 이동식 텐트라고 생각해도 좋겠어. 카레에 넣어 먹을 수 있는 주먹밥 장사를 하면 잘 팔리지 않을까?’ 떠들며 두 녀석과 함께 가라르 포이로그를 보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너희는 둘 다 화랑을 떠나본 적이 없지. 가라르는 엄청나게 넓고 여기랑 다른 문화가 잔뜩이라더라. 화랑만 떠나본 적 없을까. 각자가 자기 반경의 필드를 떠나는 일이 좀처럼 없었을 테지. 희나리 사막밖에 겪어본 적 없을 태우지네의 머리를 손바닥으로 살살 문지르며 능란은 앞으로 가랑 마루길의 풍경도 보여주었다.

저기 봐, 눈으로 덮인 땅이지? 네가 지나갔다간 눈이 다 녹아 흙바닥을 보이게 될지도 모르겠어. 그래도 네 불꽃에 쉽게 녹지 않는 눈도 있을 거야. 태우지네의 눈이 뚫어져라 화면의 눈을 쳐다보았다. 저 하얀 것은 무엇일까. 건드리면 모래처럼 바스락거리는 걸까? 설탕처럼 달콤할까? 아직도 세계가 좁은 태우지네는 뭇 상상하지 못할 것이다. 자신의 몸이 닿는 순간 새하얀 수증기를 뿜어내며 녹아내릴 눈을, 제 위로 쏟아지는 무게 없는 차가움을. 그리고 낯선 처음을 겪게 될 때에 경이로움에 감탄하겠지.

그래서 나를 놀랍게 해줄 순간은 대체 언제 오는 거야? 태우지네가 몸을 길게 늘렸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성급함을 억누르지 못하던 포켓몬은 이번에도 역시, 들어온 순서라는 것을 모르고 음뱃과 꼬시레를 제치며 바퀴처럼 달리기 시작했다. 그가 지나간 자리로 그을린 타이어 자국이 남았다. 바닥 곳곳에 황설탕이 눌러붙은 냄새를 풍기면서 태우지네는 탈피를 가속했다.


다태우지네를 키워보고 싶어서 소드실드를 다시 해볼까, 란 생각도 드는 요즘.

원래 히노테를 보고 경쟁하듯 진화하는 모습을 쓸까 했다가 히노테가 먼저 진화해버려서 어랏, 하고 지유와 오순도순한 내용으로 썼어요. 지유야 책임지고 가라르 데려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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