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켓몬스터 : 피치럼블

041) 11.04, 이유理由

천가유 2023. 12. 27. 21:17

ㅡ모아마을 아르바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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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걀도 삶은 달걀이라면 튕겨져 나올 거란 얘기를 들었는데. 너는 어떤 달걀이었을까. 물기를 잔뜩 머금은 수란이려나.

수란 좋아해? 수란을 얹은 죽통밥이라도 먹으면서 우리 친목을 다져볼까?

예약된 일정이 다 끝난다면……」

──좋아.

리모의 수락에 능란은 히죽히죽 웃으며 배틀 코트를 내려왔다. 포켓몬들이 센터에서 회복되는 동안 어제 썼던 포차에서 요리라도 해두려는 것이었다. 새 친구를 사귀는 일은 좋구만. 사람을 어딘지 느슨하고 포근하게 만들어주던 그 분위기를 능란도 본받고 싶었다.

곁으로는 코트에 올라가지 않았던 다른 포켓몬들이 몰려왔다. 기운이 넘치는 모모와 위위에게 캠핑장의 장작을 가져와달라고 부탁하며 능란은 쌀부터 안치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저 역시 배틀을 준비한다고 소금주먹밥 하나 외엔 먹은 게 없었다. -, 이러다 뱃가죽이 등가죽과 붙어버리겠어.

그때였다. 샤샤가 등껍질에 무엇인가 녹색의 형체를 업고 나타났다. 자신의 등이 가시에 찔려 여기저기 상처가 나면서도 꼬시레는 아픔을 참고 견디며 눈망울을 불안하게 떨었다.

? 샤샤, 무슨…… 으앗, 마라카치잖아. 상처투성이!”

아직은 무르고 연약한 갑주 위로 포켓몬이 누워 있었다. 샤샥거리는 다급한 발소리를 따라 풀이 죽은 마라카치의 몸에서는 경쾌하지 못한 소리가 들렸다. 천적에게 당하기라도 한 걸까. 이곳은 야생, 그 자체이니까.

자연의 청소부라 불리는 꼬시레가 죽어가는 마라카치까지 청소해버린 것일까? 그렇다기엔 꼬시레의 눈망울이 흔들리고 있었다. 상처 부위에서 흐르는 끈적한 수액이 꼬시레를 적셨다. 그게 꼬시레를 끔찍하고 무섭게 했다. 수액 사이로 눈물이 뚝뚝 흐르자 빈사 상태의 마라카치가 그마저도 아쉬운 듯 흐리멍덩한 눈으로 젖어가는 바닥을 응시했다. 물 한 모금이 다급했다.

능란은 서둘러 마라카치를 받아 들고 자뭉열매의 즙을 냈다. 포켓몬은 지금 무언가를 씹을 여력조차 없어 보였다. 자뭉열매를 입가에 흘려보내고 상처약을 가져와 마라카치를 치료하는 동안 꼬시레는 주위를 빙글빙글 맴돌았다.

훌쩍훌쩍 울고 있었다. 하나의 생명이 쓰레기가 될까 두려운 것 같았다. 이런 걸 청소하고 싶지 않았다. 어느 정도 응급처치를 마친 능란은 그런 포켓몬을 달랬다.

괜찮아, 괜찮을 거야. 잘 찾아왔어, 샤샤. 네가 이 녀석을 구해낸 거야.”

나는 데려오는 것밖에 하지 못했는데. 물 한 방울 주지 못했는데. 정말?

그럼그럼. 너니까 누구보다 빠르게 달려온 거잖아. 잘했어.”

트레이너의 위로에 마음을 달래면서도 꼬시레는 여전히 훌쩍임을 억누르지 못했다. 습지를 벗어나 더 멋진 풍경을 보기로 했는데 정작 트레이너를 믿고 따라온 뒤로 보는 풍경은 순 이런 것투성이였다. 싸우고, 다치고, 쓰러진다. 습지라고 안온한 것은 아니었지만 늘 무리 지어 생활하며 커다란 위기랄 것을 겪어본 적 없던 포켓몬에게 사막이 주는 자극이 지나쳤다.

이 트레이너는 제게 무엇을 보여주고 싶어서 데려온 것일까. 내가 정말 네가 보여주고 싶은 풍경을 견딜 수 있을까? 커다란 눈망울 가득 방울방울 짜디짠 것을 떨어트리는 꼬시레 덕에 능란은 어쩔 줄 몰랐다. 얘가 왜 이러지??

결국 마라카치를 포켓몬 센터에 보내주고 리모가 퇴근할 때까지도 능란은 꼬시레를 달래느라 밥에 불을 올리지 못했다. 체육관 앞에서 어쩔 줄 모르던 능란은 리모에게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밥은, 어디 가게라도 갈까?”


샤샤와 서사를 차곡차곡 쌓았는데 정작 배틀에서 샤샤 활약을 못 시켜줘서 아쉬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