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리드 귀하
“이 정돈 이해해주길 바랍니다.”
담담하게 향해오는 목소리에 서릿발 같은 날카로움은 없었다. 그래서 여자는 개구지게 웃었다. 그야 이해 못 할 것도 없지. 알았어, 리드 씨가 하고 싶은 말.
이렇게 서로 터놓고 이야기하면 처음부터 참 좋았을 텐데 참 많이 돌아오기도 했다 싶은 게 작금의 감상이다. 유난히, 눈앞의 이 상대와는 말이다.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보자. 첫 만남은 명함을 나눠주면서부터. 14살 어린 나이였지만 이미 자신의 명함을 가지고 있던 상대를 능란은 어린애로 대하지 않았다. 그야, 이미 화랑에는 그와 동갑의 체육관 관장도 있지 않던가. 단순히 나이만 갖고 어린애 취급을 할 것은 아니었단 말이다.
하물며 리드는 다 자라지 않은 마른 체구에 꼭 맞춘 정장을 한시도 벗지 않을 만큼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고 있었다. 얕보이고 싶지 않다. 간섭을 허락하지 않는다. 어린아이가 짓기에 유난히 완고한 표정은, 남이 저를 만만하게 보고 얕보거든 오히려 그것을 이용하기 좋은 것으로 쓰던 능란과 정반대의 것으로 그에 예민하단 것쯤이야 금세 알아차릴 수 있었다.
신경 써주어야겠다고 싶었다. ‘군’ 호칭도 쓰지 않고 대등한 눈높이에 맞춰서. 그게 저 사회에서 애쓰는 상대를 위해 해줄 수 있는 제 대우였다. 그랬는데,
「잠은 알아서 잡니다. 애 취급 마세요.」
돌아오는 것은 ‘관성적인 참견’이라는 냉랭한 대답. 오, 이걸 관성적인 참견이라고 받아들이는 너야말로 내 말을 전혀 귀담아듣고 있지 않잖아. 어린애라서 참견하는 걸로밖에 안 보이냐고.
「당신은 그냥 어린애가 커피를 마시는 게 마음에 안 들 뿐이 아닙니까?」
그것도 오답. 꼬투리를 잡을까 하다가 그만뒀다. 저 하나가 아니라고 부정해봤자 그의 앞에 쌓인 무수한 정답의 경험을 어떻게 무너트리겠는가. 멋대로 일반화시켜버리는 게 서운하다고 그걸 아득바득 정정해 고쳐주고 싶지 않았다. 이거야말로 차차 시간이 해결해줄 문제이리라 생각했다.
당장 지금만 하더라도 말이다. 제 마음을 알아주고 평범하게 대화하려고 무던히 노력하는 상대를 보며 능란 또한 말을 골랐다. 참견은 극구 거절하는 이 키높이구두의 소년에게 어디까지가 통할까 통하지 않을까.
하랑을 지나 나린을 건너 도원림까지. 아이스홍시는 복숭아만두에 이어 잘 익은 생과일로 바뀌었다. 이런 것도 먹어? 리드 씨는 단 건 좋아하는 편인가. 커피는 꽤 쓸 텐데. 생복숭아를 가볍게 졸여 부드러운 쉬폰 시트 위에 생크림과 같이 올린 작품이다. 제가 한 것이라곤 그렇게 나온 밀키트 같은 상품을 합체했을 뿐이지만. 컵에 담긴 디저트를 그에게 건네고 저 또한 숟가락을 든다.
“나는 화랑 토박이고, 화랑지방 바깥은 아는 게 별로 없거든. 노트 씨 회사도 처음 듣고 리드 씨 회사도 마찬가지고. 네가 고향에서 얼마나 편견과 참견에 저항해 싸웠는지 나로선 다 헤아릴 수가 없는데, 그래서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냐면.”
“내가 건넨 질문의 대부분은 리드 씨가 상상하는 수준의 더럽고 구리고 끔찍한 영역의 2할도 되지 않을, 그야말로 네가 염려하고 걱정하는 영역에는 닿지도 않을 것들이었단 거야.”
“뭐라고 비유해야 좋을까. ‘좋은 아침, 밥 먹었어?’라는 질문을 하고 ‘어, 먹었어.’ 정도의 답을 기대한 건데 상대가 내 아침 메뉴의 원산지를 알아내서 유통경로를 털어 독이라도 탈 셈인가? 같은 반응이 돌아온 거야.”
심각한 이야기를 웃으면서 하는 건 여자의 버릇이기도 했다. 잘 된 비유였어? 가볍게 묻는다. 리드 씨의 세계라면 그렇게 의심하는 게 당연한 건지는 모르겠는데 네 말처럼 타지방의 처음 만난 사인데, 우리. 설마 그런 걸 묻겠느냐니까.
“리드 씨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예민하게 해석해야 할 질문이 아니었단 뜻이야. 앞서도 말했지만 내가 궁금한 건 ‘쿠로테츠와 같은 케이스가 성공할 수 있겠느냐.’ 정도였고 거기에 대해 기대하는 답도 ‘쉽지 않겠다.’든지 ‘노력하면 될지도’ 수준이니까.”
“그리고 이걸 구구절절 풀어서 설명하는 이유는 내 질문의 의도를 알아달라는 이유보다는…….”
상대의 표정을 찬찬히 짚어보며 눈을 씩 휘었다.
“이런 적당한 질답도 있을 수 있다는 표본 제시다.”
──그치만 이번 기회에 리드 씨의 상세한 심정을 들을 수 있었던 건 좋았어. 한 숟가락 더 뜨며 다시 이야기로 돌아왔다. 네가 싫어했던 부분을 구태여 밝혀서라도 이해시키려 해준단 거잖아. 기쁜걸. 제법 가까워진 것 같아.
“쿠로테츠의 선례가 있고, 이치이의 희망이 있고, 리드 씨의 선이 있단 걸 알겠어. 세상에 같은 흑黑은 없다고 하는 것처럼 누가 더 잘못했고 악하고, 그러니 누구는 용서하고 용서하지 않고 그런 거야 내가 판사도 신도 아니고 따질 잣대는 없지만…… 리드 씨의 입장을 이해했어. 말해줘서 고마워.”
그리고 정말, 거기는 내가 끼어들 영역도 아니고 말야. 어깨를 으쓱였다. 손 씻고 개과천선하고 싶다고, 그쪽에서 먼저 도움을 요청해온다면 그때서야 생각해볼 문제지 지금은 오지랖이 아니겠어.
자, 길었다. 길었다. 다시 이야기를 돌리자고.
“커피는 잠 깨우려고 마시는 거야, 아니면 취향이야? 차도 괜찮아?”
다기를 꺼내 느긋하게 주전자를 데웠다. 일로 바쁜 사람을 붙잡아두는 건 아닌가 했지만 여기까지도 너그럽게 봐주겠지, 선의 가늠이다.
“아무래도 타 지방에서부터 가공해서 가져오면 신선함이라든지 본래의 맛을 좀 잃기 마련이지. 화랑의 과수원과 계약해서 현지에서 재료를 공급한다던 건은 어떻게 됐어? 위위가 사누스 밸리의 식품만 먹고 큰 건 아니기도 한데. 그래도, 가공과육이라도 여타 제품보다 훨씬 고품질을 제공받았으니까 효과가 있었으리라 생각해.”
그래서 말인데──
“리드 씨, 나랑도 스폰서 계약 해볼 생각은 없어?”
리드에게 그야말로 "난... 그냥 친해지려고." 짤을 써야 하는데 오해를 일으킨 지점에 있어서 능란의 초반의 업보가 있기 때문에 능란도 적극적으로 해명하고 어쩌고 하기보단 그래... 지금부터 잘하자! 한 거 같아요.
반드시 모든 이해가 필요하진 않다. 그리고 상대에게 필요하지 않다면 강요하지 말자, 였죠.
'포켓몬스터 : 피치럼블' 카테고리의 다른 글
062) 12.15. 태산이太山移 (0) | 2023.12.30 |
---|---|
061) 12.11. 자유自由 (0) | 2023.12.30 |
059) 12.11. 숭산崇山 (0) | 2023.12.30 |
058) 12.08. 극동의 도원향 : 나린체육관 도전 (0) | 2023.12.30 |
057) 12.04. 휴식休息 (0) | 2023.12.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