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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 03.10. 리필 다즐링

더보기 다즐링 친밀도 로그 문전박대라고 해도 좋았다. 당당히 집에 들어가 보지도 못하고 살금살금, 몰래몰래. 냐미링의 염동력으로 창문의 걸쇠를 열어 두 포켓몬은 겨우 에셸의 방으로 들어갔다. 가방 안이 부산스럽게 달그락거린다. 빨리 꺼내 달라고, 안 꺼내주면 저주해버린다고 징징거리는 바나링부터 코끝으로 톡 건드리고 이어서 저글링, 후와링, 다즐링까지 볼에서 나왔다. 하가링만이 웃어른답게 점잖게 볼 안에 있길 택했다. 제가 나가면 어떤 소동이 벌어질지 아는 것이지. 저로 인해 집이 무너져버리면 제 트레이너가 그렇게 꺼려하는 집에서 나올 수도 있겠지? 스케일이 다른 짓궂음으로 그런 생각을 안 한 것도 아니었으나, 여기선 트레이너를 믿고 얌전히 있을 타이밍이다. 둔치항의 바닥을 지배하던 포켓몬은 때와 장소를 ..

78) 03.10. 굴러가는 행복의 방향은

더보기 서머링 친밀도 로그 「스스로의 삶을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니까요.」 「그렇게 해서 행복해질 수 있다고 생각하면, 본능적으로 피하지 않았겠지.」 「그러고 싶지 않는 게 맞나요?」 「금방, 다녀오셨으면 좋겠네요. …기다릴게요!」 여러 목소리들을 안은 채 든든하게 집으로 향했다. 한 번도 집에 가는 일이 두렵다거나 무섭다거나 심지어는 꺼려진다거나 한 적이 없었는데 신기하고 놀라운 일이었다. 아직 어떻게 하면 좋겠다는 결심은 내리지 못한 채 무거운 마음을 안고 대문을 넘어 현관까지 향하자 할머니가 바깥에서 기다리고 계셨다. 서성거리던 할머니는 2달 만에 보는 손녀에 눈물이 그렁그렁해지셔서 에셸을 껴안아 왔다. “내 강아지, 바깥에서 험한 일만 당하고 와서 어쩌누. 아가.” 성인인 손녀도 그의 눈에는 마냥 ..

77) 03. 10. 사랑스런 대들보

더보기 저글링 친밀도 로그 샛별 체육관의 도전을 마치고 다음날의 한낮. 에셸은 우유푸딩을 만들고 있었다. 신선한 우유에 젤라틴을 녹이고 단맛을 조절하여 굳힌다. 어려울 것 없이 유리병에 몇 개나 되는 하얀 푸딩이 속속들이 채워졌다. 다 굳으면 캠프원들과 나눠 먹어야지. 만들다 남은 우유에는 과감하고 사치스럽게 홍차 잎을 듬뿍 넣고 끓여서 밀크티를 만들었다. 앵무새 설탕을 퐁당퐁당 넣어 홍차 향이 깊이 풍겨 나오는 그것을 후, 불어 마신다. 따뜻하고 달콤하고 노곤한 게 따로 천국이 없었다. 곁에서 밀탱크도 신선한 우유를 하나 퐁, 따서 꿀꺽꿀꺽 마신다. 에셸은 저글링 몫으로 피로슈키를 건네주었다. 그의 엔트리 중 인간과 비슷하게 식사를 하는 건 저글링과 서머링 뿐으로, 그마저도 서머링은 겉보기만큼 들어가는..

76) 03.09. 태엽이 감기는 소리

For.주노 더보기 「앞으로도 함께 이 떨림을 나눠주세요.」 계절이 하나쯤 앞서던 때의 어느 날이다. 실로 가볍게 내뱉었던 말이 세 달간의 여정을 관통할 줄은 그 때는 한 치도 몰랐다. 혹시 너의 캐이시는 그 때부터 이 미래를 보았을까? 기억의 태엽이 감기는 소리와 함께 실없는 의문이 느긋하게 흘렀다. 그 사이 보폭을 맞춘 걸음이 손과 나란히 이어졌다. 여전히 쉽지 않았다. 장갑 벗은 손을 보이는 게. 얼핏 스치면 티 나지 않을, 그럼에도 알아보고자 한다면 알아볼 수 있는 그 흉은 ‘무슨 일이 있었다’를 숨기지 못하게 했다. 그저 시선만 닿아도 어깨를 움츠렸다. 흉이면서 흠이었지. 그래도 너와 있을 때면 곧잘 벗었다. 손을 잡을 때, 머리를 만지거나 귓가에 닿을 때, 그러다 살짝 눈썹이라도 건드려볼 적에..

75) 03.09. 거리조절의 시간

For. 말라카이 더보기 싫어한다는 건 반대로 말해 그것이 제 약점임을 시인하는 것과 같았다. 그러나 언짢음이나 분노로 표현하지 않아도 제 의사와 상관없이 주어진 결핍이 그에게 상처를 만들었으리라는 건 눈에 선히 보였다. 열다섯의 말라카이는 더는 엄마 없는 집이 아니었음에도 여전히 그와 관련해 날선 반응을 숨기지 못하는 것처럼. 어머니가 있고 없고가 중요한 문제가 아닌 걸 테지. 이미 한 번 그의 마음에 깊이 흉을 남기고 만 그것은, 시시때때로 전혀 다른 자극에도 불구하고 부싯돌이 튀기듯 뜨겁고 붉게 소년을 태웠다. 진화鎭火가 필요했다. 너를 상처 입히려 하는 말에 넘어가 스스로를 상처주지 말라고 누군가는 알려주어야 했다. 하늘을 찌를 듯 마구잡이로 쌓인 젠가를 시간을 들여 하나하나 천천히 뽑아줄 손이 ..

74) 03.03. 샛별 체육관 On Air

더보기 샛별마을의 라이브 하우스에 당도하였을 때 에셸이 제일 먼저 느꼈던 건 귀가 먹먹할 정도의 소음이었다. 옆에서는 환호성을 지르고 머리를 흔들고 두 팔을 높이 뻗은 채 땀과 에너지를 쏟아내는 이도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그들의 환호와 즐거움, 그들이 느끼는 짜릿함을 공유하기에는 두통이 앞섰다. 전자음이 지잉- 울리는 멜로디를 감상할 여유도 없었다. 다음에는 이곳에서 체육관 도전을 해야 하는 건가. 체육관 관장 데코가 다루는 전기타입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선글라스부터 필수인데 대하기가 참 난처할 것 같다. 그런 생각부터 가졌다. 그러다 폐전력발전소에서 헬릭스단과 조우하고 여러 일들을 거치며 체육관 도전 이전에 제 발로 먼저 라이브 하우스를 방문할 일이 있었다. 데코의 초대가 있던 덕이지만 제안처럼 스트레스가..

73) 03.03. 산책

더보기 ──이것은 체육관에 도전하기 전날의 이야기다. 패스트푸드점에서 점심식사를 마친 에셸은 포켓몬들을 데리고 샛별에서 둔치로 넘어가는 근방을 걸었다. 저기로 가면 저희 집이 있답니다. 유일하게 에셸의 집을 아는 위키링은 조금 더 으스대며 언덕을 넘어 어렴풋이 보이는 등대를 가리켰다. 저 등대 다음으로 높은 곳에 에셸의 집이 있어~ 위키링의 설명에 포켓몬들은 우와아, 귀를 기울였다. 가보면 안 돼? 지금, 지금. 에셸의 팔에 흔들흔들 매달린 바나링에게 지금은 좀 힘들어요. 우리 단체 활동 중이기도 하고, ……집에 갔다가 잡히기라도 하면 어떡해요. 어머니는 열심히 참고 있었지만 언제라도 에셸을 잡아올 생각이 만만했다. 곧 둔치라는 걸 어머니도 아실 텐데 이를 어쩐담. 생각하며 그만 돌아가려던 에셸의 눈에 ..

72) 03.01. 사랑동이와 데인차

With. 심랑 더보기 핑복을 만나고 싶어서 배틀카페를 다니던 에셸의 눈에 때마침 운명의 엇갈림처럼 들어온 건 심랑 앞에 나타난 데인차였다. 가라르 지방으로 홍차 유통지를 얻기 위해 갔을 때 무수히 자주 마주쳤던 고스트 타입의 포켓몬이었다. 툭하면 에셸 주변으로 나타나 폴터가이스트 현상을 일으키는 덕에 위키링이 성가셔하곤 했었지. 하지만 홍차를 유통하는 사람으로서 꿈이 아닌가요? 포트데스의 마음을 얻으면 꿈에서나 마실법한 굉장한 홍차를 마실 수 있다고 하잖아요. 만약 조금 더 신중하게 고민했더라면 역시 참았을지도 모르지만─물론 운명은 참아지는 게 아니더라고요─에셸은 정말 이것이 어떤 인연이라고 생각하고 심랑에게 만남을 주선해주길 부탁했다. 그리고 현재, 심랑에게 부탁받은 사랑동이를 무사히 품에 안을 수 ..

71) 03.01. 고스트 웨딩

With.말라카이 더보기 혜성시티 의뢰, 남는 건 사진 뿐! 코스프레 사진관 「마임포토」의 전단지는 첫날 메이든에게 받았을 때부터 파일철에 담겨 에셸의 가방에 고이 담겨 있었다. 이런 건 놓칠 수 없죠~ 사진은 찍는 것도 찍히는 것도 좋아한다. 무엇보다 사진으로 남기는 것을 좋아한다. 이왕이면 혼자 가긴 쓸쓸하고 누구와 함께 갈까. 기회를 벼르던 중 에셸의 레이더에 걸린 건 말라카이였다. 이런 걸 왜 찍는 거야. 그보다 내가 찍어서 누가 좋아한다는 거야. 말라카이 소년과 함께 여행을 한지 어언 2달. 에셸은 그가 스스로에게는 대단히 무관심하다는 걸 이제 알았다. 분명 찍으면 다들 좋아할 거라니까요. 적어도 제가요! 결국 설득에 성공해 말라카이를 옆에 데리고 메이든에게 사진관까지 가는 법을 상세히 들었다...

70) 02.28. 파도 소리와 흰 밤

For.주노 더보기 때로는 사진으로 남기지 않아도 망막에 새겨지는 풍경이 있었다. 아름다운 풍경은 그 자체만으로 위로가 된다. 누림마을에서 시작해 혜성을 지나고 다라를 거쳐 살비에 이를 때까지 얼마나 많은 풍경을 눈에 담고 기억했을까. 그때마다 두 사람분의 발자국이 이어졌다. 꼭 지금처럼. 그래서일까. 없으면 서운할 것만 같아 약속을 한 것도 아니면서 그를 찾아갔다. 나름의 어리광이라는 걸까. 「에스코트는, 항상…… 해드릴 테니까.」 저한테 연습하라던 말이 파도를 따라 밀려들었다. 차박차박 물길을 밟으며 그 때 하지 못한 답을 고민했다. 그러나 생각나는 거라곤── 집사복 잘 어울렸지. 예쁘게 넘긴 머리에 모노클까지. 제법 태가 났었는데. 홍차도 허브티만큼 맛있었어. 마담들에게 인기가 많아 보이던데. 결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