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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02.28. 어둠이 걷힐 때까지

더보기 냐미링 친밀도 로그 사건이 끝난 뒤 모두들 그저 제 한 몸 간수하기 벅차 복잡한 감정과 피로가 뒤섞여 숙소로 들어왔다. 이런 날까지 누군가와 부대껴 공간을 나눌 여유도 없었기 때문일까. 다들 긴 말 하지 않고 각자의 방을 찾아 뿔뿔이 흩어졌다. 바로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해변가에서 바비큐를 구워 먹고 불꽃놀이를 즐기며 떠들썩했더라는 게 신기루만 같을 정도다. 숙소 로비는 적막이 짙었다. 가끔 나지막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이들도 있었지만 모두 조심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타인의 안에 잠든 감정도, 제 안에 들끓는 감정도 섣불리 건드릴 수가 없어서. 그런 점이 캠프 사람들의 상냥함을 증명하는 것도 같았지만. 느슨한 미소가 그려졌다. 로비를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냐미링. 오늘은 당신에..

68) 02.28. 용서

더보기 9주차 리포트::용서 너무 많은 일이 지나갔다. 피곤함에 눈을 꾹꾹 누르면서도 하루 동안 벌어진 일을 정리하기 위해 에셸은 늦은 밤, 태블릿PC를 열었다. 서두는 부모님에게 보내는 안부였다. 「우선, 저는 무사하니까 모쪼록 걱정하지 마시라는 말씀부터 전할게요. 둔치시티까지 가깝기도 하고,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연락드릴 테니까요. 이쪽은 상황이 어수선해서 찾아오시지 않아도 괜찮아요. ……그쪽에선 경찰청의 움직임은 없던가요?」 문장을 가다듬어 둔치시티의 상황을 살피는 연락을 마치고 겨우 한숨을 돌린다. 그동안 포켓몬들도 깨어서 그를 기다려주고 있었다. 붕대가 감긴 손을 뻗자 바나링이 제일 먼저 매달려 왔다. 볼에 가만히 있던 시간이 어지간히 답답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다행이었다. 여정이 힘들 것을 ..

67) 02.26. 열을 식히는 시간

더보기 살비마을 의뢰, 수영복과 건강검진 시합이 끝나고 포켓몬들을 모두 회복시킨 에셸은 나가려던 길에 전단지를 발견했다. 고래왕자를 타고 바다로 나가 야생 포켓몬의 건강검진을 해준다─는 취지의 전단지였다. 그렇지 않아도 아직 바다 한 번 나가보지 못했는데. 막 센터에서 회복하긴 했지만 움직이기에 무리가 없는지 제 포켓몬의 상태도 확인할 겸 바다에 잠길 겸 에셸은 아직 해가 저물기 전에 포켓몬들과 바다로 나가기로 했다. “이 아이는 얌전한 아이니까 걱정하지 마시고. 오른쪽 지느러미 위를 쓰다듬으면 신호를 알아차릴 거예요.” “고마워요. 그럼 다녀올게요~” 후와링의 아래로 기구처럼 상자를 달아 거기 바나링과 서머링을 태운다. 위키링은 직접 날아갔고 저글링은 에셸과 함께 고래왕자 위에 누워 물살을 즐겼다. 해..

66) 02.26. 노을이 담긴 잔

For. 안드레이 더보기 아직 성장할 곳이 많이 남은 꽃봉오리 같은 땅이었다, 이곳 라이지방은. 지금도 이것만으로 많이 개발되었지만 그가 어릴 적에는 더 아무것도 없이 텅 비고 척박했지. 그 환경이 너와 그에게 서로 다른 감정을 불러일으킨 모양이었다. 누군가는 그래서 이 땅이 꽃피길 바라며 다른 세계를 보고 왔고, 누군가는 그래서 이 땅에 뿌리 내리길 바라고 찾아와 터전을 바꾸었다. 그러나 서로 꿈꾸는 바는 달라도 결과는 같은 것으로 이어진다 생각했다. 행복이다. 다른 이가 아직 차지하지 않은 땅, 손대지 않은 파이. 헐벗은 곳을 갈고 엎어 씨 뿌리고 일궈내면 온전히 나의 성과로 삼을 수 있는 땅. 말은 매력적으로 들리나 그 길이 결코 쉽진 않았을 것이다. 나고 자란 땅을 떠나와 뿌리 잃은 나무처럼 배회..

65) 02.26. 살비 체육관 내방

더보기 어둠대신 시절에 다크펫나이트에 많은 관심을 보이던 바나링은 진화하고 나자 신기할 정도로 메가스톤에 관심을 뚝 끊었다. 에셀의 물건을 숨기던 버릇도 사라진 것으로 보아 메가진화에 대한 관심보다 자신의 물건이라는 것에 대한 집착이었던 걸까. 에셸로서는 다행이었다. 만약 바나링이 메가스톤을 탐냈다면 어떻게 이해시켜야 하나 조금 막막한 기분이었기에. 메가다크펫에 대한 도감 설명은 알에서 바나링이 태어났을 시절부터 이미 몇 번이나 읽어둔 항목이었다. 메가진화를 염두에 두어서 한 것은 아니며 단지 제 포켓몬이니 빠짐없이 알아두어야지 생각했을 뿐이다. 메가진화를 할 일이 있을 줄은 생각도 해본 적 없었다. 그래서 돌을 선물로 받았을 때는 고민이 깊었다. 서로 사랑하고 신뢰하는 가족 사이에서 자란 에셸은 포켓몬..

64) 02.26. 쿠킹 타임!

더보기 살비마을 의뢰, 일일 보모! 화창하고 맑은 토요일 낮. 타도 오트를 외치는 두 트레이너가 모였다. 참고로 어제는 체육관에서 고배를 마시고 온 동지이기도 하다. “마침 기분전환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목새 체육관 생각만 온종일 한 탓인지 모처럼 살비에 와서 다른 구경은 하지도 못했거든요.” 맞아요. 그건 정말 아쉬운 일이에요! 맞장구를 치는 비비안느는 정작 에셸과 다르게 살비에서의 생활도 상당히 만끽한 것으로 기억한다. 안네는 요령이 좋으니까요. 에셸 본인도 어디 가서 요령과 성실함은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했으나 비비안느는 그 이상을 보여주곤 했다. 이게 바로 코어근육의 힘……? 이 생각을 들켰더라면 다시 운동하자는 습격이 있었겠지. 덧붙여 비비안느와 운동하기로 약속한 뒤 에셸은 착실하게 산책과..

63) 02.25. 목새 체육관 입성

더보기 어쩐지 굉장히 오랜만인 것 같다 했더니 3주 만의 체육관 도전이었다. 캠프를 시작하고 3주 동안은 쉬지 않고 챌린저를 하다가 갑자기 3주를 덩그러니 쉬었더니─엄밀히 쉬지는 않았다. 에셸은 체육관이 아니더라도 바빴다─허전할 만도 했다. 특히 지난주에는 스스로도 깜짝 놀랄 만큼 도전하지 못해서 큰 아쉬움을 느꼈다. 새로운 체육관, 멋진 관장님과 잘 훈련된 포켓몬, 도전, 할 수 있는 데까지 온 힘을 다해 팔을 뻗는 경험을 눈앞에 두고 하지 못하다니. 캠프 동료들을 응원하는 것으로 마음을 달래려 했지만 생각보다 직접 서지 못하는 아쉬움이 남아 서먹할 정도였다. 멋지다……. 눈부시게 도전하고 승리를 거머쥐는 사람들을 보며 그런 마음만 가졌지. 스스로도 몰랐던 즐거움과 도전정신을 자각하는 것만으로도 지난 ..

62) 02.24. 알아가는 시간

For. 말라카이 더보기 알아가는 시간을 갖자. 그렇게 마음을 굳힌 에셸은 독니를 세우고 꼭 캠프 초창기로 돌아간 듯 모든 것을 거부할 것만 같은 말라카이에게 진정하라는 손짓을 했다. 그 이상 다가가지 않을 테니까 거기서 들어주세요. 일종의 휴전신청이었다. 당장에 자리를 박차고 나가지 않았을 뿐 그는 여전히 네 말이라면 듣기 싫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선명한 거부에 자연히 한숨이 터지려 했으나 에셸은 이를 참았다. 그저 제 마음이 답답할 뿐이지만 여기서 한숨을 쉬어봤자 역효과일 것이 뻔했다. 대신 태연을 가장하여 차를 우렸다. 언젠가 그와 첫 대화를 나눌 적의 홍차였다. “어느새 제법 익숙해진 것 같더라고요.” 홍차 마시는 일을 가리켰다. 아침에 일어나 스트레이트의 차를 찾는 네가 놀랍게도 자연스러워 ..

61) 02.22. 꿈을 먹을 시간

더보기 냐미링 진화 로그 (몽나->몽얌나) 호숫가에서 산책을 마치고 돌아온 그 날 저녁, 에셸은 냐미링과 둘이서 방에 있었다. 조용한 방 안은 수많은 인형들과 꿈과 평화로 가득했다. 이곳은 정말이지 좋은 꿈을 꾸기에 제격이다. 살비마을이라는 곳 자체가 그랬다. 모든 봄이 이곳에 담겨 있는 것만 같았다. 수많은 알들이 모여 잠자는 곳, 무수한 여행자들이 발길을 멈추고 쉬어가는 곳. 저 멀리 관동지방에는 시작의 마을이라 불리는 곳이 있다고 한다. 라이지방에서 그 이름을 붙인다면 살비가 아닐까. 부드러운 파도가 밀려오고 쓸려나가고, 라이지방의 어느 곳보다 따스한 기후가 각자의 시작과 휴식을 반긴다. 그래서 이곳이 알맞았는지 모른다. 냐미링은 에셸에게 달의 돌을 건네주었다. 돌의 표면을 매만진다. 벌써 사둔지 ..

60) 02.22. 상담 시간

더보기 철도도시락 사용 한숨도 못 잘 것만 같았던 하룻밤이었으나 피곤한 탓이었는지 에셸은 그대로 방에서 기절하듯 잠이 들었다. 그럼에도 몸은 정직해 눈을 떴을 땐 아침이었다. 바나링은 밤새 무얼 하고 왔는지 꼬물꼬물 얌전하게 에셸의 옆에서 자고 있었다. 그제야 에셸은 진화한 다크펫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어렴풋이 눈대중으로 보아도 도감보다 팔이 더 길어 보였다. 욕망의 발현이었을까. 위키링은 에셸의 곁에 있었다. 늘 그랬듯. 이제 발치에 있는 대신 멋진 샹들리에를 흔들며 둥둥 떠 있었지만 변함없이 그 자리였다. “위키링. 바나링이 옆에 있어도 괜찮아요?” 어제는 그렇게 쫓아내더니 용케 방에 들어오게 해주었다 싶었다. 위키링은 동그랗게 빛나는 노란 눈을 내려 에셸을 응시해왔다. 더 이상 밀랍 시절의 다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