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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 오늘의 전투 3월 10일

처음이자 마지막, 우리 모두의 이야기 어제 노바 단체를 제압하는 일을 마무리 짓고 나서, 간신히 숙소를 빌린 캠프는 정말 초상집이 따로 없었어요. 초상집이라면 초상집이었겠죠. 우리가 알던 사람이 죽은 것이나 다름없었으니까요. 저는 괜찮았냐고요? 이럴 때 제 얘기는 하지 말도록 해요. 중요한 건 저보다도 다른 상처 입은 사람들이었으니까.신뢰는 배신당하고 신의는 땅에 떨어지고 기대마저 잃고 나면 남은 건 오로지 실망과 슬픔뿐이었어요.세상은 여전히 캄캄한 채였는데요. 간신히 위아래 사방이 가로막힌 답답한 방화벽에서 나와도 별빛마저 죽어버린 것 같은 어둔 도시에서 빛나는 것이라곤 오로지 하늘의 뿔뿐이어서, 이 세상에 끝이 온다면 이런 풍경이지 않을까 했어요. 인간이 만든 인공의 빛은 모두 거두어지고 오직 전설적..

118. 오늘의 일기 3월 10일

포켓리스트가 연결되자마자 제일 먼저 수도 없이 많은 아빠의 메시지와 부재중 연락이 쏟아졌어요. 빼곡히 저를 걱정하는 메시지에 하나하나 다 읽지 않아도 마음이 뭉클해질 것 같았지 뭐예요. 동시에 하나하나 다 읽기에는 너무 피곤해서, 괘씸하게도 읽는 건 나중으로 미루고 바로 아빠에게 괜찮다는 전화를 하려고 했어요.그러다 발견한 거예요. 아빠의 연락 사이사이로 엄마의 메시지가 끼워져 있는 걸. 보자마자 눈을 의심했어요. 엄마가 왜? 한 번도 먼저 연락한 적이 없는데. 아빠가 엄마에게도 연락한 걸까요. 그래서…? 그렇다고 해도요.엄마에게 먼저 연락을 해야 할까요. 통화 버튼을 눌러볼까, 아빠부터 연락할까. 머뭇거리던 때였어요. 마음의 준비를 할 새도 없이 엄마에게 전화가 왔어요. 그리고 제가 전화를 받지 못하고..

117. 오늘의 전투 3월 9일 전투

그 첫 번째, 테루테루의 차례엄마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억은 연구를 하던 모습. 어느 정도 인지를 갖추고 나서부터는 그 연구가 무엇인지 흥미를 가졌어요. 그리고 엄마의 기록들을 하나하나 읽어보았죠. 그렇게 해서 엄마를 따라가고 싶었어요. 남긴 발자국을 뒤따랐어요.엄마의 연구의 시발점은 세계를 창조했다고 전해지는 진위 여부도 확실치 않은 포켓몬이었어요. 아무것도 없던 공간에서 아르세우스가 빚어졌고 그로부터 시간이 분리되었고 공간이 분리되었다고 하는 전설의 포켓몬. 이를 위해 엄마는 거의 집에 없었어요. 어쩌다 한 번 들러도 전부 다른 목적이 있었다죠 가족을 위해 들른 적은 있던가. 기억나지 않네요.라이지방의 트레이너 캠프에 합류하기로 한 뒤, 나야 박사님과 1대1의 면접을 치렀어요. 나야 박사님에 관한 인..

116. 오늘의 탐색 3월 9일

발전소의 방화벽 안에 갇힌 지 만 하루쯤 지났어요. 그 사이 저는 벽을 보고 많은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고요. 사실 제 기분이 이상하고 침침했던 건 단순히 햇빛을 보지 못한 탓이에요. 제 특성은 리프 가드라고 자주 말했었는데, 햇빛이 없으면 네거티브 폼이 되는 건 테리만이 아니거든요.그게 아니더라도 마치 여기저기 모난 돌이 된 것처럼 태도가 영 이상했더라면, 마치 나쁜 짓을 저지르기 직전의 아이가 된 것만 같다고 스스로 느끼고 있던 거겠죠.꼭 전부를 아는 게 좋은 것은 아닐 거예요. 또 알아선 안 되는 것도 있을 수 있죠. 하지만, 눈앞에 놓인 완성된 요리를…… 비유하자면 말이에요. 이것이 어떤 과정을 거쳐 완성되었는지 무지한 채라면 그저 요리만을 눈앞에 둔 채 마음껏 설렐 수 있지 않을까요?애석하게도 완..

115. 오늘의…… 3월 9일

For. 니켈 열네 살의 아이는 또래에 비해 기민한 편에 속한다. 비단 동작이 잽싸거나 눈치가 빠른 것만이 아니었다. 예민하고 대화의 기류를 읽을 줄 알았다. 사람들이 자기를 두고 숙덕거리는 많은 말 또한 명료히 이해했다. 무엇이 문제인지 알고 무엇을 걱정하는지도 알았다. 그래, ‘안다’당신이 왜 제 옆에 앉았는지, 무얼 걱정하는지.“호기심 때문에 가시는 건가요?”그렇기에 답을 할 수 없었다.그가 우려하는 것은 무엇일까. 호기심만 갖고는 갈 문제가 아니에요. 당신이 커다란 충격을 받을지도 몰라요. 아이는 좀 더 보호받아야 해요. 그렇게 말할까. 눈앞의 어른은 아이를 아이답게 자라도록 언제나 신경을 기울여주곤 했다.정말 책임지실 수 있어요? 한 개인이 충격을 받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니라 지방 전체에 문제가..

114. 오늘의 일기 3월 8일

첫 번째, 제 의무에 관한 이야기 「저는 이 사태를 알 의무가 있어요.」권리도 아니고 책임도 아니에요. 이건 저의 의무예요. 혹은 사명감이에요. 연구자로서의. ──라고 하면 너무 거창해 보일까요. 하지만 저는 여기에 어떤 의무감을 느꼈어요. 보고 기록하고 기억해야 한다고.여기까지 오는 동안 여러 이야기를 듣고 나누었어요. 누군가는 이 사태에 우리가 책임감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고 하고 누군가는 이것은 인류의 잘못이며 우리도 잘못이 있다고 했죠. 누군가는 적어도 이 사태에 관여한 사람으로서 우리가 나서야 한다고 했고 누군가는 왜 우리에게 책임을 전가하느냐고도 했어요.그 사이에서 저는, 우리가 무언가 해내야 할지도 모른다는 게 부담스럽기도 하고 어째서 우리가 해야 하는지 부당하다고 느끼기도 하고 막막하기도 했..

113. 오늘의 일기 3월 7일

생각하는 사람과 생각하는 포켓몬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정확히 말해서 우리는 무언가를 생각하고 의심하는 동안 그 의심하고 있는 ‘우리’의 존재를 의심하거나 부정할 수 없다는 이야기예요. 언젠가 포르티스 씨와 이거랑 조금 관련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어요. 우리의 존재는 무엇으로 증명할 것이냐, 이죠. 그거랑 닮은 이야기도 되겠네요.어렵게 일기의 서두를 떼버렸는데요. 제가 하려는 말은 즉 지금 생각하고 있는 저는 아주 생생히 존재하고 있다는 거예요. 그렇다면 무슨 생각을 하느냐고 한다면, 챌린저 디모넵에 관한 생각이에요.저는 무엇을 위해 도전하고 있는가. 라거나 어떤 목표를 가지고 있는가. 챌린저라고 하면서 어디에 도전하고 있는가. 따위를 말이죠.이제 와서? 라고 할 수도 있지만 이제 와서예..

112. 오늘의 일기 3월 6일

모두와의 반성 시간, 그 녀석과의 상담 시간 오늘은 오랜만, 이라고 해야 하나. 이렇게 말하니까 그 동안 제가 조금 잘났던 것도 같네요. 그렇지만 참 오랜만인 이야기로 체육관전에 도전해서 지고 말았어요.포켓몬 센터에서 모두를 회복시키고 다른 사람들의 체육관전을 마지막까지 지켜본 다음에야 저는 체육관을 나왔어요. 커다란 건물에서 나오는 사람들은 각자 떠들썩하게, 자신의 내일의 차례를 준비하거나 오늘의 승리를 축하하거나 혹은 저처럼 재도전을 결심하거나 하는 것 같았어요.살비마을은 무척 따뜻하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혼자 걷는 밤공기는 조금 쌀쌀맞은 것처럼 느껴지더라고요. 제 기분 탓이겠죠.“그럼 패인을 이야기 해보자.”우리는 모두 함께 밤바다 앞 모래사장에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첫 번째 패인은 역시 ..

111. 오늘의 일기 3월 5일

그 첫 번째, 아름다운 샤로다 풀 타입을 언제부터 좋아했느냐, 풀 타입의 어떤 점을 매력으로 느끼고 좋아하느냐. 묻는다면 아마 수없이 많은 답을 줄 수 있을 거예요. 가장 좋아하는 풀 타입을 대라고 한다면, 망설임 없이 체리꼬! 하고 답할 테지만 그 뒤를 이어서 냄새꼬랑 라플레시아도 좋아하고요. 이상해꽃, 토대부기, 통통코와 아르코, 엘풍, 무스틈니, 철시드……, 여기 이름을 다 언급하지 못하더라도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풀 타입의 친구들을 좋아해요.아마도 엄마의 그림자를 좇지 않고 스스로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것 중 하나. ──라고 해도 풀 타입이 좋은 건 분명 꽃집을 운영하는 환경의 영향일 테지만요. 풀 타입의 친구들과 함께 할 때면 다른 수많은 것들을 잊고 오로지 그 아이들과 함께 ..

110. 오늘의 아르바이트 3월 5일

그 첫 번째, 과수원 도우미 “우와아아아.”모두 함께 나무열매 수확을 도우러 과수원에 발을 들였어요. 그러자마자 나온 건 자연스러운 탄성이에요. 꽃향기마을은 꽃밭으로 덮인 곳이라서, 물론 과수원도 있지만 살비마을 정도의 규모는 아니었거든요. 이곳의 비옥한 땅은 그리운 고향, 혹은 그 이상일 것만 같아서 저는 서둘러 사진부터 찍었어요.“아빠에게 보여줘야지.”과수원은 키우는 나무열매의 종류에 따라 종으로 횡으로 늘어져 있었는데 같은 색의 열매들이 열을 이루는 건 정말 말로 다 설명 못할 만큼의 장관이었어요.“아앗, 잠깐. 테토! 맘대로 먹으면 안 돼. 테마리 너도 뭘 글러브도 닦고 있는 거야! 이건 우리 먹을 거 아니니까.”잠-깐-만, 테오, 스토오옵!! 저 날다람쥐 녀석! 제가 날아서 쫓아가지 못한다고 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