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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없이, 더 많이

: 루 모겐스 *소란이 들린다. 떠들썩한 목소리들이 뒤섞여 무어라 하는지 알아듣기 어려웠지만 귀를 쫑긋 세우고 있으면 한 데 뭉쳐 덩어리진 목소리들을 따로 떼어 들을 수 있었다. 귓가에 손을 올리고 섬세하게 소리들을 분류하여 담아낸다. 그러면 하나, 하나, 스포트라이트를 받듯 선명하게 귀에 담겼다.아빠, 안아줘. 엄마 저거 사줘. 어린아이의 떼를 쓰는 목소리와 그래 그래, 어르고 받아주는 어른의 목소리. 잘 휘저어 녹인 사탕 같아. 그리고 단단하게 굳겠지. 조금 더 귀를 기울이면 다리 아프지 않아? 손잡고 걷자. 다정하게 사랑을 속닥거리는 연인의 목소리, 이건 꼭 솜사탕 같고. 폭신폭신 가볍고 사르르 녹을 것만 같아. 친구들이 왁자지껄한 목소리도 들렸다. 이번엔 저거 구경해. 내가 이기면 이따 네가 한 ..

with.루 2018.10.07

34 가라앉지 않은 그 아침

※ 이하의 로그는 coc 시나리오 vivi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시나리오를 플레이 할 예정이 있는 분은 열람하지 말아주세요. : 시나요리 아리사 전구의 불빛이 깜빡인다. 혹시 밤이 찾아와도 전부가 어둠에 가라앉지 않도록 켜둔 옅은 조명에 세이라는 손등으로 눈을 문지르며 깨어났다. 동그란 전구의 은은한 빛 덕분에 어렴풋 방의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바깥은 아직 해 뜨기 전의 새벽인 것 같았다. 해 뜨기 전, 검은 장막에 가려진 공기는 여름이 물러갔다는 실감이 들도록 서늘하고 조금 축축했다.드러난 맨 어깨가 싸늘했다. 목을 움츠리며 이불 안으로 다시 파고들면 따뜻한 공기가 그녀를 감싸주었다. 이불 아래, 체온과 체온이 맞닿을 듯 조심스러운 거리, 온기는 그 틈에서부터 피어오르고 있었다. 밤을 지새..

33 손, 뺨, 높낮이

: 시나요리 아리사 어린 시절에는 그렇게 차이가 나는 줄 모르는 채였다. 말라서 더 길게 보이는 팔다리 덕에 한참 큰 것 같았지만 막상 가까이 다가가면 눈높이는 엇비슷하였고 손을 내밀어 맞잡으면 아이답게 따뜻한 체온이 제 손에 알맞게 들어왔던 기억이 난다. 찻잔을 쥐던 섬세한 손가락, 이마를 덮는 덥수룩한 머리카락과 그 틈새로 보이던 순하고 다정한 빛. 동갑내기의 잘 웃던 그 아이. 그렇게 나란할 줄로만 알았다.쭉 어린 아이인 채로는 있을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꼬박꼬박 정중한 존대를 구사하고 수줍은 빛으로 뺨을 물들이고 조용한 목소리를 내던 아이는 어느새 훌쩍 자라 눈이 따라갈 수 없는 높이에 우뚝 서버렸다. 제 손을 모두 덮고도 남을 만큼 자란 손발, 더욱 길쭉해진 팔다리. 단정하게 다듬어진 머..

32 ___에게

: 엔딩 로그 ___에게.오늘은 날씨가 무척 좋아요. 햇살은 따사롭고 바람은 포근하고. 불어오는 바람이 조금 따뜻한 것도 같던데 이제 곧 여름이 다가오려는 걸까요. 벚꽃이 다 져버린 건 아쉽지만 꽃잎이 진 자리로 푸르른 새 잎사귀가 돋아나는 풍경 또한 무척 곱네요. 나무가 옷을 갈아입을 때마다 계절이 달라지고 있다는 실감이 들어요. 집 앞에 커다란 감나무도 있는데 말이죠. 가을에 감이 열리면 무척 맛있단 이야기도 들었답니다. 벌써부터 가을이 기대되겠어요.새 집에 대한 감상을 말하자면 이제야 겨우 저희 집이라는 느낌이 드는 것 같아요. 막 이사 왔을 당시엔 새 집 냄새도 적응이 안 되고 물건들의 위치도 정신이 없고…… 남의 집이란 느낌이라 발소리 하나까지 조심하며 지냈는데, 지금은 집에 돌아오면 다녀왔습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