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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침몰

: 개인 로그 “♪~♬~♩……♩~♩~♬~♪……───.”슬픔에 무게가 있다면 세이라는 아마도 영영 떠오르지 못한 채 바닷속으로 깊이 깊이 잠겨버리고 마리라 생각하였다.슬픔에 무게가 있다면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하고 허우적거리는 것조차 못하고 캄캄한 저 심해로 가라앉아버리고 마리라 생각하였다.침몰(沈沒)하리라 생각하였다.・・・「할머니께서 몸이 안 좋아지셔서 말이다. 어떻게 겨우 허락을 받아서 내가 대신 왔단다. 미안하구나, 세이라쨩.」지난 가을의 일이다. 막 중간고사를 마치고 면회일만을 손꼽아 기다리던 세이라는 기다리던 얼굴이 아닌 조금 낯선 사람과 재회했다. 낯설지만 재회였다. 그도 그럴 게, 고향을 떠나온 뒤 처음 만나는 것이었으니까.「아니에요, 아주머니. 여기까지 먼 길 찾아와주셔서 감사드려요. 할머..

09 승급

여기서부터 중등부→ : 아타고 유이 조심스럽게 몇 송이 꽃을 그러모아 그녀에게 내밀었다. 이제는 달라진 호칭을 입에 담으며 활짝 웃었다. “유이 씨~ 더블 승급, 축하드려요.”내밀어진 꽃을 받으며 그녀는 어떤 표정을 지어 보일까. ……혹시 웃어줄까? 설렘이 표정에 담긴다.・・・초등부 마지막 해에 룸메이트가 된 것이 계기였다. 처음엔 무뚝뚝하고 퉁명스런 표정을 한 그녀에게 다가가기 조심스러웠다. 혹시 이런 걸 싫어하는 성격이면 어떡하지. 나를 좋아하지 않으면 어쩌지. 애석하게도 세이라는 이런 데서 먼저 나설 만큼 적극적인 성격이 되지 못했다.그럼에도 말을 걸었던 건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 학원에 온지 얼마 되지 않았을 적의 불안이나 우려, 걱정 따위를 알기 때문이었다. ──유이는 그런 걸 느끼지 않았을지도..

08 소리가 닿는 곳

: 시나요리 아리사 아이의 고향은 파도 소리가 멎지 않는 곳이었다. 창틈으로 햇빛이 흘러들기 시작하면 철썩, 처얼썩. 바람을 따라 부표 위로 물결이 파도치는 소리가 들렸다. 갈매기가 우는 소리, 배의 엔진 소리, 선원들의 고함, 많은 소리소리가 소금기를 머금은 바람과 함께 창틈을 비집어 아이의 아침을 깨웠다.어린 날의 아이는 할아버지의 손을 붙잡고 배를 타러 나가는 일이 잦았다. 작은 통통배였지만 할아버지 취향의 멋들어진 뱃고동이 달려 있어 그 소리가 널리널리 울려 퍼지는 것이 좋았다. 고기 다 도망간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할아버지는 아이가 고동을 울리는 걸 제지하지 않았다.앨리스는 아이의 손이나 발과 같은 것이었다. 태어날 때부터 발현된 능력, 걷는 것보다 빨리 사용하던 것. 손이 달린 것을 이상하게 ..

07 따스한 밤의 소리

: 시나요리 아리사 「세탄을 더 기쁘게 해주고 싶어요.」앨리스를 사용하지 않아도 전해오는 그의 마음에 두근두근하고 심장의 고동을 느꼈다. 두근거림의 색으로 뺨을 물들이며 방긋 웃었다.“지금도 충분히, 시나요리 군 덕분에 기쁜걸요?”───소년이 학원에 온 지 이제 갓 1년이던가. 그녀와 마찬가지로 소리와 관련된 앨리스였기에 막 그가 학원에, 초등부 B반에 왔을 당시 조금 더 관심을 갖고 지켜보았다. 덕분에 기억하고 있었다. 특별능력반으로 배정을 받았지. 같은 소리지만 같지 않은 소리. 그가 내는 소리는 어떠한 음색일까 궁금하게 여겼다.세이라가 1년 간 지켜본 시나요리 아리사는 온화하고 얌전하지만 마냥 어른스럽지만은 않은, 또래다운 얼굴도 보이는 소년이었다. 물건 찾기를 할 때도 그랬다.「밤을 밝힐 수 있는..

06 당신의 행복

: 오토나시 토오루 한 번도 사람을 쓸모의 기준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사람만이 아니었다. 할머니는 세이라와 함께 센베를 굽거나 마당 앞을 쓸면서 아이에게 늘 일러주었다. 모든 생에는 저마다의 가치가 있다고. 센베를 구울 때 부채질하는 불의 생에도, 나뭇가지 끝에 매달렸다 떨어지는 낙엽의 생에도.할아버지는 세이라를 배에 태워 바다로 나가며 함께 일러주셨다. 저 바다 속 물고기의 생에도, 물고기를 노리는 갈매기의 생에도 저마다의 가치가 있다고. 그러니 우리는 어떠한 생에, 삶에 함부로 우리의 잣대를 갖다 대서는 안 된다고.그렇게 자라온 세이라에게 눈앞의 소년, 오토나시 토오루의 말은 대단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었다.「제가 오토나시 군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면요? 당신에게서 어떠한 도움도 찾지 않는..

05 나의 앨리스

: 초등부 중간고사 과제 오래된 주전자에 차를 담아 책상 옆에 올린다. 그 옆에는 마찬가지로 오래된 작은 인형이 하나. 새 물건을 사는 일이 좀처럼 없는 세이라의 물건들은 대부분 이렇게 세월이 느껴지는 것들이었다. 그녀의 성격을 나타내는 것 같기도 했다.고양이 인형을 톡톡 두드리다 빙그레 웃으며 세이라는 머그컵에 차를 따랐다. 이 머그컵은 드물게도 그녀가 가진 것 중 새로운 것에 속했다. 교생 선생님이 찾아오면서 나눠준 선물, 중에서도 친구와 교환한 것. 머그에 차를 따르자 향긋한 냄새가 피어올랐다. 오늘의 차는 벚꽃차였다. 그러고 보니 바깥에서도 꽃이 후두둑 떨어지고 있었지. 세이라가 이렇게 차를 준비하며 책상 앞에 앉은 것도 시험지를 작성하기 위해서였다.초등부 B반 세탄 세이라백지 위에 이름부터 적어..

04 색(色)

: 타카하타 이노리 “세탄은 나랑 이야기 나누는 게 말한 것처럼 행복하진 않은가 봐!”그 말에 일순 눈동자가 흔들렸다. 동요를 감추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그의 눈에 자신은 어디까지 비쳤을까. 저도 모르게 물러나던 발 아래로 돌이 밟혔다. 아…, 밟힌 바닥이 조금 아프다고 생각했다.행복이란 감정을 실감한 마지막 시기는 언제였을까. 타카하타 이노리를 눈앞에 두고 세이라는 문득 생각했다. 행복을 잊었다거나 느끼지 못한다거나 그런 이야기가 아니었다. 세이라는 스스로 행복하다고 느끼고 있었다.정확히 주어진 만큼의 행복을.그러나 언제나 행복의 앞에는 다른 감정들이 우선해 있었다. 감정으로 이루어진 돌을 하나씩 하나씩 쌓아 탑을 이루듯, 세탄 세이라라고 하는 아이를 채운 감정의 탑에서 행복은 저 아래에 깔려 있었다..

03 아이의 조건

: 아오노미야 미조레 13살은 아이일까, 아이가 아닐까. 아이가 아니라면 어른이라 표현해야 할까. 청소년이란 명칭을 굳이 가져와도 좋다. 중요한 건 무엇이라 부르느냐가 아니었다. 스스로를 어느 지점에 있다고 여길 것이냐, 였다.「미조레 군. 그렇게 말할 때면 13살이 아닌 것 같아요.」「세탄이 생각하는 순진한 아이란 건 어떤 걸까요~?」「그런 질문을 하는 시점에서 미조레 군은, 이미 아닌 것 같은데.」부러 정확한 답을 피한 것은 그녀 스스로도 답을 내릴 수 없기 때문이었다. 이제 와서 순진함이 무엇인지 고민하기엔 퇴색되어버리고 말았다.아이가 아이로 있기를 그만두게 되는 지점은 어디일까.나이를 먹음에 따라? 몸이 자람에 따라?글쎄, 스스로가 아이임을 자각하고 무력함을 깨달았을 때……가 아닐까 세탄 세이라는..

02 기사님

: 칸나즈키 마요이 기억은 과거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갔다. 9살의 그 날, 누군가의 앞에서 울음을 터트리고 옷자락을 붙잡고 부려선 안 되는 욕심을 부렸던 그 날로. 날씨는 어땠더라. 해가 지고 있었나. 어쩌면 밤이었던지도 몰라. 수업도 나가지 않고 있었지. 방 안에 웅크려 골몰하고 있다가 문득 고개를 들고 무거운 다리를 움직여 방문을 두드렸다.종종 꿈에서도 보는 모습이다. 가선 안 된다고 팔을 뻗어 말리고 싶어지는,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닿지 않는.그 날 그녀는 어린 나이에 아주 중요한 것을 하나 깨우쳤다. 세상에는 바라도 얻을 수 없는 것이 있고, 과욕은 2배로 되돌아온다는 것. 손이 아프도록 편지를 썼다. 미안해요. 미안해요. 미안해요. 나 때문에. ……내가 괜한 부탁을 하는 바람에.───세탄 세이..

01 노래

: 오토나시 토오루 ───초음파라고 하는 것은 이름 그대로 하나의 단계를 뛰어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흔히 인지할 수 있는, 들을 수 있는 소리의 범위를 뛰어넘은 소리. 우리에게는 들리지 않는 소리.하지만 들리지 않는 것을 소리라고 칭해도 되는 걸까. 들리지 않는 소리를 내는 것에 의미가 있을까.“♪~♩~♬~……”다른 사람에게 들리지 않는 소리를 내는 것에 익숙해진 건 언제부터였을까. 스스로도 듣지 못하는 소리를 굳이 매일같이 내게 된 것은. 사실은 무슨 의미를 싣고 있는지, 스스로가 내는 앨리스가 어떤 소리일지도 상상해 본적이 없다. 굳이 의미를 찾으라면 울음에 가까운 것일까. 물어봐오는 것이 곤란할 뿐이었다. 모두에게 들리지 않아서 다행이에요. 제게도 들리지 않아서 다행이야.「평범한 목소리로 부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