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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3년

여기서부터 고등부→ : 개인로그 ▶고등부 1학년, 봄 “조, 좋아해요. 선배!”이제 같은 건물에서 못 본다고 생각하니까 그게 싫었어요.1살 아래의, 기술반의 아이였다. 귀가 빨갛게 되어 고백을 해왔다. 서로 오며가며 얼굴을 알고 지낸 게 2년, 그러다 방에 둘 진열장을 놓고 기술반에 의뢰를 고민하던 세이라에게 먼저 살갑게 도와주겠다고 말을 꺼낸 것을 계기로 가깝게 지낸 게 지난 반 년.학원에서 머문 기간이 긴 편이기도 하고 타고난 성정이 온화한 세이라는 후배들에게 제법 인기가 있는 편이었다. 어디까지나 의지가 되거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선배로서.이런 고백은 처음이라 당황해버렸다. 곤란한 듯 저도 모르게 눈썹을 찌푸리자 아이는 죄송해요. 너무 갑작스러웠죠. 하고 슬그머니 한 발 물러섰다. 그 모습에 반사..

19 슬픔과 기쁨

: 타케가와 후유키 타케가와 후유키. 세이라가 학원에 입학하던 시점에서 이미 학원에 부임해 있던 교사. 첫 인상은 조금 무섭다. 말을 걸지 못하겠다. 아이들을 싫어하는 건 아닐까. 등등. 조부모의 품을 떠나 살던 땅도 떠나 낯선 곳, 낯선 사람들 사이에 둘러싸였던 8살 세이라에게 타케가와 후유키는 그러니까 우연히 마주쳐도 살금살금 피해버릴 상대였다.그 이미지가 조금 달라진 것은 어느 날 피곤한 얼굴로 센베를 먹는 그를 보았을 때, 울고 있는 아이의 머리를 다정하게 쓰다듬어주는 그를 보았을 때, 그리고…, 또 그리고…….학원에 적응해나가는 만큼 그가 익숙해졌다. 표정에 드러나지 않는 그의 상냥함을 알게 되었다. 발견하면 먼저 가서 인사를 하고 할머니가 센베를 보내주실 때면 꼭 찾아가 나눠주고 그러다 반대로..

18 할머니에게

: 개인로그 할머니. 세이라예요. 건강은 좀 어떠신가요?날씨가 무척 더워요. 친구들은 모두 흐물흐물 녹아버릴 것 같은데, 할머니가 있는 곳은 괜찮은가요?이런 날 바다를 걸으면 꼭 온몸에 소금이 달라붙는 기분이었어요. 그래서 집에 들어오기 전에 맨날 할머니가 탁탁 털어주셨는데. 어쩐지 그 손길이 그리운 것 같아요. 얼마 전에 바다에 다녀와서 그럴까요?맞아요. 얼마 전에 바다에 다녀왔어요. 원래는 갈 수 없는데 선생님이 아주아주 특별히, 살짝 보내주신 거라고 했어요. 그리워서, 기뻐서, 또 울어버릴 뻔했어요. 할머니. 세이라는 이제 바다의 파도에도 휘청이지 않고 깊은 곳까지 헤엄칠 수 있게 되었답니다. 할머니에게도 얼마나 수영을 잘 하게 되었는지 보여드리고 싶은데.또 얼마 전에는 축제를 했어요. 제가 춤을 ..

17 하늘에게

: 시나요리 아리사 *타닥타닥하게 타오르던 불꽃은 새벽이 다 저물고 아침 해가 뜰 때까지도 이어졌다고 한다. 그리고 배톤 터치를 하듯 해에게 자리를 넘겨주고 완전히 사그라졌다던가. 부스가 모두 정리되고 한가운데 세워진 캠프파이어의 불꽃은 얼마 전의 수학여행을 떠올리게 했다. 여러 감회를 안고 불꽃이 까만 밤을 향해 피어오르는 것을 지켜보았다.그렇게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고 버티려 했지만 결국 피로를 이기지 못하고 축제의 꼬리를 밟으며 기숙사 방으로 향했다. 침대에 축 늘어진 몸을 뉘고 얻어온 것들을 하나하나 쓸며 만지다가 자연스럽게 그려진 미소와 함께 눈을 감았다. 눈을 감으면 아직도 추억이 선명하게 반짝이는 불빛으로 그려졌다. 눈꺼풀 아래로 불꽃놀이가, 캠프파이어의 불길이, 그리고 낮의 태양 ..

16 신뢰

: 나카노 미야코 ───믿어도 돼?그 말에 떠올린 것은 축제의 열기에서 조금 지난 기억이다.・・・『나는… 너랑 달라.』그 한 마디는 나카노 미야코와 세탄 세이라를 가르는 경계선이었다.쨍그랑, 어디선가 병이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유리병에서 흘러내리는 자색의 액체가 그녀와 그녀 사이에 강처럼 흘렀다. 여길 건너려 하지 마. 미야코에게서 그런 말이 들려온 것만 같았다.생각해보면 미야코는 언제나 그랬다. 그 옛날, 실수로 그녀의 슬픔을 세이라가 들춰보았을 때 그랬듯 누군가가 자신을 이해하길 거부하는 것 같았다. 타인의 이해도 관심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친구가 아닌가요?-비즈니스 관계일 뿐이야.어째서일까. 타인의 눈을 통해 비추는 스스로를 보고 싶지 않아서? 나부터가 나를 믿지 못해서? 그녀 역시 불안하고..

15 무제2

: 개인 로그 “♪~♩~♬……”수영장의 가장자리에 걸터앉아 참방참방 다리만 물에 담가 발장구를 친다. 이 시간의 수영장은 사람이 없어 좋았다. 앨리스를 사용하자 사방이 막힌 공간 안에서 초음파가 부딪혀 이리 튀고 저리 튀며 돌아오는 것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세이라는 물속에서 소리를 보내는 걸 더 좋아했지만 여기서 또 물에 잠겼다간 감기가 언제 나올지 모르니 참아야지.아직도 목에 깃든 열은 가시지 않은 채였다. 생각보다 감기가 오래 지속되었다. 패널티가 겹쳐서 그런 것을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말을 하지 못하는 것이 차라리 편하다 여겨 굳이 나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입을 열고 싶지 않았다. 소리를 내고 싶지 않았다. 소리에 기분을, 감정을 담고 싶지 않았다.누군가에게 이런 엉망진창의 소리를 전..

14 무제

: 개인 로그 ───첨벙.물보라가 크게 인다. 입안에서 퍼지는 비릿한 맛에 눈살을 찌푸리면서 세이라는 수영장 바닥까지 천천히 가라앉았다. 발바닥에 닿는 건 모래가 아니라 코팅처리가 된 인공물. 미끌거리는 바닥을 발끝으로 문지르다 그대로 천천히 웅크렸다.입을 뻥끗일 때마다 뽀글뽀글 거품이 위로 올랐다. 수면 위까지 오르지 못하고 중간에서 터져버리는 공기방울들. 인어공주도 이런 풍경을 보며 가라앉았을까? 그렇다면 적어도 마지막엔 예쁜 풍경을 눈에 담았겠어요.천장에는 인조등이 반짝이고 있었다. 수영장 안의 공기는 언제나 한결같았다. 적당히 습하고 적당히 서늘하고. 평소에도 계절에 상관없이 오던 곳이다. 물에 잠겨 있으면 그것만으로 기분이 편해졌다. 제 안에 채워진 차가운 감정이 물에 녹아 옅어지는 것 같았다...

13 부서진 것은

: 시나요리 아리사 바람이 불었다. 어서 가라고 등을 떠미는 바람이었을까. 길게 늘어트린 머리카락을 걷어내고 비행기에 오르며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바다의 풍경을 눈에 담았다.고향의 바다와는 다른 색. 깊이에 따라 색이 달라지는 건 보았지만 이렇게 고향과 색이 다른 바다는 처음이었다. 정말 처음인지는 확신하기 어려웠다. 거진 9년 만에 본 풍경이었으니까. 어린 시절의 기억은 이미 노랗게 빛바래 실은 고향 바다도 이와 같은 색인 건 아닐까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게 하였다.보러 가고 싶어…. 집 앞의 바다.보고 오면 지금의 기억과 대조해볼 수 있을 텐데. 그리움이 물씬 밀려 들었다. 가슴을 옥죌 정도의 그리움, 애틋함, 그리고 슬픔. 학원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니 또 울적해지고 마는 것이었다. 포기해야지. 체념..

12 공동(空洞)

: 나카노 미야코 「의존해버리고 마는 기분이에요.」새까맣게 또렷한 눈동자가 똑바로 향해온다. 입가에는 특유의 미소가 걸려 있었지만 세이라는 그녀의 안쪽에 제가 남긴 말들이 가시처럼 박혀버렸음을 보아버린 기분이었다. 아니에요, 당신을 찌르려 한 게 아니었어요. 사과가 입안을 맴돌았다. 그러나 제 사과는 그녀에게 필요한 게 아니겠지.그녀를 향하는 것이 아니었다. 왜냐면 누구보다 약에, 앨리스에 의존하고 있는 사람은 바로 세이라 자신이었으니까.“왜 약이나 앨리스에 의존하는 게 나쁘다고 생각해?”그래서 세이라는 미야코의 말에 웃을 수밖에 없었다.“나쁘다고 한 건 아니었어요. 다만 안쓰러울 뿐이에요. 그리고 또 안타까워하고 있죠.”연민은 스스로를 향하고 있었다.「타케가와 선생님, 오늘도 앨리스를 부탁드려도 될까요..

11 흰 벽

: 오토나시 토오루 닫힌 창 너머로부터 햇빛이 통과한다. 투명한 창을 넘어 들어오는 태양빛은 한 차례의 여과를 거치고도 뜨거웠다. 공기를 데운다는 것이 무엇인지 피부로 느끼게 해주는 것만 같았다. 바깥에서는 매미가 우는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겨우 한 철을 노래하고 가는 작은 생명체는 그 한 철에 존재감을 새기듯 크고 힘찬 소리를 울렸다. 매미 소리는 세이라를 기묘한 기분에 잠기게 했다. 매년 여름 그랬다. 왠지 모르게 매미의 소리를 듣고 있으면 경쟁심 같은 게 피어오르다 푹 꺼지곤 했다.또 한 차례 상념에 잠기려던 것을 일깨운 건 계절을 착각하게 만드는 손가락이었다. 볕에 노출되지 않은 새하얀, 그리고 섬세한, 또 차가운, 피가 이 끝까진 돌지 않는 게 아닐까 의아한 손가락이 볼을 만져오고 있었다. 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