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켓몬스터 : 피치럼블 73

051) 11.24. 이루리라

ㅡ위위 진화 더보기 알을 깨고 나오기까지의 세계를 위위는 어렴풋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알속에서 조금씩 형체를 갖춰가는 동안 들려오던 수많은 이야기 덕분이다. 유난히 귀가 예민하도록 되어 있는 포켓몬이 기억하는 가장 첫마디는, “──듬뿍 사랑해주도록 할게.” 따뜻하게 울리던 여자의 목소리였다. 사랑이란 무엇일까. 무엇을 주려는 걸까. 호기심이 일었다. 이 좁고 캄캄한 알속에서는 다 알 수 없는 바깥세상이 궁금했다. 그때부터 알속에 태동이 일었다. 드래곤의 알은 쉽게 깨지는 법이 없었다. 그 안이 좁고 갑갑해 어깨 하나 똑바로 펴지 못하고 접힌 발끝이 간질간질거려 쥐가 날 정도로 불편해질 때까지도 저를 가둔 세계가 열리지 않았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곤 하루종일 알속에서 바쁘게 꼬물거리는 일뿐, 그때마다 제 ..

050) 11.22. 삼고초려三顧草廬

ㅡ짐리더즈 어셈블! 더보기 마루길 하랑마을에서 다님길로 가기 위한 먼 여정을 앞두고 능란과 아이는 공중날기 택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지금은 추위 대비로 꽁꽁 싸매고 있지만 다님길은 여기만큼 춥진 않겠지. 망토는 가는 길에 벗을까? 짐을 넣을 가방도 챙기고……. 준비할 게 많았다. “보 군의 입안은 왜 어써러셔 문 같은 게 아닌 걸까.” “어써러셔 문……? 흐흐… 단 한 곳만~… 연결할 수 있다면…♪ 저는 그곳으로 갈 텐데…….” “아니아니, 꽃다운 스무살에 저승길은 사양이라는 거야.” 그나저나 아이 군은 용케도 그 차림으로 계속 지내는구만. 단벌 신사라는 녀석? 잠시 꼬마유령이라든지, 아토시티에 나타난 도깨비도 구경하긴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이벤트성 환복, 옷을 안 갈아입는 건 좋다고 해도 춥지는 않은..

049) 11.20. 편가르기

ㅡ10주차 리포트 더보기 날카로운 에어슬래시가 바위를 가른다. 오늘로 몇 개째인지 모를 노릇이었다. 이러다가 산맥 초입을 돌산으로 만들겠어. 협곡 안쪽의 드래곤들이 화가 나서 찾아오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러는지. 그러나 이마저도 부족해 작은 음뱃은 막 습득한 폭풍을 시험하겠다는 듯 맹렬하게 날개짓을 했다. 결국 날뛰는 음뱃을 말려서 데려온 건 모크나이퍼였다. 더 훈련할 거야. 더 강해질 거야! 버둥거리는 녀석을 발주먹으로 꿍, 때리며 진정시키자 알에서 태어난지 이제 갓 2달이 되어가는 어린 포켓몬은 반항어린 눈빛으로 씨근덕거렸다. 이 녀석 벌써 사춘기인가. 노트 씨네 난로도 이랬던 것 같은데. 지켜보는 트레이너는 심란할 따름이었다. 그야 무엇이 불만족스러운지는 알았다. 볼 안에서도 포켓몬들 역시 다 지켜..

048) 11.18. 경험經驗

ㅡ아토시티 아르바이트 더보기 선글라스 두 개를 나란히 맞춰 끼고 모래바람 흩날리는 대지 위로 폼나게 착륙한다. 떠나갈 때처럼 리무진 택시를 부르진 못했지만 거대한 아머까오의 날개짓 아래에서 코트를 펄럭이며 내리는 두 사람의 모습은 제법 어딘가의 첩보 영화에 나올 것도 같았다. “꼭 이런 식으로 등장해야 해, 능란?” “애들 앞에선 기선 제압이 중요하다는 거야.” 어른들은 품위가 있어 겉보기가 허접해도 면전에서 지적하는 법이 없지만 애들은 다르다. 조금이라도 틈을 보이는 순간 ‘재미없어.’, ‘시시해.’, ‘하나도 안 멋져.’, ‘안 할래.’ 그렇게 손님들을 모두 잃고 말 것이다. 그러니까 아이들을 구름떼처럼 모으기 위해서 이렇게 등장부터 화려한 연출을 해보았단 것이다. 마치 일홍처럼. 적당히 하고 갈 정..

047) 11.15. 판별判別

ㅡ가온시티 아르바이트 더보기 딩-동, 하고 벨을 누를 것도 없이 수리 박사님의 비조푸는 바깥에서 트레이닝 삼매경이었다. 돌고 돌아 수리 박사의 연구실로 돌아온 능란은 비조푸에게 가져온 죽통밥을 나눠주며 수리 박사를 찾았다. 평소 같으면 누가 찾아왔냐고 고개라도 내밀었을 남자는 지금 산더미 같은 자료들을 옆에 쌓아두고 책에 코를 박고 있었다. “요오, 수리 박사님. 잠은 제대로 자고 있는 거냐니까.” “오? 왔구나. 아하하, 물론이지.” 옆에서 수리 박사의 던지미가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포켓몬이 고자질하지 않더라도 박사의 안색은 영 좋아 보이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라고, 마지막으로 그를 보았던 보드기 마을에서의 일을 떠올린다. 그 비서들은 정말 사람의 마음을 상처 주는 일에 악질이었다. 포켓몬을 이..

046) 11.13. 옛이야기

ㅡ9주차 리포트 더보기 “랑랑, 오랜만이어요.” “보고 싶었어요, 랑랑.” 꼭 인형처럼 생긴 조그마한 아이들이 능란의 양다리에 달라붙는다. 여자는 으헤헷, 체통 없이 웃으며 두 아이를 양팔에 번쩍 안아들었다. 그으래, 오랜만이야. 나도 보고 싶었어, 이 귀염둥이들. 하랑마을에 오면 조카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이제는 몇 촌인지 따지기도 어렵지만 이모할머니의 손녀딸이자 능란의 팔촌인 언니의 쌍둥이 자식들이다. 능란이 막 가출했을 당시에는 걸음마나 겨우 하던 꼬마들이 지금은 아장아장 걸어 다닐 정도로 자라 있었는데, 조금만 눈을 떼도 터벅고래와 함께 눈밭을 구르거나 터벅고래에게 올라타 눈썰매를 타는 활발함을 보였다. 여아 쌍둥이는 처음 능수를 보았을 때 크게 놀랐다고 한다. 쌍둥이는 성별도 같은 줄 알았는데!..

045) 11.11. 락 그 두 번째 樂 二

ㅡ아토시티 아르바이트 더보기 365일 흥겨운 축제의 도시일 것 같지만 막상 아토시티도 언제나 축제이지는 않았다. 평소의 도시를 말하자면 생업에 충실히, 타오르는 태양 빛과 열을 식히는 강물 사이에둘ㅇ서 하루하루를 땀 흘려 일하는 어디에나 존재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모임. 그런 우리네 평범한 이웃들이 축제 시기만 되면 그간의 묵은 피로와 쌓여 있던 감정, 기분을 털어 보내고 모두가 함께 흥겹게 춤을 추고 퍼레이드를 하기 때문에 아토시티의 축제는 더욱 각별한지도 몰랐다. 한 달에 한 번씩 돌아오는 날, 약속된 그날을 통해 사람들은 보다 자유롭고 또 즐거워지는 것이었다. “레 언니에게도 이런 날이 필요할지 모르겠단 거지.” 자아, 이제 에스코트 없이도 잘 따라올 수 있지? 삐걱삐걱, 뚝딱뚝딱. 몸을 쓰는 게 익..

044) 11.10. 락樂 : 아토체육관 도전

ㅡ아토체육관 챌린저 클래스 더보기 “다시 챌린저 클래스로 돌아와버렸다는 거야.” 게시판에 이름을 적어놓고선 능란은 으으으음~ 하고 특유의 입매를 우물우물거리며 웃었다. 헤쭉, 나오는 표정은 거대한 도전을 앞에 두고 긴장되고 근질거려 어쩌지 못하는 것이었다. 이러다가 조금 더 궁지에 몰린다 싶으면 자폭해버리는 본인의 못난 버릇은 이제 고쳐진 건지 어쩐 건지. 다만 그렇게 궁지에 몰리지 않도록 스스로 덜어내는 법을 익혔다. 이번에도 그렇다. 너무 자신을 몰아붙이다가 먼저 떨어져 나가지 않도록 어깨의 힘을 풀어야 했다. “──라는 게 말은 좋지마안, 이기고 싶은 마음이 어디 가겠어?” 캠프의 귀염둥이는 승패에 연연하지 않는다고, 져도 즐거운 배틀이면 충분하다고 하던데 몇 번인가 그 마음을 따라해 보려고 했지만..

043) 11.07. 그 여자의 무서운 이야기

ㅡ보드기마을 아르바이트 더보기 ──이것은 우리가 아직 심지의 배후를 모르던 때의 이야기이다. 놀러 가는 것도 아니고 뭘 셋이서 우르르 몰려다니느냐, 놀러 가더라도 내가 뭣하러 너희랑 가느냐 투덜거리는 비니 소년을 사이에 끼운 채 세 사람은 골갱이 산의 내부로 들어갔다. “그러니까, 이쪽에 가면 영역 싸움하는 롱스톤이 있냐는 거야.” [그래. 인부들에게 제보가 들어와서 말이야. 보통의 개체보다 커다란 롱스톤 두 마리라고 하더구나! 평범하게 얼터코팅을 한 롱스톤일 수도 있지만. 인부들이 많이 드나드는 공간을 영역으로 잡으려고 하는 롱스톤이라고 하니 빠르게 제지를 하는 게 좋겠더구나.] “응. 우리 셋이면 충분히 진정시킬 수 있을 거예요.” “뭐어, 저 정도는 나 혼자서도 충분하지만.” [하하하. 그럼 부탁한..

042) 11.06. 붕우(朋友)

ㅡ툰 귀하 더보기 온통 버석버석하고 메마른 희나리 사막 인근으로 마치 사막 위에 떠오른 섬과 같은 땅이 있었다. 경쾌하고 화려한 축제의 도시, 몸체는 돌과 바위로 이루어졌으면서 머리 위로는 뜨겁게 내리쬐는 태양이 불을 떨어트리고 발아래는 푸른 물결이 곡선을 그리는 그야말로 자연의 축복을 한몸에 듬뿍 받은 땅. 화랑에서 2번째로 번화한 도시, 아토시티다. 그런 아름다운 도시가 한눈에 보이기엔── 조금 무리가 있지만 어쨌든 제법 고층의 라운지에서 여자는 따뜻한 생강차를 내려 소년에게 건넸다. 머그컵은 하루 종일 마셔도 배부를 만큼 커다란 사이즈였다. 감기는 좀 괜찮아? 단순한 감기가 아닌 걸 알면서도 적당히 감기로 뭉뚱그린다. 대답이 돌아오거든 히죽 웃으며 낮에 근처의 가게에서 사온 과자도 꺼냈다. 차에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