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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과 내가 축하해줄게

: 루 모겐스 ー─유성우가 내린대, 에슬리.그렇게 말하며 루가 가리킨 날짜는 그의 생일이었다. 그는 자신의 생일을 기억하고 있을까? 가만히 시선을 두자 응? 하고 유한 미소가 돌아온다. 그 표정에서 생각을 읽어내기란 제법 어려운 일이었다. 아니지, 본인이 생각하고 있지 않은 일을 멋대로 짐작하려는 이쪽의 잘못이다.“루의 생일이네.”그래서 에두르는 대신 묻자 그제야 떠올렸다는 듯 긴 눈썹이 가볍게 율동하며 벌써 그렇게 됐나. 짧은 반문을 들려주었다.그러게, 벌써잖아. 그에 동의하며 에슬리는 작년 이맘때를 떠올렸다. 작년엔 케이크를 만들어주기로 약속했었지. 어떤 걸 만들어줄지 어떻게 해야 맛있는 걸 완성할 수 있을지 오래오래 고민했다. 그리고 돌아온 올해다. 올해는 뭘 주면 좋을까 이럴 줄 알았으면 미리 물..

with.루 2018.12.14

35 신화

: 시나요리 아리사 옛날, 어느 한 옛날, 낮과 밤이 결코 뒤섞이지 않던 땅이 있었다.태양은 한 곳에 머물러 움직이는 일이 없었고 그로 인해 반대편의 땅은 어둠이 걷히는 일이 없던, 세상이 둘로 쪼개어져 있던 시대가 있었다.처음 인간들은 해가 지지 않는 땅을 두고 축복이라 여겼고 어둠이 걷히지 않는 땅을 저주라 손가락질하였다. 밤을 두려워하고 낮을 숭배하려 했다. 그러다 곧 깨닫고 말았다. 어느 쪽이 축복이거나 저주인 것이 아니란 것을, 그저 이 모든 것이 비극이란 것을.밤이 없는 땅에서 인간들은 쉴 수 없다. 낮이 없는 땅에서는 아무것도 자라지 않는다. 어떻게든 땅에 정착해보려고 무수히 노력을 하던 때도 있었지만 시간이 멈춘 것만 같은 이 땅에 지쳐 점차 하나, 둘 떠나가게 되었다.그리하여 낮과 밤이 ..

사랑에 이르는 병

※ 이하의 로그는 inSANe 시나리오 [__에 이르는 병]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세션의 스포일러를 피하고 싶은 분은 클릭하지 말아주세요. : 루 모겐스 눈앞에서 인간이 재로 변해버렸다. 방금 전까지도 대화를 하고 따뜻한 몸을 하던 인간이 한순간에 아무런 열도 갖지 못하는 재가 되었다. 이렇게 만든 것은 그녀다. 거기에 일말의 죄책감을 느꼈다.그럼에도 후회하지 않는다. 같은 순간이 돌아오거든 같은 선택을 하고 말 것이다. 모든 것은 그를 살리기 위해. 그와 함께하는 미래를 위해. ……정말?정말 그와 함께할 수 있을까? 부러 든 생각을 잘라냈다. 어쩌면 일찌감치 예감한 가정을, 가설을 지웠다. 그녀는 그와 달랐다. 오지 않은 가정을 말하며 대비하라거나, 싫었다. 그런 가정을 할 바에야 일분일초라..

with.루 2018.11.21

목욕 후

: 루 모겐스 겨울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투명한 창문 한 장을 사이에 두고 안과 밖의 기온이 분명히 달라졌다. 뜨거운 욕조에 몸을 담근 채 창문에 손을 짚으면 그 온도차가 더욱 선명해졌다. 따스한 안과 서늘한 밖. 안쪽이 제 영역이 될 줄은 예전이었으면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일, 그러나 지금은 제법 익숙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었다.따스한 물에 목욕을 하고 나오면 훈훈한 공기가 감도는 집, 신선한 우유 한 잔에 취향껏 설탕도 꿀도 코코아 가루도 타 마실 수 있다. 얼마 전 산 살짝 씁쓸한 맛의 코코아를 데운 우유에 녹여 휘 휘 젓던 에슬리는 곧이어 테이블 위에 엎드린 채 잠든 연인을 발견하였다.어깨 아래로 흘러내린 수건과 아직 물기가 조금 남은 잿빛의 머리카락. 젖은 탓인지 평소보다 조금 더 짙은 색..

with.루 2018.11.06

할로윈 명작 동화

: 루 모겐스 옛날 옛날 어느 먼 옛날, 실은 그렇게 멀지도 않을지 모르는 옛날, 먼 것은 시간이 아니라 거리일지도 모르는 어느 먼 곳에 빨강망토가 살고 있었어요.빨강망토는 마을에서 알아주는 유능한 사냥꾼이었답니다. 그녀가 늘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있는 붉은색의 망토가 실은 사냥감들의 피로 물든 거라는 소문이 돌 정도로요.빨강망토는 소문에 대해 맞다 아니다 한 마디도 답한 적이 없어요. 어쩌면 만만하게 보이는 것보다 무섭게 보이는 쪽이 낫다고 생각했던지도 모르죠. 마을에선 빨강망토를 무시하는 사람들이 많았거든요.빨강망토가 사는 마을의 바로 옆에는 커다란 숲이 있었어요. 빨강망토가 늘 사냥을 하러 들어가는 그녀의 홈그라운드나 다름없는 곳이죠. 마을보다 훨씬 좋아하는 곳이기도 해요.그런데 언제부턴가 그 숲에..

with.루 2018.10.31